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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청 Sep 21. 2024

보호자의 의무

시작

 '애기 감기가 며칠 째 안 낫는다. 링거 맞혀도 밥을 못 먹어.'


 주말에 본가로 내려가는 동안 나는 남동생이 아프다며 걱정 어린 말을 한 아빠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맥도날드 하나 없는 시골에 제대로 된 병원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그럼에도 감기가 낫지 않는 건 이상했다. 링거를 맞혀도 기운을 차리지 못하는 거면 아빠가 아픈 손가락인 남동생 일에 여느 때처럼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니었기에 나는 창밖으로 흐르는 익숙한 풍경을 머릿속에 담지 않고 대강 흘려보내며 시간을 보았다. 주말이지만 아직 낮이라 진료 중인 병원을 찾으면 진료실에 같이 들어가 증상을 직접 설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분명 애가 감기인 거 같은데 안 낫는다고 대충 본인 감으로 얘기하고 체온 한 번 재보지 않았을 테니, 내가 직접 가서 보고 보호자를 자처하는 게 나았다.


 이때의 나는 몰랐다. 내가 내려가서 본 동생의 증상이 심상치 않아 도시의 큰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자고 한 게 나를 포함한 가족들을 얼마나 뒤흔들어 놓을지. 안 그래도 이혼으로 분리된 가정에서 또 다른 연을 끊게 될지, 전혀 몰랐다.


 도시의 대형병원에서 검진을 받은 동생의 병명은 '괴사성 폐렴'이었다. 정신이 아찔했다. 괴사? 폐렴? 의사는 말했다. 환자의 염증수치가 정상수치의 몇 십배나 된다고. 나는 아빠를 쳐다보지 않았다. 옆에 대통령이 있어도 그 순간만큼은 누굴 쳐다볼 여력조차 없었다. 들끓는 분노로 눈알이 뒤로 돌아가려는 걸 참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집에만 있는 자식을 얼마나 방치해야 감기가 폐렴으로 번진단 말인가? 하지만 당시의 나는 아빠의 머리채를 잡을 정도로 용기가 있지 않았고, 그만큼 애틋하게 동생을 사랑하지 않았기에 그저 텅 빈 눈알로 허공을 더듬으며 의사의 말에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진료 후 입원수속을 마쳤을 때 아빠의 어깨는 처져있었다. 금쪽같은 아들이 입원이라니 당연히 마음이 안 좋겠지, 싶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그저 자유를 빼앗긴 어린아이의 투정 어린 몸짓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예순의 나이에도 척추 하나 굽지 않은 사지육신 멀쩡한 몸을 지녔으나, 피가래가 끓어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몸을 가눌 수도 없는, 아프기 전에 그렇게 물고 빨던 아들의 간병을 하기 싫어 허구한 날 본가로 도망쳤기 때문이었다.


 아빠의 본성이 어떻게 드러날지 모른 채 나는 같이 살고 있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동생의 상태를 설명했다. 엄마는 말했다. 간병은 어떻게 할 거냐고. 당시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휴직상태였기 때문에 아빠와 협의해 돌아가면서 간병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입원 첫날부터 개빡치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동생은 몸을 가눌 수도 없는 상태였으나 자폐증을 앓고 있어 링거를 자꾸 뽑고 일어나려고 몸부림쳤다. 물조차 넘기지 못하는 몸에 무슨 힘이 그리 넘치는지 몇 번이고 일어서려고 해서 눕히려고 누르면 버티며 발광을 해댔다. 나보다 머리하나가 더 큰 남동생을 당시에 스트레스로 근육도 체중도 떨어지던 내가 막을 도리가 없었기에 아빠를 찾았으나 아빠는 담배 피우러 간 와중에 걸려온 내 전화에 짜증스럽게 알았다며 대꾸했다. 하지만 자꾸만 일어서려는 동생의 의도를 뒤늦게 알아차린 겨우 내가 그를 부축했을 때, 참다 참다 모든 것을 놓아버린 동생이 선채로 보는 소변에 정신이 팔려 쎄함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몇 번이고 청소부님한테 죄송하다고 사과드리며 새 병원복을 얻어와 팔다리를 휘젓는 동생의 짜증을 받아내며 더러워진 바지를 벗겼다. 그 난리가 수습된 뒤에 온 아빠는 그저 허허실실 웃으며 우리 장군 오줌 마려웠냐며 바지를 갈아입혔다. 나는 지쳐서 그 모습에 뭐라 할 기력도 없었다.


 그러나 그 뒤에도 계속되는 링거 뽑기에 간호사님이 말씀하셨다. 상황을 볼 수 있는 가까운 곳에 환자를 옮기고 수시로 봐드리겠다고. 동생과 씨름하느라 지쳐있던 나는 반색을 하며 부탁드린다고 했으나 화장실을 갔다 온 아빠는 불퉁한 표정으로 간호사님의 권유를 거절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옮기는 게 맞는데 왜 안 보내냐고 했더니 환자가 있는 곳에 간호사가 달려오는 건 의무라고 툭 내뱉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창문을 보았다. 초여름의 한낮 하늘은 지독하게 맑았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마음을 다스리려 애썼다. 그래, 아빠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 이상한 고집으로 늘 사람을 미치게 했다. 저것 봐라. 그놈의 '장군'도 감기를 내버려둬 폐렴으로 병원신세를 지게 만들지 않았냐. 그렇게 나를 다독였다. 하지만 동생이 또 다시 링거를 뽑았을 때 나는 더 참을 수 없었다.


 병원에는 필요시에 환자를 구속할 수 있게 가족의 동의를 얻는 서류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아빠는 부엌에 들어가 고추가 떨어진 남자처럼 죽을 상을 지었고, 나는 서류를 받아 묵묵히 작성을 하고 서명을 해 간호사분께 돌려주었다. 그리고 비상연락처에 아빠 연락처 외에 내 연락처도 추가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건 아무래도 내 촉이 나를 살린 결정이었다. 때문에 나중에 자다가 일어나 날벼락을 맞았지만, 지금 내가 살아있는 것도 그때의 결정 덕분이다.


이때의 나에게 나는 아직도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빛나는 당신의 기지에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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