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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da Nov 19. 2020

Amsterdam. 당신이 모르는 암스테르담

유럽의 열두 수도 이야기 - 열하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2)




암스테르담에서의 두 번째 날은 아침부터 바쁘다. 예약해 둔 시간에 맞춰 '안네 프랑크의 집'을 둘러보고 나온 후, 점심을 제대로 챙겨 먹을 틈도 없이 '레이펜너 치즈(Reypenaer Cheese)'를 찾아 나섰다. 레이펜너는 백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네덜란드의 치즈 명가인데, 암스테르담에서는 'Cheese Tasting Class'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한 시간 정도 진행되는 이 수업에서는 여섯 가지 종류의 치즈와 그에 맞는 와인을 시식하며 치즈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비록 영어로만 진행되지만 그 내용이 결코 어렵지 않으니 치즈와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방문해 봐도 좋을 듯하다. 

 

교실로 들어가면 이렇게 자리가 세팅되어 있다.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각각의 치즈와 어울리는 와인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수업이 끝난 후 받게 되는 나름의 '수료증' 김치 없이는 살아도 치즈 없이는 못 사는 나에겐 안성맞춤형 수업이었다.



나는 이렇게 치즈를 먹고 와인을 마시며 오후를 보냈지만, 치즈와 와인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도 암스테르담에서는 할 일이 많다. 네덜란드를 종합 세트로 구경하고 싶다면 '국립 박물관'을, 특별히 반 고흐에 끌리는 사람이라면 '반 고흐 미술관'을, 도서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중앙 도서관'을 가야 하니 말이다. 안네 프랑크 하우스 방문, 유람선 타기, 요르단 거리 걷기, 거기에 암스테르담 근교에 위치한 풍차 마을 '잔세스칸스(Zannse schans)'까지 가보려면 사실 암스테르담에서 3박 4일 일정을 짜는 일이 그리 만만치 않게 느껴진다.  


결국 그때의 나는 '반 고흐 미술관'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선택했지만, 지금은 왜 하필 '반 고흐'를 포기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지금의 나라면 결코 그때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걸 보면, 열여덟 무렵의 내가 지금의 나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내 주장도 영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4년 전쯤의 내가 지금의 나와 전혀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던 사람인 것도 사실인 듯하다.   





네덜란드의 '국립 박물관'인 '레이크스 뮤지엄(Rijks Museum)'


어쨌든 당시의 나는 반 고흐에 집중하기보다는 네덜란드 전체에 집중하고 싶었고, 게다가 이 국립 박물관의 표를 이미 선물 받은 터라 잔뜩 기대에 찬 총총걸음으로 '레이크스 뮤지엄'을 찾았다. 


이미지 출처: archdaily.com


'레이크스(Rijks)'는 네덜란드어로 'Royal(왕궁)'을 뜻한다고 한다. 이 국립 박물관(또는 국립 미술관. 어느 쪽이라도 좋다.)을 직접 방문하지 않더라도 암스테르담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이 앞을 한 번쯤은 지나 봤을 것이다. 한때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핫한 포토스팟이었던 'I amsterdam' 조형물이 바로 이 박물관 앞에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광객으로 인한 몸살+그 의미가 지나치게 너무 개인적이라는 이유' 등으로 인해 이 조형물은 2018년 12월 철거되었으니, 현재의 국립 박물관 전경은 위 사진과 달라졌을 것이다. 


다시 레이크스 뮤지엄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1800년에 건립되어 1885년 현재의 자리에서 개관한 이 박물관은 렘브란트, 고흐, 베르메르 등의 작품을 포함한 약 5,000점의 회화와 약 3,000점의 조각품, 그리고 또 역사적인 수집품을 17,000점 정도 보유하고 있어서 '네덜란드의 보물 창고'로 불린다. 실제로 돌아보려면 꽤나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방문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오전 일찍 입장하는 것이 좋다. 





OBA Library of Amsterdam. 이미지 출처: archdaily.com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더 많이 좋아했고, 그래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곳을 꼽자면 '암스테르담 도서관(Openbare Bibliotheek Amsterdam. 줄여서 'OBA'라고들 부른다.)'을 이야기하고 싶다. 


