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댄싱스네일 Feb 16. 2019

오늘도 똥을 밟았습니다

자존감 도둑주의보



오늘도 똥을 사뿐히 지르밟았다. 밥벌이를 하다 보면 이제 웬만한 이상한 사람은 다 만나 본 것 같다고 자신할 때쯤 새로운 ‘돌아이’가 나타난다. 세상에 얼마나 다양하게 이상한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지 너무 흥미롭기까지하다. 온갖 이상한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자존감 도둑(타인을 비하하고 은근히 눈치 보게 만들어 스스로 자존감을 해하게 만드는 사람을 이르는 말) ’을 만났을 때를 조심해야 한다. 그들은 평소에는 숨죽이고 잠복해 있다가 마음의 힘이 약해진 사람을 보면 본능적으로 접근하는 특성이 있다.


일전에 만난 어떤 사람은 내가 힘들 때마다 늘 옆에서 위로가 되어 주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내게 오랜만에 좋은 일이 생겼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내 공적을 평가절하하며 ‘너에게 생기기엔 너무 좋은 일인 듯하다’는 뉘앙스를 은근슬쩍 풍겼다. 그렇다. 그는 그동안 나의 불행과 자신의 현재를 비교하며 상대적 우월감으로 자기 존재를 확인해 왔던 것이다.


한편, 힘들 때만 나를 찾는 타입의 자존감 도둑도 있다. 물론 힘들 때 나를 찾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어쩌면 그만큼 내가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 거니까. 하지만 뭐든 ‘적당히’가 중요한 법. 때와 장소 없이 넋두리를 늘어놓으며 뱀파이어처럼 당신의 기를 쪽쪽 빨아먹고 나서는 매번 인사도 없이 사라지는 사람이 있다면 적당한 선에서 “스톱!”을 외쳐야 한다. 타인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너무 오래해 주다 보면 점점 서로를 당연시 여기게 되고,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껴야 할 적정선을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당연하지 않은 일을 당연한 듯 계속 해 주다가는 자칫 나의 자존감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조심하며 살아간다 해도 억울한 상황에 휘말리게 될 수가 있다. 그럴 때 상황과 나 사이의 인과관계를 만드는 식의 운명론적 사고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왜 하필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이번 달 별자리 운세가 안 좋더라니. 역시…’ ‘이런 일이 생긴 게 다 나 때문인 거 아닐까?’ 같은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얼마나 선량하게 살아왔는지와는 관계없이 어떤 일들은 그냥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니 어떤 상황에 부딪히더라도 우리는 그 상처에 무너지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이럴 때는 원인을 찾으려 하거나 상황을 바꾸려 하기보다는 내가 대처할 수 있는 행동들을 하는 게 낫다. 우선, 누군가 나의 자존감에 흠집을 내려 한다면 스펀지가 아닌 반사판이 되자. 그들의 말이나 행동을 스펀지처럼 흡수하지 않고, 반사판이 되어 그대로 비춰 주는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앙갚음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상대가 도를 넘었다는 것을 알게만 하면 된다. 만약 그게 어렵다면 단순히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멀어지는 것도 방법이다. 대응할 만한 충분한 에너지가 없을 때 스스로를 갈등 상황에 놓는 것은 나를 다치게 하

는 행위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동안 상대방이 베푼 호의와 현재 내가 받고 있는 부정적 영향은 개별적 사건임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내게 호의나 희생을 제공했다고 해서 나에게 상처 줄 권리는 없으니까 말이다. 진정으로 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내가 나를 싫어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이전 02화 우울증 극복 방법의 모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