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과 책임
지난 일 년은 나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용하다는 무당집과 철학관을 찾아다녔다.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나에게 장군신이 내려앉아 똬리를 꽁꽁 틀었다며.
그동안 나 자신이 스스로 많이 억누르고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처럼 잘 누르고 있으라 하셨다.
무당 하기엔 너무 늦었으며 먹고살기 힘들다고 한다.
일찍 그 기운이 왔을 텐데 왜 이제야 왔냐며 혼났다.
머리에 꽃만 안 꽂았을 뿐이지 반은 미친년이라니.
정신이 오락가락할 때도 있고 우울증이 있어서 이대로 놔두면 안 된다고 한다.
나도 안다. 열일곱 살에 수없이 눌렸던 가위증상,
그리고 처음으로 마주했던 화경, 이명 등을 겪으며 그때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무조건 뛰는 거였다.
사춘기를 겪고 부모님에 대한 반항이 심한 시기였다. 엄마는 점집을 다녔고 여러 선생님을 찾아뵈며 결론을 내렸다.
"딸은 뛰며 살을 풀어야 해! 그 기운을 낮춰야 한다며 무용을 하면 좋다고 그러신다!"
고등학교 다니면서 무용시간에 선생님께서도 나에게 무용 쪽으로 진로를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하셨다.
이렇게 겹친다고?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다.
갑자기 한국무용을 하라니 웃음이 헛 나왔다.
그때를 떠올려보니 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이해가 되니.
숙명인 것일까, 이게 운명이라는 건가 싶었다.
우리 집 외가 쪽은 조상 때부터 공불을 들이고 빌고 기도를 많이 하신 분이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늘 기도를 하셨는데 이젠 꺾였다고 한다.
어쩌면 나에게 내려오려는 걸까.
그 말을 듣는데 너무 무서웠다.
아이 둘을 둔 엄마가 무당을 할 수는 없다.
이제 똥, 오줌 가리는 아이들인데 산기도 다니며 집을 비울 수는 없다.
그리고 나는 무당그릇이 아니다.
또 다른 선생님을 찾아뵈었을 때는 신기가 있고 집 안에 기도 많이 하시는 분이 계시지만 괜찮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하신다. 산신령님이 괜찮다 한다.
그제야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엉엉 울음을 터트리며 숨이 쉬어졌다.
책임감이 필요한 이 세계는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 찾아온다고 한다.
신의 뜻을 받고 제자의 길을 갈 자신이 없었다.
나는 그런 그릇이 못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