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늘 아버지가 돈을 안 준다고 했다.
곗돈도 내야 되고 과일도 먹고 싶은데
아버지가, 돈을 안 주신단다.
미웠다.
엄마에게 곗돈도 빵 사 먹을 돈도 안주는 아버지가,너무 미웠다.
버거웠다.
나도 살아야 되는데.
제비새끼 같은 내 새끼들이 입을 벌리고 있는데.
엄마까지 나만 바라보니, 버거웠다.
그리고 미웠다.
일을 해도 될 것 같은데 넋두리만 하는 엄마가,
너무 한심했다.
일반 공무원 한 달 봉급으로 다섯 식구 먹고살기도 빠듯한데. 우리 엄마는 딸이 사는 게 안 보이는지, 못 보는 건지.
이모들이 제주도 가자는데 아버지가 돈을 안 주신다며, 전화기 너머로 훌쩍거린다.
짱구를 굴리고 굴려도, 나올 데가 없다.
보험 약관 대출도 이미 다 받았고… 할 수 없이 큰 애 저금통 털고, 학원 한 달 끊고, 50만 원 보내드리고 돌아서면서 속상해했던 적도 있었다.
나도, 막내가 여섯 살 될 때부터 직장을 다녔다.
내가 번 건 세 아이 학원비와 간식비를 부담하고 엄마 보험료랑 용돈을 보내드리면 딱 맞았다.
그리고 몰래 10만 원씩 적금도 들었다.
세월이 흘러 어미는 80이 넘었고.
나도 60이다.
제비새끼들도 스스로 먹이를 찾아 둥지를 떠났다.
이젠 좀 살만하다 하니, 불청객이 찾아왔다.
어째, 아픈 내가 아픈 척도 못한다.
마음 아파할 가족이 보이고, 늙은 부모가 보여서…
우리 아버지는 안 늙을 줄 알았다.
아프지도 않을 줄 알았다.
고래 심줄만큼 고집도 세고 성격도 불같은 인정머리 없는 우리 아버지가, 아프다.
내가 평생을 미워했는데. 한 방에 5분만 같이 있어도 어색한 우리 아버지가, 아프다.
처음으로 아버지 죽을 먹여 드리는데 아버지가, 쳐다보신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미안했다.
물려받은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그렇다고 기술도 없는 우리 아버지가, 혼자 벌어 셋이나 되는 자식들 먹이고 입히고 공부까지 얼마나 힘드셨을까.
형편 뻔히 알면서 모르는 척 일도 안 하고 늘 돈 달라고 징징 거리는 엄마가, 얼마나 야속했을까.
꼽추처럼 휘어지고 굳어버린 등을 쓸어 드리며 속죄했다.
돈을 안 준 게 아니라 못 준 건데...
그걸 인제 알았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분다.
아버지도 퇴원하시고 많이 회복하셨다.
여전히 철없는 우리 엄마는 눈썹 문신 하고 싶다고 볼 때마다 말하신다.
이젠 저금통 안 깨도, 학원 안 끊어도 된다.
그 정도는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있다.
“그래 엄마, 잘하는 데 알아볼게.”
엄마는 참 잘 드신다.
애슐리를 좋아하신다.
어찌 엄마가 몰라서 그랬을까.
별난 남편 비위 맞추고 사신 세월은 누가 알아주겠는가.
평생 남편 봉급 한 번 쥐어 보시지 못한 그 속을 누가 알까. 콩나물을 사도 두부를 사도, 일일이 말하고 몇 번이고 잔소리를 듣고 타내시던 그 어려움을 어찌 말로 다할꼬.
자식이라고, 그래도 믿을 데는 큰 딸 밖에 없어서.
왜 몰랐을까, 알지만 어쩔 수 없어 손 내밀수밖에 없던 그 속은 오죽했을까.
이제야, 보이고 알아진다.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나 보다.
자식이 참 어려운 것을…
엄마가 건강하셔서 좋다. 내가 효도할 수 있게 기다려 주셔서 고맙다.
오늘은 엄마랑 동생이랑 셋이서 롯데리아를 갔다.
엄마 뭐 드실래요.
먹어 본 적이 없어 모르신단다.
동생이 물어본다.
새우 소고기 닭고기 중에 뭐 할래?
나를 보시며, “뭐 하꼬?”
엄마 우리 오늘은 소고기 먹고 다음에 또 와서 다른 것도 먹자.
좋아하신다. 다음에 또가, 기쁘신 거다.
엄마 미안해.
엄마를 철없게 봐서 미안해.
자기밖에 모른다고 생각해서 미안해.
해준 게 없어 미안하다는 말이, 그동안 응어리를 다 녹여 버렸어. 내가 엄마의 숨통이어서 그나마 다행이야.
앞으로 맛난 거 자주 먹으러 가요. 하고 싶은 거 말해요.
내가 다 해줄게.
나 돈 있어...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