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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da Sep 19. 2021

Don't call me, Frank

나는, 더블린의 웨이트리스 (10)


Frank. 190cm는 족히 넘을 키에 우리나라에서는 쉬이 찾아보기 힘든 거구의 몸을 가진, 그러한 외모만으로도 충분히 위압감이 느껴지지만 사실 겪어보면 외모보다도 성격이 더 위압적인, 그래서 고갈티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스태프들을 단번에 주눅 들게 만드는, 이곳의 괴팍한 대디, 프랭크.      


사실 처음 엘렌이 그를 가리키며


“프랭크는 고갈티의 대디 같지 않아?”     


라고 물었을 때, 나는 코웃음을 쳤다. 세상에 저런 대디가 어딨어?


그도 그럴 것이, 툭하면 사람들을 윽박지르는 그의 모습에서 '이상적인 아버지'의 모습 같은 건 떠올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사람의 말 같은 건 조금도 듣고 싶지 않아 해서, 자신의 말에 스태프들이 조금이라도 변명을 할라치면 그 큰 눈을 부라리며 상대방이 입을 다물게 만들곤 했다. 게다가 기분 변화도 아일랜드의 날씨만큼이나 잦아서, 바로 몇 분 전에 너무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Thanks, Dan.”     


이라고 했다가도, 조금만 수가 틀리면 다짜고짜,      


“Fucking Dan!!! Go away from me!!!!”     


라고 소리치는 사람이었다. 이런 프랭크를 대하는 일이 워낙 쉽지 않다 보니, 고갈티에 들어가기 전부터 희정은 내게     


“언니, 프랭크 눈에는 안 띄는 게 상책이야. 그 사람 눈에 너무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도 말고, 너무 못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도 말고,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해.”     


라고 조언을 했다. 물론, 현명한 조언이었다. 다만, 나는 따를 수 없던 조언이기도 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도 늘 바깥 테이블까지 꽉 차 있던 고갈티.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 쉬운 건 하나도 없었지만 그중에서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사장 마틴과 매니저들을 대하는 일이었다.




고갈티는 사시사철 바쁘고, 일하는 시간이 너무 길며, 일하는 내내 늘 플롯에 신경을 써야 하는 등 여러모로 힘든 점이 많은 곳이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힘이 든 건 사장 마틴과 매니저들을 대하는 일이었다. 다른 부분들은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적응이 되지만, 마틴과 프랭크, 또는 도네를 대하는 일은 결코 쉬워지지 않았다.   


나 역시 희정의 조언에 따라 웬만하면 그들을 슬금슬금 피해 다니고 싶었지만, 그 또한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스케줄 표를 담당하고 있던 매니저 비키가 언제나 나를 메인바에 배치했기 때문에, 메인바 담당 매니저였던 프랭크의 눈에는 띄지 않으래야 띄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눈에 띄지 않으려면, 일을 보통 수준으로는 해냈어야 하는데 나는 첫날부터 프랭크에게서 쫓겨난, 그가 늘 하던 말을 빌리자면 ‘디자스터(disaster)’에 가까웠으니, 프랭크의 눈에 띄지 않기는커녕 처음부터 그의 뇌리에 나라는 웨이트리스를 제대로 각인시킨 셈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프랭크는 나를 별로 곱게 보지 않았다. 그는 일하고 있는 웨이트리스의 수가 조금만 많다 싶으면 늘 나를 바깥 공간으로 쫓아버리고는 했다.


“단, 프랭크가 너한테 아웃사이드를 맡으래.”


그의 말을 대신 전해줄 때마다 에더는 자기가 더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프랭크는,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스태프와는 직접 말을 하지 않는 괴상한 습관이 있었다.) 


