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열두 수도 이야기 - 열하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1)
자그레브를 시작으로 크로아티아를 한 바퀴 돈 후, 더블린으로 돌아온 것은 10월 중순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또 다섯 달쯤 열심히 일을 하고 보니 어느덧 비자 종료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 번 더 비자 연장을 해 8개월을 더 더블린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그만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지 결정을 해야만 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론을 내렸고, 그렇게 다시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 마지막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이번엔 파리나 런던을 선택할 법도 했는데. 온 유럽을 헤집고 다녔다면서, 아직도 파리와 런던을 가보지 못한 상태였는데. 마지막까지도 두 도시를 고집스레 외면한 내가 대신 선택한 것은 암스테르담과 브뤼셀이었다. 둘 모두 더블린과 가까웠고, 그러니 저가 항공을 타고 손쉽게 오갈 수 있는 도시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브뤼셀이 '더블린에 사는 동안 한 번쯤은 가보자.'라는 느낌의 도시였다면, 암스테르담은 '너를 안 보고는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어.'와 같은 느낌의 도시였다는 점 정도이다.
'암스테르담'이라고 하면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마약과 홍등가'를 가장 먼저 떠올리고는 한다. 네덜란드가 가지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의 이미지 때문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네덜란드가 '세계 최초 마약 합법 국가*', '세계 최초 성매매 합법 국가', '세계 최초 동성애 국가'라는 타이틀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을 '마약과 홍등가의 도시'로 떠올리는 것은 다소 슬픈 일이다. 암스테르담은, 그 두 단어가 연상시키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훨씬 더 평화로우며 훨씬 더 낭만적인 도시이기 때문이다.
12세기경, 암스텔 강에 둑을 쌓아 건설된 도시인 암스테르담은 그 기원 그대로 ‘암스텔 강의 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14세기, 한자동맹에 가입하며 중계무역항으로 활약하는 동시에, 운하를 건립하면서 도시의 규모 또한 점점 커졌다. 16~17세기를 거치며 세계 무역의 중심 도시로 성장했고, 그러자 세계 도처에서 사람들이 암스테르담으로 모여들었다. 이때부터 이민자들에 대해 관용적이었던 암스테르담은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자유와 관용의 도시’로 존재해 왔다. 현재도 암스테르담은, 비록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크게 인기 있는 도시가 아닌 것 같지만, 세계 곳곳의 여행자들로부터 사랑받는,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도시 중 한 곳이다.
암스테르담에 가겠다는 내 말에, 정작 신이 난 건 나보다도 그였다. 한 달의 반은 더블린에서, 나머지 반은 암스테르담에서 살고 싶다던 그는 아무런 계획 없이 암스테르담으로 떠나려는 나의 여행 루트를 자신이 대신 짜주었다. 마치 암스테르담을 그렇게 성의 없이 대하는 걸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마지막으로 '암스테르담 크루즈 티켓'과 '국립 박물관 입장권', 그리고 치즈와 와인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Reypenaer Chesse tasting 이용권'을 끊어 주더니, 사랑이 뚝뚝 묻어나는 눈빛으로 자신처럼 나도 암스테르담을 좋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 애정 어린 눈빛 앞에서, 나는 왠지 삐딱하게 굴고 싶었다. 그 무렵 나는 'Sarcastic Dan'으로 불렸고, 그러니 '네가 사랑하는 걸 나는 사랑하지 않을 테다.'라는 분위기로 살았다. 그래서 스스로, 암스테르담에 가기로 결정해놓고도 '운하. 튤립. 안네의 일기. 반 고흐. 자전거. Iamsterdam' 같은 뻔하디 뻔한 이름들만 떠올리며 그 도시를 상상했다. 하지만 막상, 공항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가져다 둔 후, 혼자 거리로 나와 이리저리 걸음을 옮기다가, 별생각 없이 산 칩스를 소스에 찍어 입에 넣는 그 순간, 바로 암스테르담이 좋아졌다.
바보처럼. 냉소적인 체는 할 수 있지만 도도함을 유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네덜란드'라고 하면 떠오르는 맥주는 있어도 떠오르는 음식은 없었다. 그곳으로 여행을 다녀와 본 지금도 별로 다를 바가 없다. 따로 검색을 해보지 않는 이상, 나는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음식을 모른다. 내가 원체 음식에 관심 없는 사람인 탓도 있겠지만,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음식 중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식이 없는 것도 영 틀린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네덜란드'하면 생각나는 음식이 바로 이 나라에 도착해 가장 먼저 먹은 음식인 '칩스'이다.
이 칩스는 사실 벨기에에서 넘어왔다고 들었는데, 또 막상 '벨기에'하면 칩스보다는 '와플'이나 '초콜릿'이 먼저 생각나니 칩스는 네덜란드 쪽으로 넘겨도 괜찮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음식을 미국식으로 '프렌치프라이(French Fries)'라고 부르지만, 사실 우리나라의 패스트푸드점에서 먹게 되는 감자튀김은 이 칩스와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같은 음식이라고 보기 어렵다. 후자가 전자보다 크기도 크지만 두께도 훨씬 더 두툼하기 때문에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서 굉장히 맛이 좋다. 네덜란드에서는 이 칩스를 '프리츠(Frites)' 혹은 '파탓(Patat)'라고 부르는데, 암스테르담 거리 곳곳에서 이 간식을 팔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게 마음에 쏙 드는 맛을 가진 칩스를 한 손에 들고 일단 암스테르담의 요르단(the jordaan) 지역을 좀 거닐다가 미리 예약해 둔 시간에 맞춰 크루즈를 타러 갔다.
