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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서련 Aug 01. 2020

2년, 나이듦의 유예기간

한국에서는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1살이 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해가 바뀔 때 동시에 1살씩 먹는다. 그래서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은 생일이 1월1일이든 12월31일이든 같은 나이가 되버린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면 10년이 조금 넘는 기간이 채워지는데, 이 긴 시간을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들끼리 주로 모여 지내게 된다. 즉, 나이가 똑같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부대끼며 살아가게 된다. 대학교에 오면 재수생, 삼수생, 휴학생, 복학생 등 정해진 순서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눈에 띄이기도 하지만 나 같은 경우, 이들이 가까운 관계에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나에게 있어 친구는 나랑 태어난 해가 같거나 혹은 빠른 연생까지, 동생은 내가 태어난 연도보다 숫자 하나라도 늦은 경우, 언니나 오빠는 내가 태어난 연도보다 숫자 하나일지라도 빠른 경우였다. 물론 언니, 동생이라 하더라도 친하기도 했지만 그들을 친구라고 부르진 않았다.  


나이의 위계질서는 한국에서 살아온 20년 넘도록 내 머리 속에 똬리를 틀었다. 그게 맞믿고 살았는데, 한국을 나와보니 이런 방식으로 나이를 세는 나라는 단 하나도 없었다. 모든 나라가 자신의 생일을 기준으로 1살씩 차곡차곡 쌓아갔다. 그렇게 나이 세는 것을 "만 나이"라고 부르고 (이번 글을 계기로 인터넷에 서치해보니) 한국식으로 나이 세는 것을 "세는 나이"라고 한단다.


제목을 보고 살짝 눈치챘을 수도 있을텐데 내 생일은 12월의 말 1년을 넓게 펼쳐보면 끝자락에 가까운 생일이다. 태어나자마자 어땠는지는 내 기억에 전혀 없지만, 나이를 거꾸로 거슬러 유추해보면 나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1살이 되었다. 그리고 어처구니없지만 태어난 뒤 열흘 정도 지났을 때 해가 바뀌면서 2살이 되어버렸다. 눈에 초점도 못 맞추고 옹알이도 못할 갓난 아기 때 출발선에서 이미 2년을 떠나왔고, 그 위에 30년이 넘는 나잇돌을 쌓아오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사람과 관계 맺을 때 나이를 밝힐 일도 없고, 내 나이는 한국, 미국 방식 2살씩이나 차이나다보니 내 나이가 몇 살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더군다나 애들 키우다보면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러서, 숫자연도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해가 바뀌기 일쑤라 정말로 내 나이가 몇 인지 모르고 산다. 오늘이 2020년 8월이라는 사실에 뜨악하면서 새삼스레 내 나이를 계산해봤더니 한국 나이는 37살, 미국 나이는 35살이다. 상대 평가라면 이런 숫자에는 사실상 큰 의마가 없고 그저 2020년의 나는 2019년의 나보다 상대적으로 1년 더 살아본, 1년 더 늙은 상태라고 받아들였을테다. 근데 절대평가 생각하니, 37이라는 숫자와 35가 주는 느낌이 확연히 달라졌다. 37은 뭔가 확실히 30대 후반에 들어선 것만 같고, 35는 그래도 30대 중반 같지 않은가? 미국으로 건너온 지난 13년간, 나이 차이는 언제나 2살씩이었건만 올해는 괜시리 더 만 나이에 집ㅊ......아니 애착이 간다.  


2년의 유예기간은 종종 잔잔한 호수 위에 던진 돌맹이가 되기도 한다. 37살이지만 한편에서는 35살이라고 믿고 있기도 한 나는 2년 전의 나로 되돌아가 고민해본다. 그러면 쉴새없이 반복되고 변화없는 일상, 그리고 그 일상을 마주하는 내 마음 위에 물결이 동심원을 이루며 번져간다. 그 때 난 무엇을 했어야하는지, 어떤 것이 후회되는지,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어떻게 했어야 하는지......그리고 진짜이면서도 진짜 아닌 2년 전의 나이를 선물받게 된다. 그래서일까? 젊은 날의 나를 생각하며 오늘따라 꾸준히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이 조금 단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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