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해 버린 정신머리
이기심의 끝은 보이지 않고
난데없는 말에 나는 아득해지려는 정신을 붙잡고 도대체 무슨 말씀이냐 물었다. 아빠는 심각한 표정으로 아줌마가 요 며칠 계속 연락이 안 되는데 아무래도 남편이 쫓아가서 납치를 해간 것 같다는 말이었다. (*아줌마는 이혼을 하지 않은 상태로 자식 둘을 데리고 살고 있었으며 남편과는 별거 중이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뭐냐고 물었으나 아빠는 이미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아줌마 딸이 병원 근처에서 일을 하고 있다며, 가서 아줌마의 행방을 물어봐야겠다고 했다.
"그럼 지금 갔다 오실 거예요?"
"가 봐야지."
"다녀오세요, 그럼."
"너도 같이 가야지."
지금의 나라면 미친 소리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짐을 싸서 나왔겠지만 당시의 나는 얼이 빠져 아빠를 쳐다볼 뿐이었다. 아빠는 내 눈을 피했다.
"아줌마 딸이랑 만나본 적도 없는데 제가 누구라고 가서 얘기해요?"
"아니, 그래도 니가 가서 얘기하는 편이 낫지."
"뭐라고 하면서요?"
'내 아빠랑 이혼 안 한 당신 엄마가 그렇고 그런 사이인데 당신 엄마랑 연락이 안 된다고 아빠가 말해서 내가 왔다. 당신 엄마랑 연락되냐.' 묻는 상상을 했다. 상간남의 자식새끼가 직장까지 찾아와 제 엄마를 입에 올린다니. 귀싸대기 안 맞고 머리채나 안 잡히면 다행이었다. 아빠는 중얼거리며 대답을 피하더니 동생 곁으로 가버렸다. 황당해 나는 그날 저녁까지 머무르지 않고 일찍 집에 왔다.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수많은 의문들이 둥둥 떠올라 머릿속을 어지럽혔고,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초여름의 햇살이 너무 눈부셨다.
*
다음 날, 병원에 가니 아빠가 간병인을 구해야겠다는 말을 했다. 명예퇴직을 하고 연금을 타며 살고 있으나 빚이 산더미이며 동생 앞으로 변변한 건강보험 하나 들어놓지 않았을 아빠에게 그런 여윳돈이 있을 리 없었다. 갑자기 무슨 간병인이냐고 물으니 언제까지 우리 둘이 간병을 할 수 없지는 않냐고 했다. 어차피 나도 백수고, 아빠도 퇴직해서 남아도는 게 시간인데 뭣 때문인가 하고 물으니 힘들단다. 동생은 입원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고, 아빠는 실질적으로 나와 둘이서 동생을 돌봤다. 동생을 부축해 화장실에 데려가는 게 그나마 힘을 쓰는 일이었는데, 그것마저 본인의 고집이 불러일으킨 고생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대체 뭐가 힘드냐고 묻지 않았다. 평정을 가장하고 아빠에게 간병인은 어디서 구할 거냐고 물어봤더니 아는 사람 통해서 구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하시라고 했다. 사실 엄마가 간병을 오는 게 불편하기도 했기에 기를 쓰고 반대할 수는 없었다. 엄마가 이혼한 이유는 복합적이었지만, 이혼 전 아빠가 엄마를 두들겨 패 댔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둘이 다시 만나는 건 나와 엄마에게 정말 못할 짓이었다. 내가 뱃속에 있을 때도 엄마는 배를 움켜잡고 맞았다고 했다.
그러나 다음 날부터 출근한 조선족 간병인은 하루 만에 그만두었다. 아빠는 동생의 구속을 허용하지 않았고, 소변통도 쓸 수 없게 했다. 침상에서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가래 끓는 목으로 괴성을 지르고 펄떡거리며 연신 낙상의 위기를 만들어내고, 몸을 가눌 수도 없으면서 산책 중 휠체어에서 계속 일어나려는 탓에 간병인은 안 되겠다 싶어 빠르게 탈출한 것이었다. 아빠는 몇 시간 해놓고 뭐가 힘드냐며, 이래서 조선족은 안된다고 툴툴거렸고 나는 그 꼴을 보다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딱 하루 본 나이 든 간병인이 이해가 됐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이들이라면 모두가 이해할 결정은 아빠는 하지 못했다. 하려는 노력도 없었다. 나는 저녁을 먹고 난 다음 후식을 내오며 엄마한테 얘기를 전했다. 이따금 맞장구를 치며 듣던 엄마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니 애비가 원래 그래.'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얼굴은 유난히 피곤해 보였다.
또 하루가 흘렀다. 오늘은 언제 오냐는 은근한 채근에 평소보다 일찍 병원에 갔더니 아빠는 집에 갔다 올 테니 동생을 돌보고 있으라며 빠져나가려고 했다.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니 씻지도 못했고 옷도 못 갈아입었다고 했다. 당시 동생이 쓰던 병실은 2인실이었는데, 운 좋게 다른 환자가 없어 1인실처럼 쓰고 있었으며 거기에는 작은 화장실이 딸려있었다. 주말에 엄마와 간병할 때 거기서 씻고 옷도 미리 가져와 갈아입었던 나는 물었다. 짐 챙겨 오실 거냐고.
"뭘 챙겨 와. 가서 씻고 옷만 갈아입고 오면 되지."
"여기 화장실 있으니까 씻으시고 갈아입기만 하면……."
"아이, 됐어. 아빠 갔다 올게."
아빠는 그렇게 훌쩍 떠나버렸고, 나는 석션을 하는 동생을 초점 나간 눈으로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다. 아무리 간병을 하기 싫기로서니 그렇게 물고 빨던 자식을 내버려 두고 그렇게 집에 가고 싶은가? 그러다 내 눈에 들어온 건 다시 동생의 팔다리에 매어져 있는 구속용 끈이었다. 나는 멍하니 있어 벌어져있던 입을 앙 다물었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로 약해져 있는 턱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이 인간, 자기 힘들 때는 도로 묶어놓는구나.
나의 어이는 그날 가출해 버렸고, 그 뒤로 한참을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