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한 잔, 맥주 한 잔, 위스키 한 잔
좋아하는 사람들과 기분 좋게 부딪히는 술잔만큼이나 혼자서 마시는 술도 좋다. 정확히는 혼자서 천천히 맛있는 음식과 술을 음미하는 시간이 좋다.
내 혼술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6-7년 전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 회사 근처에 있던 아오이토리라는 빵집에서의 혼술이 아마 내 첫 번째 혼술이었던 것 같다. 소금빵으로 유명한 그곳은, 낮에는 빵을 밤에는 간단한 음식과 술을 파는 캐주얼 다이닝 바로 운영되는 곳이었다. 불금이었고 약속은 없었고 그냥 집에 들어가기는 아쉬워서 들어간 그곳에서 파스타와 함께 와인 한 잔을 마신 순간이 아직도 선명히 기억난다. 애초에 술을 마시기 위해 들어간 곳은 분명 아니었다. 그저 파스타랑 잘 어울리는 음료가 뭐가 있지 보다가 화이트 와인을 한 잔 시켰는데, 그 경험이 너무 좋았었나 보다. 한 주의 끝에 즐기는 여유로움이 꽤나 만족스러웠다.
그날을 기점으로 나는 가끔씩 ‘금요일 혼술타임’을 즐겼다. 일찍 퇴근 한 날에는 회사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연남동으로 반경을 넓혔다. 정처 없이 골목 구석구석 걷다가 그냥 좋아 보이는 곳에 무작정 들어갔던 적도 있다. 사장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그곳의 시그니쳐인 스테이크파이와 레드와인을 즐겼던 순간 또한 또렷하게 기억난다. 불금에 다들 이쁘게 차려입고 데이트하러 온 사람들 속에, 혼자만 너무 쩔어있어서 조금 창피했지만.. 사실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런데도 혼자 와서 즐길 만큼 다 컸네’ 라며 오히려 스스로를 기특해했다.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서 주변 사람들 의식하지 않고 밥과 술을 즐기는 나지만, 어떤 날은 가게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던 적도 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은 유독 그랬던 것 같다. 나름의 용기가 필요했던 그날은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하는 게 맞다’는 걸 한 번 더 깨달은 하루이기도 하다. 망설인 게 무색할 만큼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 해 난리였던 프레디머큐리의 공연을 빔프로젝트로 즐기며 맥주 한 잔을 천천히 비우던 11월의 마지막 날은 그 어느 때보다도 후련했다.
요새는 혼술의 범위에 위스키가 추가됐다. 아빠만 마시는 으른의 술이라고 생각하던 위스키를 찾게 되다니. 감회가 새롭다. 일이 너무 고된 날, 맛있는 위스키와 음식은 나에게 줄 수 있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바 자리에 앉아 사장님과 나누는 담소, 나처럼 혼자 오신 분들과 나누는 가벼운 대화도 일상에 신선한 즐거움이다. 주변 친구들과 선후배들은 혼자서도 잘 노는 나를 보며 신기해하고는 한다. 가끔씩 멋있게 혼술 하는 나를 보고는 인생 처음으로 혼술에 도전해 본 사람도 있다. 그럴 때면 괜히 뿌듯하다.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잘 즐길 수 있는 내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