‘네덜란드’라는 이름 자체가 ‘낮은 땅’을 의미한다. 아마도 어린 시절, 구멍 난 제방을 주먹으로 막아 나라를 구했다는 네덜란드 소년 이야기를 한 번쯤은 들어본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야 사실과는 거리가 있겠지만, 어쨌든 네덜란드가 물길의 위협 속에서 살아남은 나라인 것은 사실이다. 이 나라의 수도인 '암스테르담' 역시 저지대에 위치해 있고, 때문에 바닷물이 끊임없이 육지로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제방을 쌓고 운하를 만들어 물길을 텄다. 그 결과 아래 사진과 같은 모습의 도시가 탄생했는데,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암스테르담의 모습이다.
암스테르담까지 여행을 왔다면, 크루즈를 한 번쯤 타지 않을 수 없다. 배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도시를 둘러보는 것인데, 워낙 보편적인 투어라 그 가격도 만 원을 크게 상회하지 않는다. 크게 대단할 것 없는 투어라 해도, 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크루즈 위에 앉아 암스테르담의 물길 위를 달려보는 그 경험을 굳이 마다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그렇게 배를 타고 얼마쯤 달리다 보니, 한 번도 가보지 않았는데도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지는 건물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안네의 일기>는 우리에게 고전이었고, 나 역시 초등학생 때 (아마도 청소년이 읽기에 적합한 형식으로 편집된) 이 책을 읽은 경험이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저 나도 안네처럼 일기장에 이름을 붙여 본 기억만 남아 있다.
그 이후로 꽤 오랫동안 딱히 생각해 본 적 없던 '안네'를 다시 만난 건 갓 더블린으로 거주지를 옮겨 왔던 무렵이었다. 듣기 실력을 좀 키우자는 뜻에서, 영화관에 (무제한으로 영화 관람이 가능한) 패밀리 멤버로 가입을 해두고 매일매일 한 편씩 영화를 봤던 당시의 내가, 이상하게도 꽤 마음에 들어했던 영화가 'The Fault in Our Stars'였다. (굳이 '이상하게도'라고 말한 이유는 이 영화가 좋아할 만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원래의 나라면 그렇게까지 좋아할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고 평가도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14년, '안녕, 헤이즐'이란 이름으로 개봉했다.)
이 영화가 괜히 마음에 들어서 사흘을 연달아 극장에 가서 똑같은 영화를 보는 이상한 행동을 한 적이 있는데, 인연이라 그랬는지 얼마 후 구경 삼아 놀러 간 벼룩시장에서 또 이 영화의 원작인 동명 소설 'The Fault in Our Stars'를 발견했다. 딱 1유로 밖에 하지 않았으니, 이 책을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내 손에 들어온 이 책을 또 몇 달에 걸쳐 읽어낸 게 내가 원서로 소설을 읽은 두 번째 경험이었으니 나에게 헤이즐('헤이즐'은 여주인공의 이름이다.)의 이야기는 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왜 '안네'와 관계가 있느냐 하면, 이야기 속 두 주인공이 암스테르담으로 여행을 가고, 둘이서 '안네 프랑크의 집'을 방문하며, 그곳에서 첫 키스를 나누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연찮게 '안네'가 다시 내 기억 속에서 살아났고,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후 나는 <안네의 일기>를 구해서 다시 읽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 내가 알던 이야기와 어른이 되고 나서 내가 읽은 이야기가 실은 전혀 다른 이야기임을 깨닫는 경험을 새삼스레 한 번 더 한 후, 암스테르담행 비행기를 탄 터였다.
그러니까 암스테르담의 물길 위에서 '안네의 집'을 발견했을 때는 기분이 묘했다. 어릴 땐 그냥, 그 애가 자기 일기장에 이름을 붙여준 게 개성 있게 느껴졌을 뿐인데. 그때의 나에게는 '히틀러'니 '유대인 학살'이니 하는 것들이 다 무슨 영화 이야기처럼만 느껴졌는데.
미리 이야기해두자면, <안네 프랑크의 집>은 가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곳이다. 현장에서 입장권을 구매할 경우, 줄이 무척 길기 때문에 예약을 해두는 것이 좋다. 다락방 등을 올라갈 때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치마보다는 바지를 입는 것이 편하다. 암스테르담에서의 두 번째 날, 이 곳을 다시 찾았는데 그곳에서 찍은 사진이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때는 3월 초였고, 사람들은 '봄'이라고 느꼈을지 모르지만, 유럽에는 아직 봄이 오지 않고 있었다. 해는 조금씩 길어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아쉬움을 느낄 만큼은 짧았고, 그래서 크루즈로 운하를 한 바퀴 돌고 오자 암스테르담엔 이미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내일은 또 내일의 여행이 남아 있으니, 오늘은 이쯤 돌아가자- 라는 생각을 했지만 어쩐지 쉬이 발길이 숙소로 향하지 않았다. 그럼 대신 커피나 한 잔 할까, 생각하는 내 앞으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Starbucks'가 보였고 '암스테르담까지 와서 스타벅스냐?'라는 핀잔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도 별 망설임없이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드물게도 내 이름을 똑바로 써준 이곳의 직원에게 감사하며 커피를 마시고 있자니, 그가 왜 그렇게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눈으로 이 도시에 대해서 이야기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삐딱하게 굴려 해도 고작 반나절 만에 받아 들이게 되는 '사랑'같은 걸 이 도시가 품고 있었던 것이다.
1. 네덜란드가 세계 최초 마약 합법 국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곳에서 모든 종류의 마약이 합법인 것은 아니다. 또한 한국은 기본적으로 '속인주의(자국 영역의 내외를 불문하고 국적을 기준으로 하여 모든 자국민에 대해 법을 적용하는 원칙)'를 적용하기 때문에 마약류가 합법인 국가에서 마약을 복용했다고 해도 처벌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