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하고 떨어지고 좌절하고.의 무한 루프
어디든 빨리 다시 취업해야 할 것 같아서 퇴사 직후 바로 재취업 준비를 했다. 평소 좋아하던 여러 브랜드에서 면접 제안을 많이 받았다. 모두 면접 분위기가 좋았다. 그중 한 곳에서는 내가 낸 아이디어가 내부에서 준비 중인 방향과도 일치한다며 놀라는 눈치였다.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기도 했는지라 '방향을 잘 잡았구나' 뿌듯해했다.
결과는?
관심 갖고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OO님의 역량과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아쉽게도 함께 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다음번에 또 좋은 기회로...(이하 생략)
좋은 소식을 기대하고 있던 다른 두 군데는, 3년 만에 개최되는 서울재즈페스티벌을 즐기러 가는 날 아침, 나에게 불합격 소식을 알렸다. 무려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열리는 서재페였다. 날씨도 화창하고 무대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는데 나는 온전히 즐길 수 없었다. 헤드라이너였던 핑크 스웻이 무대를 찢어놓는 와중에도 나의 박수와 환호 속엔 ‘왜 떨어졌을까 너무 가고 싶었는데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왜 이번에도 안 됐을까’라는 아쉬움이 이따금씩 진하게 묻어 나왔다.
넥스트 스텝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퇴사를 한 건 처음이라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점점 조급해졌다. 가족들과 친구들은 이 참에 좀 쉬라고들 말했다. 여태껏 달려왔으니 그래도 된다고, 너라면 어디든 갈 수 있지 않겠냐며 응원해 줬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해 봤지만 쉽지 않았다. (참고로 나는 파워 J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고 내가 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던 시간이었음에도 어쩐지 잉여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상황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마다 3년 전의 내 선택을 후회했다. 여전히 나를 괴롭히는 그때의 선택. 확신을 가지고 지원한 곳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가 너무 좋아하던 브랜드였다. 그리고 최종 합격도 했었다. 그런데, 진짜 어이없게도 주변 사람들의 말에 흔들렸다. 업계 선배들의 조언에 더 귀 기울일수록 처음의 내 생각이나 가치관이 흐릿해졌고, 긴 고민 끝에 결국 거길 가지 않았다. 3년 동안 그 브랜드가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내가 차 버린 기회가 너무 매력적이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려 했다. 그래서 유치하지만 한동안은 아예 핸드폰 홈 화면에서 그 브랜드 앱을 지워버리기도 했다. (불과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일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렸다.)
이런 크고 작은 시련은 내 가치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밀어붙일 수 있는 용기와 기회가 주어졌다면 일단 해보는 태도, 무엇보다 주변 환경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내가 나를 잘 알고 있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신념이 생겼다. 확실한 건 시간이 지날 수록 나는 좀 더 단단하고 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