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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da Mar 04. 2017

Madrid. 그래도, 마드리드

유럽의 열두 수도 이야기 - 하나. 마드리드, 스페인 (1)



첫 직장을 그만두고 석 달째 아무런 수입 없이 지내고 있을 때였다. 제이가 갑자기 전화를 해 ‘나, 스페인에 갈 거야.’라고 말을 했다. ‘같이 갈 생각 있어?’라는 제이의 제안에 가장 먼저 떠올린 건 당연히도 통장잔고였다. 첫 직장에서 고작 1년 2개월쯤 일을 했으니 주머니 사정은 당연하게도 넉넉지가 않았다. 그래서 잠깐 고민을 하다 ‘아무래도 난 안 되겠어.’라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제이는 ‘그럼 나 혼자 가지 뭐.’라고 말했고, 별로 나에 대한 미련도 없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끊었다. 


우습게도 미련이 생긴 건 내 쪽이었다. 그 날 이후 계속해서 마드리드의 거리가 생각났다. 그 거리에서 불어올 바람이 생각났고 그 거리에서 나부낄 낙엽도 생각났다. 물론 그전까지 한 번도 마드리드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상상 속의 그 거리를 떠올리자, 마치 그곳이 내가 태어난 도시라도 되는 것 마냥 그리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제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도 같이 가!’라고 소리를 치자, 제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하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나의 첫 유럽 여행이 시작되었다.  



 

레티로 공원에서 만난 꽃. 제이의 전화 한 통에 나의 첫 유럽 여행이 시작되었다.



마드리드에 대한 나의 막연한 애정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의 나는, 나름대로 열성적인 축구팬이었고 또 그보다도 조금 더 열성적인 레알 마드리드(Real Madrid)의 팬이었다. 주말이면 라리가(La Liga. 스페인의 프로 축구 리그)의 중계를 챙겨 보느라 새벽까지 TV 앞에 앉아있기 일쑤였고, TV 중계가 없을 때면 인터넷을 뒤져 해외 사이트의 중계라도 찾아내 경기를 보곤 했다. 벌써 몇 시즌 째,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를 시즌 첫 경기부터 마지막 경기까지 빠짐없이 챙겨보고 있었으며 때문에 시즌 내내 벤치만 지키는 선수들의 이름도 대부분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레알 마드리드에 대한 애정은 '마드리드'라는 도시 자체에 대한 애정으로 번졌고, 레알 마드리드의 홈 경기장에 가보고 싶다는 꿈은 '마드리드'에 가보고 싶다는 꿈으로 번졌다.  


스페인에 가겠다는 제이의 말에 마음이 흔들린 건 그런 이유였다. 그곳에는 내 꿈의 도시가 있었다. 그러니까 여행을 가지 말아야 할 현실적인 이유들을 아무리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꿈 앞에서 현실은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내 통장 잔고 따위는 무시해 버리고 제이와 함께 마드리드행 비행기를 탔다. 




인천을 떠난 지 13시간 30분 만에 도착한 마드리드 바라하스 국제공항(Madrid-Barajas International Airport)은 마드리드 시내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러니 웬만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시내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우리가 공항에 도착했을 땐 이미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결국 그냥 택시를 타기로 결정한 우리가 만난 건, 친절하고 활기 넘치는 택시 기사 분이었다. 우리가 스페인어를 전혀 하지 못한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스페인어로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해 주려 애쓰던 그분은 다소 찾기 힘들었던 우리의 호텔을 찾아 한동안 골목을 돌고 돌았고, 미안한 마음에 


"그냥 ‘오페라(Opera)’역 앞에 세워줘도 돼."


라는 우리를 결국 호텔 앞까지 무사히 바래다주었다. 




파라도르 데 톨레도(Parador de Toledo)에서 바라본 톨레도의 전경

  

스페인은 세계적인 관광대국이지만, 사실 마드리드는 여행자들에게 크게 사랑받는 도시가 아니다. 8세기, 무어인이 이베리아 반도로 진출한 이후, 줄곧 수도 역할을 한 것은 마드리드가 아니라 톨레도(Toledo)였다. 그에 반해 마드리드는 톨레도를 방어하기 위한 성채에서 출발한 이름 없는 도시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한 마드리드가 톨레도의 역할을 이어받은 것은 1561년, 펠리페 2세(Felipe II de Habsburgo)가 궁정을 마드리드로 옮기면서부터였다. 그러니까 마드리드는 유럽의 다른 수도들과 비교했을 때 수도로서의 역사가 짧은 편이고, 때문에 볼만한 유적지도 그리 많이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 이유로 많은 여행자들이 마드리드를 그다지 볼 것 없는, 스페인으로 들어가는 관문 정도로 여기며 이곳에서 단 하룻밤을 자고 바르셀로나(Barcelona)를 향해 떠나곤 한다. 




