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인형 가지고 놀기
퇴근길 버스를 기다리며 잠깐 들른 인형 뽑기 가게에서 개구리 탈을 쓴 짱구 인형을 만났다. 평소 나를 개구리라 놀리는 오빠는 저건 무조건 뽑아야 한다며 현금을 꺼내 들었고, 두 번의 시도 끝에 기어코 뽑기에 성공했다. 우리 집에 더 이상의 인형은 안된다고 말한 나였지만 아이처럼 좋아하며 인형을 품에 안고 있는 오빠의 모습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오빠는 얘한테 이름도 지어줬다. 이름은 윤구. 내 성인 '윤'과 개구리의 '구'를 딴 이름이었다. 평소 춘식이와 라이언으로 장난치기 좋아했던 오빠에게 윤구는 새로운 놀잇감이 되었다. 이를테면 출근 전에 윤구를 집안 어딘가에 배치해 두는 식. 방심하고 있던 순간 예상치도 못했던 곳에서 튀어나오는 윤구를 보며 나는 깜짝 놀랐고, 그런 나를 보며 오빠는 낄낄대고 웃는 나날이 한동안 반복되었다.
장난기 많은 오빠 덕분에(?) 윤구는 우리 집 틈새 곳곳으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상상치도 못한 곳에서 만나게 되는 윤구의 모습이 웃겼고 이 자리에 이 포지션으로 윤구를 갖다 둔 오빠를 상상하는 건 더 웃겼다. 내가 먼저 퇴근해서 오빠가 집에 없는 날에는 오빠에게 꼭 윤구 인증샷을 보냈다. 웃기고 귀여운 건 같이 공유하고 떠들어야 제 맛이니깐.
집안 곳곳을 누비던 윤구는 이제 서프라이즈 까꿍할 곳이 없어서 침대에만 누워있다. 퇴근 후 지친 와중에도 날 웃게 해 준 윤구, 아니 윤구를 가지고 웃긴 컨텐츠를 만들어준 오빠가 고맙다. 귀여운 걸 좋아하는 귀여운 남자랑 같이 사는 삶은 귀여울 수밖에 없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