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블린의 웨이트리스 (9)
처음부터, 고갈티에서의 일이 쉽지 않으리라 생각을 하긴 했다. 나는 몸이나 손으로 하는 일에는 흥미도 없었고, 재주도 없었다. 무언가를 정리 정돈하기보다는 정리 정돈되어 있는 것을 어지럽히는 쪽에 가까웠다. 게다가 당시의 나는, 아일랜드에서 벌써 일 년이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창하지 못한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술이나 음식에는 원래 문외한이라 펍에서 일하기엔 배경 지식도 너무나 부족했다.
그런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더블린에서 가장 크고 가장 붐비는 펍에 던져졌으니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모든 것이 순조로울 수는 없었다.
더블린에서 사는 동안, 이 기네스를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서빙하게 되리라고는 그 도시로 향할 때만 해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었다.
첫 번째 사고는 영수증을 잃어버리는 데서 시작되었다. 사실 고갈티는 조금 특이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건 모든 플로어 스태프가 출근과 동시에 각자의 플롯(float. 돈)을 받는 것이었다. 일을 시작할 때 매니저로부터 300유로가 든 돈 봉투를 받고, 손님이 자신에게 음식이나 술을 주문하면 그 돈으로 바텐더에게 음식 주문을 해야 했다. 그리고 바텐더에게서 영수증을 받으면 그것을 잘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손님이 돈을 자신에게 지불하면, 그 돈으로 다시 자신의 플롯을 채우는 것이었다. 그렇게 정확하게 다시 300유로를 만들어 마지막 퇴근을 할 때 매니저에게 반납을 하는 것이 고갈티의 시스템이었다.
이런 시스템 때문에 고갈티의 직원들은 종종 자신의 돈으로 플롯을 채워 넣는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만약 돈을 내지 않고 그냥 도망가 버리는 손님이 있으면 그 손해는 사장이 아니라 스태프가 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경험이 쌓이면 플롯이 모자라는 일은 거의 없지만 (보통은 팁을 받기 때문에 돈이 남는다. 그리고 고갈티에서는 팁을 모아서 나누거나 하지 않고, 각자가 받은 팁은 각자가 가졌다.), 아직 일이 익숙하지 않을 때나 운이 좋지 않아서 질 나쁜 손님을 만나면 큰돈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최악의 경우엔 자신의 봉투 자체를 어디선가 잃어버려 300유로를 그대로 되갚아야 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그러니까 고갈티에서의 첫날, 내가 맞닥뜨린 문제도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사실 그날 나는 첫 출근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일을 잘 해낼 수 없었다. 그런데 원래 출근하기로 되어 있던 웨이트리스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결근을 하면서 내가 그 빈자리를 대신해야만 했다. 때문에 프랭크는 일을 시작하기 직전 나를 따로 불러내, 내가 ‘오늘의 파이’와 ‘오늘의 수프’를 외고 있는지 확인한 다음 (다행히 외우고 있었다), 'Don't make a mess'라고 미리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나는, 프랭크 앞에서 고개를 끄덕- 하며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과는 달리, 첫 주문을 받는 순간부터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켰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그릇에 담긴 음식들이 내 눈에는 다 똑같아 보였고, 그래서 이 테이블에 가져다줘야 할 음식을 저 테이블에 가져다주는가 하면, 막상 내가 맡고 있는 테이블에 가져다주어야 할 음식은 그냥 바 위에 방치해 두고는 했다.
고갈티의 메뉴판에는 주류 가격이 따로 적혀 있지 않아서, 손님들이 자주 찾는 주류 가격은 외우고 있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희정은 나를 위해 주류 가격을 하나하나 적어주었지만, 희정의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나는 고갈티에서 일을 시작하자마자 문제아로 낙인찍혔다.
당연히 함께 메인바에서 일을 하고 있던 웨이트리스들은 나에게 화가 났고, 그녀들은 ‘단이 음식을 잘못 서빙했어!’라든가 ‘이거 단 테이블 껀데, 왜 서빙을 안 하는 거야?!’라며 계속해서 불만을 쏟아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한 실수들을 바로잡거나, 일일이 그녀들에게 사과를 할 여유가 없었다. 그저, 너무나 정신이 없어서 종교 같은 건 가져본 적도 없으면서 아무 신이나 붙잡고 나를 좀 도와달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일뿐이었다.
'하나님, 부처님, 성모 마리아님, 아니면 뭐 알라알라, 누구든 좋으니 제발 절 좀 도와주세요!'
살면서 그렇게 내가 멍청해 보였던 순간은 그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로도 두 번 다시없었다. 나는 정말로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이 바보 같은 몰골로 뛰어다녔고, 그렇게 정신없이 굴다가 결국 영수증 하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중국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세 명의 남자 손님들이었는데(중국어를 배운 적이 있어서, 그들이 하는 말을 대충 알아들었다.), 나에게 기네스를 한 잔씩, 총 세 잔을 주문했다. 그래서 기네스 세 잔을 가지고 가 계산을 요청할 때, 불현듯 내가 영수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아챘다. 당황했고, 그러자 그들도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고, 17.85유로를 지불해 달라는 나에게, 그들은 영수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나는 다시 바로 돌아가, 영수증을 재 출력해줄 수 없는지 물었지만 한 번 출력한 영수증을 다시 출력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래서 혹시 떨어뜨린 영수증이 있지는 않나 하여 주변을 열심히 살펴보았지만, 어쩐 일인지, 어디에서도 기네스 3잔을 주문한 영수증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영수증 찾는 것을 포기하고 그들에게로 돌아간 내가, '미안해. 영수증을 잃어버렸어.'라고 말했을 때, 그들이 한 말은
“우린 이미 너한테 돈을 냈잖아.”
였다.
“뭐라고?”
“아까 너한테 20유로 줬잖아. 어서 잔돈이나 남겨줘.”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들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봐, 내 지갑에 원래 돈이 이만큼 있었는데, 지금 20유로가 딱 부족하다고. 그러니까 이미 너한테 돈을 낸 거야.”
그는 자신의 지갑을 벌려 보이며 그렇게 주장했다. 원래 내가 이만큼 돈이 있어야 했다니까. 그런데 20유로가 없어. 그러니까 내가 너한테 그 20유로를 준 게 맞아.
당연히 그들은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 취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니, 자신들이 돈을 냈다고 착각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그들은 나에게 그렇게 지독한 농담을 했던 것일까.
“아니야. 너희는 나한테 돈을 주지 않았어.”
“그럼 왜 내 지갑에 돈이 부족한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기네스 세 잔이 그 가격인 건 맞아?”
“뭐?”
“넌 영수증도 안 보여줬잖아. 가격을 뻥튀기한 거 아니냐고”
“아니야. 기네스는 한 파인트에 5.95유로가 맞아.”
그런 우리의 실랑이를 보고 있던 건, 다름 아닌 프랭크였다. 물론 그도 몇 번쯤은 나의 실수들을 그냥 참고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프랭크는 그렇게 관대한 사람이 아니었고, 당연히 더는 '자신의 메인바를 엉망으로 만드는 나'를 참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Dan!!! Come here!!!"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 보니, 프랭크가 그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선 나를 보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손님들과 실랑이하던 걸 멈추고 그의 앞으로 가 서자 그는 나에게 딱 한 마디만을 했다.
“Go home.”
그러니까, 그것이 고갈티에서의 첫날이었다. 그리고, 나의 괴상한 매니저 프랭크와의 첫 만남이기도 했다.
(+결국 그 기네스 세 잔의 값은 내가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