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않은 아이를 왜 병원에 입원시키려 하세요?
"선생님, 희선이가 무릎이 아파 입원해야 할 것 같아요. 2주 전에 학교 계단에서 넘어졌다고 하더라고요"
"2주 전에요?"
"네, 저도 어제 알았어요. 3주는 입원해야 할 것 같다던데.. 희선이 병원비 청구 가능하죠?"
두 다리 멀쩡하게 학교 잘 다니던 희선이가 영문 모를 2주 전의 사고로 입원해야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은 어느 해 9월이었다. 특수반 여학생인 희선이는 경미한 지적장애가 있었는데 심성이 착하고 성실한 아이였다. 친구들이랑 잘 어울리지는 못해도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학교 생활에 늘 열심히라 나도 애정을 쏟던 아이다.
그런데, 담임도 모르는 2주 전의 사고로 무려 전치 3주가 나왔다니. 분명히 계단도 잘 오르내리고, 체육시간에도 열심히 참여했는데.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의심스러운 마음을 잔뜩 안고 특수반 선생님과 보건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희선이 어머니를 오래 상대하신 특수반 선생님께서는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학을 떼며 말씀하셨다.
"아이고 그 어머니 또 그러세요? 희선이 4학년 때도 여기 아프다, 저기 아프다 하면서 주야장천 입원했어요. 아이는 너무 학교 오고 싶어 하는데 여기 동네 병원이랑 관련 있는 건지, 아님 다른 목적이 있으신 건지 하여튼 의심스러워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선생님, 어차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그냥 해달라는 대로 해주셔요"
그리고 2주 동안 희선이의 다리가 불편해 보인 적은 한 번도 못 봤다고 덧붙이셨다.
그럴 만도 한 게 우리 반은 후관 5층에 있었고 특수학급은 무려 본관 1층에 자리해 있었다. 3주 동안 입원할 만큼 무릎이 아팠으면 절대 다닐 수 없는 거리였다. 역시나 어떤 '의도'로 아이를 입원시키려고 하는 것 같다는 의심이 들었다.
뒤이어 나는 보건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학교 안전공제회에 보험 청구를 하려면 당일 보건실에서 진료를 받았다는 기록을 확인하고 관련 서류를 제출해야 했다. 희선이는 이래저래 보건실에 자주 가는 편이어서 보건선생님께서도 아이의 상태를 잘 알고 계셨다.
"선생님, 9월 5일에 희선이가 2교시 끝나고 보건실 오긴 했었어요. 그때 무릎이 살짝 까져서 드레싱 했다고 기록되어 있네요. 아이고, 근데 입원할 정도는 절대 아니에요. 그랬으면 제가 바로 집에 연락했죠. 저도 의심스럽긴 한데 그냥 괜히 건들지 마시고 보험신청 해주셔요"
역시나 이럴 줄 알았다. 이 어머니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2주 전에 무릎이 살짝 까진 것을 빌미로 아이를 입원시키려 하고 있었다. 병원과의 카르텔인지 보험금 때문인지 무엇인지 모를 그 이유로, 아이를 볼모로 잡고 행동하는 것이 상당히 불쾌했다. 잘 걷던 아이를 하루아침에 환자로 만들어버리다니. 이거야말로 기본권, 그중에서도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어쩌겠는가. 의사가 그렇게 진단을 했고, 법적 보호자가 그렇게 행동한다는데. 아이가 뒤늦게 아플 수도 있는 거니까. 나는 속으로 찜찜한 마음을 삼키며 최대한 협조하자는 쪽으로 마음을 잡았다. 그렇게 보건실 진료기록을 스캔한 뒤, 청구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희선이 어머니한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 저 희선이 엄만데요. 희선이가 그날 넘어지면서 알고 보니 머리도 다쳤었나 봐요. 정밀 검사해봐야 할 것 같아요."
어머니, 그런데 보건실 기록에는 머리 아프다고 한 내용이 없어요. 나는 속으로 하고 싶은 말을 잔뜩 삼키고 내일 확인해 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답했다.
