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열두 수도 이야기 - 열둘. 아일랜드, 더블린(3)
더블린에서의 2년 6개월은 '나'를 바꾸었다. 감히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 그 이전과 내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거나, 그 이후의 내가 전혀 다른 모습의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블린에서 2년 6개월을 살고 난 후, 나는 '본래의 나'와 더 어울리는 모습으로 돌아갔다. 나 자신에게 충실하고, 다른 사람들의 삶과 내 삶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는,
실은 사람마다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다 다르고, 내 행복은 결코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조건들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 이해하는.
할 수 있다면 더블린에서 계속 살고 싶었다. '적어도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살 자유 정도는 있는 것 아닌가.' 더블린의 거리를 걸으며 그런 생각을 자주 했었다. 그렇지만 나는 결국 더블린을 떠나 왔다. 더블린이 나에게 이제 그만 떠나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내가 더블린을 그만 보내주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나 좋아하는 것을 두고 와야 한다는 사실이 그때는 조금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같이 갈 수 없을 때는 그만 손에서 놓는 것이 맞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손에서 놓았다고 해서 더는 좋아하지 않게 된 것은 아니라는 것도 말이다.
더블린을 떠나기 전, 오랜만에 피닉스 파크(Dublin Phoenix Park)를 찾아갔다. 유럽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는 이 공원은 햇볕이 좋은 날이면 온 더블린 사람들이 찾아와 잔뜩 햇볕을 즐기다 가는 곳이다. 하지만 더블린 사람들이 총출동을 한다 해도 이 공원은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북적거린다는 느낌을 받을 일이 없다. 이곳에 돗자리를 깔아 놓고 그 위에 앉거나 누워, 책을 읽거나 노래를 듣거나 시원한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있노라면, '내가 이 삶에 대해 더 이상 무슨 불만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렇게 피닉스 파크와 작별 인사를 나눈 후에는, 잠시 더블린을 떠났을 때 내가 무척이나 그리워했던 아이리쉬 커피를 한 잔 마시러 갔다.
커피에 아이리쉬 위스키와 설탕을 넣고 끓인 후, 잔에 따라 마시는 이 ‘아이리쉬 커피’는 더블린에 사는 동안 내 사랑을 듬뿍 받았던 것 중 하나이다. 바텐더의 솜씨에 따라 그 맛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이리쉬 커피를 마시기 위해 거칠 수밖에 없는 모험이지만, 그다지 까다롭지 않은 입맛을 가진 나는 웬만한 아이리쉬 커피를 다 맛있게 마실 수 있다.
더블린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후에는 갑자기 할 일이 많아진다. 드디어 파리와 런던을 다녀오고 더블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영화 <Once>에 등장해 나름 그 유명세를 떨쳤던, 킬라이니 힐도 다녀온다.
킬라이니 힐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았고, 파리는 어쩐지 어둡고도 아름다웠으며, 절대로 좋아하지 않을 거라 마음먹었던 런던마저 실은 나를 설레게 했다. 그렇게 바쁘게 더블린에서의 세 번째 여름이 지나갔고, 이제 가을도 그 끝을 향해 달려가던 무렵, 더블린에서의 마지막 날이 나를 찾아왔다.
처음 서울을 그만 떠나기로 했을 때, 왜 하필 더블린을 선택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나는 유럽의 어딘가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이왕이면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이기를 바랐고, 그래서 영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는 나라를 찾다 보니 영국과 아일랜드만이 그 후보에 남았다. 그래서 런던이냐, 더블린이냐를 놓고 잠깐 고민을 하다가 다른 사람들이 대부분 런던으로 간다면 나는 더블린으로 가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내 선택이 현명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나는 모른다. 9박 10일 머물러 보았던 런던은 더블린보다 훨씬 더 볼 게 많았고 훨씬 더 화려하기도 했고 훨씬 더 나를 활기차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만약 더블린이 아니라 런던에서 2년 6개월을 살았다면 내 삶은 또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런던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다 더블린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리피강 너머로 반짝이는 작은 건물들의 불빛을 보며 'Home, Sweet home'이라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 소박한, 이 특별날 것 없는, 이 조용하고 친절한 도시를, 한때나마 'Home'이라고 부를 수 있어서 참으로 좋았다고 생각하며 말이다.
그렇게 더블린을 떠나 온 지 어느덧 삼 년 하고도 두 달의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이탈리아 여행을 하기 위해 한 번 더 유럽에 다녀왔으니 원하기만 했다면 더블린에 살짝 다시 발을 디딜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더블린에 놀러 와!'라는 친구들의 말에 끝까지 웃음으로만 답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더블린은 유럽의 모든 도시 중에서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도시인 동시에 내가 가장 돌아가길 어려워하는 도시이다.
더블린에서 사는 동안 나는 나에게 수도 없이 많은 질문을 던졌었고, 그 질문에 답을 하는 일은 언제나 어려웠다. 남들은 대부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정착해서 살기 시작할 때, 너는 어쩌자고 이 이국에서 맥주를 팔고 있는 거냐고, 앞치마를 두르고 춤추는 손님들로 가득 찬 펍 안을 뛰어다니면서도 문득문득 나에게 묻곤 했다. 그 당시에는 끝끝내 그 질문에 답을 하지 못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답을 알고 있다. 나는 내가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그 방법을 찾기 위해, 내 삶에는 '더블린에서의 2년 6개월'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렇게나 더블린을 그리워하면서도 아직은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을 망설이는 것은, 그렇게 더블린에서 살아남은 내가 너무 애틋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아등바등거렸던 그때의 내가 너무 안쓰럽고 어여뻐서, 너무 가엽고 애틋해서 아직은 더블린으로 돌아갈 자신이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결국 더블린으로 돌아가게 될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게 언제가 되든 더블린을 다시 만나면,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 그때 그렇게 지친 마음으로 이 도시를 찾아왔던 나를 받아들여 주어서.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왔던 나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살아남게 해 주어서. 내가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결국은 찾아내게 도와주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