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고 싶다, 어디든 가고 싶다.
구름처럼 정한 곳 없이, 바람이 불어 주는 대로.
목적지 없이, 떠나고 싶다.
책임도 의무도 다 던져 버리고
불어 주는 대로, 날아가고 싶다.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탔다.
하늘이 이렇게나 맑고 푸른 날, 집콕은 반칙이다.
나와 봐야 갈 곳도 만날 친구도 없지만 예쁘게 치장을 하고 나왔고, 무작정 마음 가는 버스를 탔다.
사람들은 참 분주하다.
다 바쁘다.
나처럼 목적지 없는 버스를 탄 사람은 아무도 없는 얼굴들이다.
차 창을 내다보니 정말 열심히 달리는 라이더들.
모자를 눌러쓰고 히잡을 두르듯 얼굴을 봉쇄하고 만보를 채우는 여인들....
가로수는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다.
흔적을 좀 더 남기려고 메마른 가지에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지어 짜내 더 화려하게 단장한다.
이번 생은 마지막인 잎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해, 더 유심히, 자세히, 쳐다봐 준다. 예의를 다해서.
나도 이번 생이 마지막인데.
무엇을 남기지... 저 잎들도 미련 없이
불 태우듯 애를 쓰고 바사삭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데…
내년엔 또 다른 잎들이 가지를 채우겠지.
나뭇가지랑 헤어지면서 인사는 했을까.
매년 보내야 하는 나무는 얼마나 심란할까?
보내는 것도 가는 것도…
웃으면서 가고 싶다.
잘 살았노라, 고마웠었다고 인사하며 가고 싶다.
새롭게 보인다.
마음을 정리하고 나니 세상이 더 뚜렷하게 보인다.
그리고 감사하다.
아직까지 건강하다는 것이.
배가 고프다는 것이.
옆 좌석 아저씨가 흥분해서 통화 중이다.
들으라는 듯이…
12억에 집을 샀다고. 5억짜리 집은 월세로 돌렸다고.
안 부럽다.
1억도 통장에 가져 본 적 없지만, 안 부럽다.
방황을 끝내고 나니
가슴 가득 찬 감사가 승리했다.
무작정 탄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시민의 발인 남편이 좋아하는 김치찌개.
돼지고기 넉넉히 넣고 두부도 넣고 보글보글 끓여 소주 한잔 해야겠다.
갱년기 와이프 기분 챙긴다고 주는 대로 먹고 분명 마음에 안 드는 거 있을 텐데 참아 주는 마음, 알고 있지만 외면했었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근데 감사가 승리하니, 나도 그 마음을 알아주고 싶다.
오늘 한잔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