다음 날, 혹시나 싶어 우리 반 아이들에게 희선이가 계단에서 넘어진 것을 본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목격자가 있으면 사고 전후 상황이나 부상정도를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희선이를 종종 특수반에 데려다주던 한 아이는 "희선이 아파요?"라고 오히려 나에게 되물었다. 그래, 2주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게 당연했다. 오후가 되어 희선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희선이 상태는 좀 어떤가요? 어제 말씀하신 공제회 관련해서요. 제가 확인해 보니 무릎 드레싱한 기록은 있어서 그 내용은 넣었어요. 그런데 희선이가 당일에 머리를 부딪혔다거나 두통과 관련한 내용은 없어서요.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이 부분은 저도 잘 모르겠네요."
"네? 희선이가 그날 머리 아프다고 보건 선생님이랑 담임 선생님께 말했다는데요?"
나는 맹세코 들은 기억이 없었다.
"저는 못 들었어요. 보건실 기록에도 없고요. 그런데 아이가 그날 넘어진 것 때문에 아프다고 하니, 두통이 있다고 적긴 적을게요. 그런데 혹시나 싶어서요. 심사에 따라서 어머니께서 지출하신 병원비보다 덜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 이 부분은 미리 알고 계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니, 머리도 학교에서 다친 거라니까요? 지금 우리 희선이가 거짓말을 한다는 건가요?"
아, 오랜만에 들어보는 '우리 아이가 거짓말~' 레퍼토리였다. 이 지점이 포인트였나보다. 병원비 이야기를 하면 발끈할 줄 예상했다. 희선이 어머니는 고고하게 유지하던 평정심을 잃고 나에게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뭘 하고 있었냐는 둥, 왜 이렇게 비협조적이냐는 둥. 도대체 내가 무엇을 안 했고, 무엇을 협조하지 않았는지 나도 궁금했다.
"어머니, 제가 도와드리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두통이나 머리를 부딪혔다는 기록이 없고 시간도 2주가 지나버려서 공제회에서 판단을 어떻게 할지 모르니 미리 생각하고 있으시라고 말씀드린 것뿐이에요. 혹시 모르니까요. 저도 희선이가 얼른 나아 건강한 모습으로 등교하길 바라고 있어요."
그러나 희선이 어머니의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전화의 목적은 그새 잊었는지 희선이 어머니는 아이를 기르면서 힘들었던 이야기부터 당신께서 몸이 안 좋다는 이야기, 먹고살기 어렵다는 이야기까지 쉴 새 없이 털어놓았다. 신세 한탄 퍼레이드를 30분쯤 들었을까, 어르고 달래서야 나는 비로소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그렇게 희선이는 무릎을 치료하기 위해 3주간 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리고 무릎을 위한 입원이 끝난 후, 뇌 정밀검사 및 두통으로 2주간 더 입원을 했다. 그 누구보다도 시기에 맞는 적절한 학습과 사람들과의 소통, 사회적 자극이 필요한 아이인데 한 달 넘게 결석을 해버린 것이다. 어떻게 된 것이 부모도 아이도 아닌 내가 제일 아쉬워하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희선이가 긴 입원을 끝내고 등교를 한 날, 나는 희선이에게 물었다.
"희선아, 이제 아픈 건 다 나았어?"
"네"
"병원에서 심심하지 않았어? 뭐 했어?
"휴대폰 게임이요"
배시시 웃는 희선이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었다.
정말 이럴 때면 눈치 없는 교사가 되고 싶다.
'아프지 않은 아이를 왜 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하세요?'라고 묻고 싶다. 거짓말을 하고, 억지를 부리고, 얼굴을 붉혀가면서까지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알고 싶다. 학교에 오는 것을 그렇게 좋아했던 희선이가 병원침대에 누워 휴대폰 게임만 했을 생각을 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리고 어떤 이익이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희선이가 의사표현이 잘 안 되는 아이여서 더 그랬을까, 쉬는 시간에 희선이가 계단을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 붙잡고 확인을 못해서 더 그랬을까, 학생의 일거수일투족에 책임만 잔뜩 있고 권리는 없는 대한민국의 일개 초등교사여서 더 그랬을까, 다 알면서도 무기력하게 아이를 병원으로 보낸 그 해만 생각하면 씁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