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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청 Sep 21. 2024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프롤로그

 아침에 출근을 하면 사무실 불을 켜고 창문을 연 다음 에어컨을 가동해 밤새 고여있어 습하고 후덥지근한 공기를 날려 보낸다. 세차게 나오는 차가운 바람에 사무실에 놔둔 겉옷을 걸치고 컴퓨터를 켜면 익숙한 잠금화면이 나온다. 비밀번호를 입력해 잠금을 풀고 사내 인트라넷에 접속해 출근처리를 하고, 쌓인 업무가 얼마나 있는지 죽 훑어본다. 대부분 오전 내로 처리가 가능한 일들이기에 아직 9시가 되지 않은 시계를 힐끗 보고 탕비실에서 믹스커피를 타고 있노라면 멀리 사는 직장동료가 도착한다. 잔을 씻으러 온 그에게 인사를 건네고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머금어본다. 향긋하고 달달한, 그러나 뒷맛이 쌉싸름한 것이 제대로 된 출근의 맛이다.


 그렇게 잔을 비우면 딱 아홉 시. 에어컨 온도를 조금 높이고 창문을 닫는다. 그렇게 조금 뻑뻑한 창문이 턱 닫히는 소리를 시작점 삼아 업무를 개시한다.

 직장을 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는 원래 여기에 계속 다니던 양 익숙하게 일을 처리한다. 물론 연차가 제대로 쌓이지 않은 병아리지만 업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전화 업무와 기록 남기기는 전 직장인 콜센터에서 질리도록 경험했기에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네, 고객님. 네네, 목청이 좋으시네요. 네, 사정이 어려우셔도 저희 측에서 대리 입금은 불가합니다.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정해진 처리 방침으로 다져진 혀는 입안에서 기계적으로 노니고 내 목소리는 가식으로 꾸며져 불편하지 않은 톤을 유지한다. 선머슴 소리를 숱하게 듣던 굵고 낮은 목소리를 친절봉사 톤으로 맞추니 목이 칼칼해지는 건 당연지사라 나는 항상 미지근한 보리차를 준비해 놓는다. 꼴깍 한 모금 마시면 구수하고 부드러운 것이 좋다. 커피가 출근의 맛이라면, 보리차는 안정의 맛이다.


 점심시간은 도시락으로 때운다. 컵밥이나, 컵라면, 편의점 빵 따위로 간단하게 한 끼 때우고 나면 남는 시간은 오롯이 내 것이기에 나는 태블릿과 휴대용 키보드를 꺼내 자판을 두드려 일기를 쓴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당일 밤에 쓰지 않고 다음 날 점심에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날것의 투박한 감정을 그대로 담아내기보다 시간을 두고 그 상황에서 조금 떨어져 다듬어진 상태로 기록하고 싶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는 있는 대로 감정을 담아 썼는데, 차마 아직도 다시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부끄럽기도 하지만, 안 좋은 얘기는 그때의 기억을 필연적으로 끌고 와 당시의 상처를 들쑤셔 나를 괴롭게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점심 일기 쓰기는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놓이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도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기에 고른 방식이었다. 덕분에 일기는 조금 심심해졌지만, 더는 과거의 일을 불필요하게 곱씹으며 스스로를 갉아먹지는 않는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오전보다 조금 더 바빠진다. 점심시간에 전화연결이 되지 않아 불만 가득한 고객이나 거래처가 전화를 할 때도 있고, 오전보다 근무시간이 많으니 당연히 전화량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거래처들과 연계된 전산으로 각종 민원 처리 요청이 주로 들어오는 것도 이때쯤이다. 바쁠 때는 퇴근 한 시간 전까지 눈코 뜰 새가 없다. 거기다 단순 전화 응대뿐만 아니라 통화내용을 전부 기록해야 하기 때문에 전화가 밀리면 노트는 온갖 날림체로 어지러워진다. 곧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갈 듯한 글씨체를 보며 통화내용을 다듬어 정리하고 있노라면 카페인의 강렬한 유혹이 찾아오지만 내 몸이 두 잔 이상은 허용하지 않기에 보통 보리차 리필로 참고 만다. 이때 마시는 보리차는 조금 덜 구수하다. 같은 티백이니 때문에 기분 탓이려니 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져 올 때 업무가 거의 마무리되면 직장동료와 약간의 잡담을 나눌 때도 있다. 월요일이면 주말에 뭘 했는지, 그 외의 평일이면 얼른 주말이 됐으면 좋겠다던지 하면서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다 보면 저무는 해보다 먼저 하루의 끝이 느껴진다. 물론 우리에게 볼 일이 있는 이들이 전화를 걸거나 민원 요청을 넣어 맥을 끊을 때도 있지만, 애초에 업무를 하러 온 거고 담소는 뒷전이 맞으니 불만 없이 처리한다. 물론 퇴근 5분 전에 연락하시는 분들은 급한 맘은 알겠지만 조금 자제해주셨으면 하는 개인적인 욕심은 있다. 지방 사는 뚜벅이는 버스 놓치면 영겁의 시간 동안 다음 차를 기다린답니다.


 퇴근할 때면 컴퓨터와 에어컨, 사무실 불을 끄고 퇴근하며 다른 팀이 남아있으면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직장동료와도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이것으로 하루 아홉 시간의 일과가 끝이 난다.


 일주일에 다섯 번,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9to6의 이런 단조로운 일과의 굴레 속에서 사는 내게 때로는 톡톡 튀는 팝핑캔디처럼 자극적이고, 때로는 땡초처럼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맵싹하며, 때로는 날카로운 생선가시처럼 마음을 찌르는 요란스러운 과거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몇 없다. 나조차도 믿기지 않는 일들 투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은 늘 영화보다 드라마틱하다.


 어지러운 가정사 속에서 피를 나눈 이들끼리 아릿하게 사랑하고 쓰라리게 미워하던 지난 시간들 때문에 극단적으로 내몰렸던 내가 거기서 어떻게 벗어날 생각을 했는지를 활자로 늘어놓을 때가 왔다. 딱지 앉은 기억들에 새살이 돋도록, 막힌 숨통이 뚫리도록.


새엄마라는 이름 아래 등본을 들락거린 여인들.

평생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될 생각 따위는 없었던 아빠.

장녀로서 버티고 버티다 무너진 언니.

장애로 앞가림조차 하지 못하는 남동생.


 그들을 등지기로 결심한 2018년의 여름부터 나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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