가장 지저분하고, 주문을 하는 손님들이 거의 없어서 팁 역시 받을 수 없는 아웃사이드.  억울했지만, 그렇다고 왜 내가 매번 아웃사이드를 담당해야 하냐고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삼삼오오 손님들이 모여 담배나 피우고 있는 바깥 공간으로 나가면, 멍하니 서 있을 수만은 없어서 일단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손님들이 나에게 주문을 하든 말든, 나는 바깥 공간을 쓸거나 쓰레기통을 비우거나 빈병을 모아 갖다 버리는 데 열중하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가장 먼저 마음에 들어 한 건 예상치 않게도 도네였지만(그녀는 내가 마지막까지 고갈티에서 가장 싫어한 매니저였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랭크 역시 처음처럼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지는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최소한 그는 더 이상 나를 바깥으로 쫓아내지 않았고, 나에게 할 말을 다른 웨이트리스들을 통해 대신 전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당시 고갈티에는 열 명에 가까운 새로운 웨이트리스들이 들어와 있었고, 프랭크는 당연히 그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했다. 그 속에서 간결하기 그지없는 내 이름만은 단번에 기억한 프랭크가, 뭔가 시킬 일이 있을 때마다 나를 불러대기 시작한 건 바로 그 무렵의 일이었다.  


그때부터 고갈티에서 일을 한 아홉 달의 시간 동안, 그곳의 사람들 중 내 이름을 가장 많이 부른 사람은 단언컨대 프랭크였을 것이다. 처음엔 내 이름이 너무 쉬웠기 때문에, 그 후엔 내가 자신이 시키는 일을 빨리빨리 해낸다는 걸 알아챘기 때문에, 그리고 그 후엔     


“프랭크는 혹시 내 이름 말고는 아는 이름이 없는 거야?”     


라고 불평해야 할 만큼 내 이름을 부르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에, 이후로 그는 '단'이라는 이름을 지겹도록 불러댔다.   




프랭크는 고갈티에서 벌써 15년쯤 일을 하고 있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고갈티에서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아일랜드 남자였다. 희정은 그가 자신의 사업을 하기 위해 잠깐 나갔다가 다시 고갈티로 돌아왔다고 말을 했다. 제니퍼는 그가 게이임이 틀림없다고 얘길 했고, 미승은 그가 마흔일곱이나 여덟쯤 되었다 말을 했지만 엘렌은 또 그가 쉰이 넘었을 거라고 말을 했다. 누군가는 그의 그런 괴팍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가 좋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그가 자신에게는 그리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가 싫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고, 실은 내가 그를 좋아하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스태프에겐 종종 상냥했지만, 내게는 웃어 보이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무슨 일만 생기면 내 이름을 불러댄 건 참으로 우스운 노릇이었다. 어느 날, 늘 그러던 것처럼, 무뚝뚝한 얼굴로 나에게 무언가를 시킨 그가, 갑자기 내 뒤의 어디쯤인가를 보며 활짝 웃는 것이 보였다. 프랭크가 저런 미소도 지을 수 있단 말이야? 의아한 나는 뒤를 돌아보았고, 바로 그곳에 쟈넷이 웃으면서 프랭크에게 인사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쟈넷. 멕시코에서 온 그녀는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성실하고, 모든 스태프들에게 친절하고, 결코 혼자만 편하려고 꾀를 부리거나 이기적으로 굴지 않는 그녀를 나 역시 참으로 좋아했다. 


하지만,  


‘다정한 건 쟤네한테 다정하고, 왜 일은 언제나 나한테 시킨담.’     


불쑥, 그런 생각이 든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쟈넷이 좋으면, 마감도 쟈넷이랑 하지 왜 매번 나를 남겨?


그러니까, 그것은 일종의 질투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에게 상냥한 미소 따위 지어 보이지 않는 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안나 앞에선 종종 어린애처럼 굴었지만, 비키에겐 언제나 ‘고마워, 비키. 고마워, 고마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프랭크에게는 잘 웃지도 않았고, 고맙다는 말 같은 것도 웬만하면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메인바에서 일하고 있는 웨이트리스가 제 성에 안 찬다 싶으면 무조건 나를 불렀고(단, 쟤 집에 보내고 네가 메인바로 와), 나는 누구에게 이야기해도 해결이 안 되는 문제가 있으면 프랭크를 찾아갔다(프랭크, 소스 박스를 채워야 하는데 온갖 소스가 다 떨어졌어. 창고에도 없고, 키친에도 없는데 우리더러 뭘 어쩌란 거야?)  


그러면 나는 아무리 내키지 않아도 그가 부르는 메인바로 달려갔고, 그는 내가 물어보는 문제들을 어떻게든 해결해 주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에게 상냥하지 않아도 서로를 필요로 할 때가 많았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끊임없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면서, 그렇게 꼭 아홉 달을 그곳에서 함께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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