서머셋 모옴이 '세계에서 가장 매력 있는 거리'라고 일컬었던 바르셀로나의 '람블라스(Ramblas)' 거리

  

물론 바르셀로나는 여행자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도시이다. 지중해에 접해 있는 이 도시는 ‘햇빛을 파는 도시’라고 불릴 만큼 따뜻한 햇빛을 선사한다. 날 좋으면 언제든 쬘 수 있는 햇빛이 뭐 그리 대수인가 싶겠지만, 일 년 내내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아니면 날이 흐린 유럽의 몇몇 나라들 입장에서는 이 햇빛 하나만으로도 바르셀로나를 축복받은 도시로 여길 만하다. 또한 천재적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의 작품들은 바르셀로나 전체를 예술의 도시로 만들어 놓았다. 예술가들의 다양한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람블라스 거리까지 둘러보고 나면 사실 누구라도 쉽게 바르셀로나와 사랑에 빠질 것이다. 


비단 바르셀로나뿐이 아니다. 스페인에서 가장 스페인다운 곳이라고 손꼽히는 안달루시아 지방(Andalucia)에서는 버스를 타고 한두 시간을 달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할 때마다 매번 ‘이렇게 매력적인 도시는 처음이야!’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니 스페인을 찾은 여행자들이 마드리드에 그리 오랜 시간 머물지 않는 것을 영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마드리드의 허파'라 불리는 부엔 레티로 공원


다만, 그런 이유들 때문에 마드리드를 제대로 바라보려는 시도조차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모든 도시가 그러하듯, 마드리드에는 또 마드리드만의 매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마드리드 여행의 시작점이라 할 만한 푸에르타 델 솔 광장(Puerta del sol)은 ‘태양의 문’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그 이름에 걸맞게 11월에도 마드리드의 태양은 너무나 따뜻하다. 말로만 듣던 유럽의 추위가 무서워 나는 재킷을 입고 머플러를 둘렀는데, 마드리드의 사람들은 아직도 반팔을 입고 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가 느끼는 추위가 진짜인지 아닌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한다. 마드리드는 그렇게 나에게서 현실 감각을 죄다 뺏어가 버린다. 


푸에르타 델 솔 광장을 지나 우리가 향한 곳은 ‘부엔 레티로 공원(Buen Retiro Park)'이다. 공원 내에 자라고 있는 15,000그루 이상의 나무 때문에 마드리드의 허파라 불리는 이 공원은 원래 부엔 레티로 별궁의 정원이었다. 원래는 귀족들만 출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고 하는데, 1868년 일반인들에게도 개방되었고 덕분에 지금은 마드리드 시민들의 평화로운 휴식처로 자리 잡았다. 


누군가는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는 타로 카드를 펼쳐놓고 앉아 운을 점치고, 또 누군가는 하얀 백발을 한 채 스케이트 롤러를 타는 이 곳을 나와 제이는 무척이나 좋아했다. 때문에 마드리드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툭하면 이곳을 찾아가 책을 읽거나 노래를 들었고, 또 수다를 떨거나 벤치에 앉아 낮잠을 잤다. 그러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게으른 여행을 지향하고 있는 내 여행은 바로 이 레티로 공원에서 시작되었던 건지도 모른다. 



 


마드리드에 위치한 세계적인 미술관, 프라도 미술관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레티로 공원에서 유유자적 노는 것도 즐겁지만, 그래도 마드리드에 왔다면 가봐야 할 곳이 있다. 바로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런던의 '국립 미술관' 등과 함께 유럽을 대표하는 미술관으로 꼽히는 '프라도 미술관(Museo del Prodo)'이다. 15세기 이후, 스페인 왕실에서 수집했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자국 작품 위주의 컬렉션을 구축하고 있지만 그런 사실이 이 미술관의 매력을 떨어뜨리지는 못한다. 3,000점 이상의 회화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고 하니 그 규모도 굉장하지만,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 엘 그레코(El Greco) 등 이곳에서 직접 만날 수 있는 화가들의 이름을 보면 아무래도 이 미술관을 외면하긴 힘들다. 


그림에는 문외한인 사람의 마음도 단박에 사로잡을 만한 훌륭한 그림들이 많이 있지만, 프라도에서 가장 사랑을 받는 것은 역시 고야의 ‘벌거벗은 마하’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Las Meninas)’이다. 프라도의 한가운데 조심스레 걸려 있는 이 ‘시녀들’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몰두했던 그림으로도 유명하다.  

  

원래 프라도가 소장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긴 명화도 있으니, 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Guernica)’이다.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 당시 나치군이 스페인 게르니카 지역 일대를 비행기로 폭격한 참상을 담고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원래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었으나 이후 보관상의 문제로 소피아 왕비 미술관으로 옮겨졌다. 그러니까 마드리드를 찾았다면 프라도 미술관과 함께 소피아 왕비 미술관을 둘러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오랫동안 뉴욕의 ‘현대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피카소의 유지에 따라 1981년 스페인으로 반환된 ‘게르니카’. 현재는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톨레도 - 마드리드에서 남쪽으로 70km 정도 떨어져 있는 스페인 중부의 도시이다.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의 유적이 공존하는 도시로서 198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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