여행 중에, 세계 각국의 아름다운 도서관을 본 기억이 여러 번 있는 사람들에게라도 이 OBA는 충분히 인상 깊을 공간이다. 우리 식으로 이야기해서 '도서관'이지, 실제로는 '문화 복합 공간'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입장료는 없고, 입장을 위한 별다른 제재도 없으니 그냥 발걸음을 안으로 들이기만 하면 된다. 물론, 2020년 11월, 지금과 같은 코로나 시국에는 어떤 방침을 취하고 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공간은 자유롭고 편안한 곳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피아노이다. 이 도서관에 드나드는 누구라도, 그 앞에 앉아 연주를 시작할 수 있다. 피아노와 도서관이란,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 신선한 둘의 조합은 '암스테르담'과는 무척 잘 어울린다. 자유롭고, 편견에 물들어 있지 않으며, 아름다운 것을 담고 있으니 말이다. 




이미지 출처: archdaily.com


도서관은 총 8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각 층을 오갈 수 있다. 아이들이 놀면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꾸며 놓은 공간도 있고, 세상으로부터 나를 단절시킨 채 혼자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꾸며 놓은 공간도 있다. 어떤 스타일의 독서를 원하든,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책을 읽으면 된다. 건물의 맨 꼭대기 층에는 카페도 마련되어 있으니 카페인이 필요한 사람은 7층을 찾아가자.  




여행 중 읽고 있던 책을 미리 가지고 왔던 나는, 암스테르담을 내려다보는 창가 자리에 앉아 잠시 책을 읽기로 했다. 기억이란 걸 가진 이후로, 평생 내 곁을 지킨 것이 있다면 그것이 책이다. 책에는 너무 많은 나의 역사가 담겨 있고, 그래서 종종, 함께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눌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 애들은 책을 안 읽어.'라는 '요즘 어른들'의 생각과는 달리, 내가 어린 시절에도 책을 읽는 아이들은 흔치 않았고, 그래서 나는 종종 '의외로' '보기와 달리' '신기하게도' '책을 읽는 아이'로 묘사되고는 했다. 당시의 나에게는 늘 읽을 책이 필요했고, 책을 읽을 공간이 필요했다. 


'내 고향에 이런 도서관이 있었다면 좋았을 거야.'


딱히 찾는 책도 없는 채로, 서가 사이를 천천히 거닐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랬다면 어린 시절의 내가 조금 덜 갈증에 시달렸을 거라고. 그랬다면 어린 시절의 나는 조금 덜 외로웠을 거라고 말이다.  


 



암스테르담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기 좋은 풍차 마을 '잔세스칸스'


만약, '네덜란드'에서 풍차를 꼭 보고 싶었다면 기차로 한 20분 정도만 가면 도착할 수 있는 '잔세스칸스'에 다녀와도 좋다. 개인적으로는 크게 인상 깊지 않은 마을이었지만, 동화 속 마을처럼 꾸며 놓은 공간에서 잠시 쉬고 싶다면 잔세스칸스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다만 나는, 나름 코트를 입고 있었음에도 추위에 벌벌 떨며 이곳을 다녀왔고 또 (늘 그러듯) 기차를 잘못 타는 바람에 길을 잠깐 헤맸기 때문에 '잔세스칸스'를 평화와는 거리가 먼 마을로 기억하고 있다. 




해가 지는 암스테르담


그렇게 겨우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오니 도시에는 해가 지고 있었다. 해가 질 때마다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라니, 새삼스레 마음이 벅차서 잠시 걸음을 멈춰 섰다. 내일 아침이면 나는 또 새로운 도시에 도착해 있을 것이고, 그 이후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니, 어쩌면 다시는 이 도시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암스테르담'은 내가 다녀온 수십 여 개의 도시 중 하나 정도로 기억에 남겠지. 누군가 암스테르담에 대해 이야기하면, '아, 거기. 나 가봤어. 거기 좋아.' 정도의 도시로 말이다.


그렇다 해도 이 도시가 마지막으로 내게 보여준 '물 위에 지는 노을'은 암스테르담을 생각할 때마다 함께 떠오를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암스테르담에서 무엇을 꼭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게 되지 않을까. 


"해가 질 무렵엔 꼭 물가에 서 있도록 해."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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