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춤추는 목각인형 Sep 24. 2023

일 잘하는 부사수와 일한다는 것

행운이기도 부담이기도

지금 회사에 온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 입사하자마자 정말 쉼 없이 달려왔다. 전 직장에서 한 차례의 큰 폭풍을 겪은 뒤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한 곳인지라, 빠르게 자리를 잡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래서일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내가 이 회사에 다닌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곤 한다. ‘와 아직 3개월 밖에 안 됐어요? 전 여기 엄청 오래 다닌 사람인 줄 알았어요.’ ‘차장님이 여기 온 지 1년도 안 됐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요.’ 전 직장에서 내가 일 잘하는 사람에게 했던 말을 반대로 이번엔 내가 듣고 있다.


이곳에 온 뒤로 쭉 나랑 같이 일하고 있는 내 부사수는 일을 정말 잘한다. 이제 3년 차인데 기획과 실행력 모두 뛰어난 친구다. 심플하지만 깊이 있는 기획, 변화에 유연하고 빠르게 대처하는 실행력.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나는 저 연차 때 저렇게 할 수 있었나?' 라는 질문에 내 대답은 항상 'no' 로 끝난다. 심지어 태도와 마인드셋에서도 배울 점이 많다. 대표적인 예로 이 친구는 바쁜 와중에도 새로 들어온 프로젝트를 즐겁게 대한다.  ‘차장님 이번 프로젝트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요’ '이거 진짜 잘해보고 싶어요' 라는 말을 들으면 나도 덩달아 힘이 난다. 이렇게 좋은 자극을 주는 사람과 한 몸처럼 일한다는 건 분명 큰 행운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이기도 하다. 나 또한 좋은 사수, 배울 점이 많은 사수, 계속 같이 일하고 싶은 사수가 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압박이 있기 때문이다. 일적으로나 그 외적으로나 닮고 싶은 사수가 되고 싶은지라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낄 때면 그 자체로 스트레스가 된다. 기획의 방향성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이왕이면 내 관점이 기준점이 되었으면 하는 욕심도 있는데, 그래서 내 부사수의 주장점이 더 주목을 받을 때면 괜히 맘이 조급해지기도 한다.


닮고 싶은 사수가 되고 싶다면 더 내 실력을 갈고닦는 수밖에는 없다. 정답에 가까운 기획을 만들어감에 있어,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걸 같이 고민해 보면 좋을지 안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잘하는 부사수를 보며 쓸데없는 위기의식을 느끼기보단, 배울 점은 인정하고 내 현업에도 적용해 볼 줄 아는, 그래서 팀에 더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그런 사수가 되고 싶다.


감사하게도 나와 내 부사수는 서로 일하는 스타일과 케미가 잘 맞는다. 내 부사수는 주로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아요'라고 확신을 가지고 밀어붙이고, 나는 '이게 진짜 맞을까? 백본을 더 탄탄하게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를 계속 두드리는데 그게 적절한 중간 지점에서 만난다는 걸 최근 둘이 대화하며 깨달았다. 서로의 장점을 흡수해서 둘 다 의심의 여지없이 자신 있게 제안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순삭, 10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