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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나이가 어때서

다른 문화

by Bora

그날은 오전부터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이었어. 청년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바람에 살갗에 싸늘하게 스치는 바람조차 후끈 달아오르는 것 같았어. 아 맞다. 강당에 들어가기 전에 마이크 소리가 너무 커서 음향시설을 관리하는 청년에게 볼륨을 낮추라고 손짓을 몇 번 했지만 그는 아무 문제없다는 표정을 곤 예의상 기계만 만지작 거리더라. 에코가 강의실 안을 가득 채우고 마이크에서는 마치 유리에 날카로운 철사가 긁히는 소리까지 났지만 흥에 듬뿍 취한 젊은이들은 정말이지 환희 그 자체였지. 결국엔 귀청이 나갈 것 같은 높은 볼륨 때문에 내 친구 정석이는 일찌감치 강의실 밖에서 몸치답게 슬금슬금 리듬만 타고 있더라. 나와 정석을 제외한 강의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까짓 건 아무것도 아니냐라는 식으로 즐감하고 있었기에 내 양쪽 귀를 두 손으로 막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어쩌겠어. 내가 배 나와라, 감 나와라 하면 안 되잖아. 아무렇지 않은 듯 강의실 밖으로 조용히 나올 수밖에. 이곳 사람들은 마이크를 참 좋아해. 작은 공간에서 조차 마이크를 잡고 이야길 하는 모습을 볼 때면 이런 생각이 들곤 해.

'마이크~~ 야, 널 추앙해~~'

다행히도 창문을 뚫고 나오는 커다란 노랫소리에 나도 그네들을 따라서 박수도 치고 소리도 지르고 점프도 했지. 그러다 보니 금세 1시간이 지나가더라.


행사 1막이 끝나고 2박은 헤즈본 청년이 강의를 했어. 나는 바람이 잘 통하는 문이 있는 쪽에 앉아 있었는데 딴생각이나 깜빡하고 졸 수도 없을 만큼 강의를 잘하더라고. 이십 대 초반의 청년들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그의 강의를 경청하는 모습은 대단을 넘어서 경이롭기까지 하더라. 그런데 아무리 젊어도 1시간 넘게 땀이 나도록 춤을 추고 노래를 한 탓인지 그 친구 말이야, 엠프를 담당하던 청년은 강의 시간에 자꾸만 고개가 아래로 내려가는 것 있지. 그렇게 멋진 이벤트의 2막도 끝났어.

이벤트 3막은 12시가 넘어서 시작된 한글 클래스였어. 강사는 물론 나였지. 나는 텀블러에 가득 담아 온 진한 아메리카노를 행사 1막과 2막에 홀짝홀짝 마시는 바람에 막상 내 시간엔 몇 모금으로 목을 적셨어.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나름 케냐에서 제일 머리가 좋다는 나이로비대학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다니 놀랍지 않니? 이건 말이야, 기적이야. 뭐, 친구 정석이는 콩글리쉬로 아주 용감하게 말하는 내가 신기한가 봐. 기가 막힌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이 말이야. 묘하더라고.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지금 생각하니 그 거였더라고.

'정말이지, 너를 추앙해~~'

내가 20대였으면 도저히 못할 일이었지만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의 객기라고나 할까. 어쩌겠어, 이왕 맡겨진 일이니깐 능력이 부족하더라고도 칼을 뺏으니 무라도 잘라야 하지 않겠니. 내 강의자료는 어디에서 발취했냐고? 너도 알고 있잖아. 유튜브에 엄청난 강의가 '날 잡아 드시오'라고 공개가 되어 있잖아. 인터넷도 느린데 몇 날 며칠을 다운로드하느라고 고생 좀 했어. 이렇게 나의 다섯 번째 강의가 그날 시작된 거지. 수업 시작으로 K팝을 소개하는 문화콘텐츠인 BST와 블랙핑크에 대한 영상을 보여주었지. 영상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한국어 수업을 진행해 갔어.

"당신은 어디에서 왔어요?"

"저는 케냐에서 왔어요."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요?"

"저는 케냐 사람이에요."

"당신의 나이는 몇 살인가요?"

"저는 스무 살이에요."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었어. 워낙 학생들이 나이도 어리고 언어 배우기에 능숙한 케냐 사람들이잖아. 언어에 대해서 한 개를 알려주면 정말이지 10개 이상을 깨우치는 스마트한 청년들이거든. 내가 웃음을 가득 머금고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가서 아주 친절하게 질문을 하면 그 친구들이 대답을 하는 식으로 수업을 이어갔지. 뭐, 언어는 무한 반복과 연습으로 익히는 거잖아. 틀려도 하쿠나 마타타, 아무 문제가 없잖아. 열명이 모인 강의실 안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멈추지 않지 뭐야. 해피 바이러스 때문에 정말이지 나까지 신이 나더라. 수업 시간이 20분이나 지났을까. 이벤트 2막 때 강의를 멋지게 한 헤즈본이 수업에 합류했어. 그쯤 우리는 당신은 몇 살이에요?라는 문장을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어. 그는 대학교 졸업을 2년 전에 했는데 학년 동기들하고는 나이가 꽤 차이가 나. 대학 졸업 후에는 대학원을 다니다가 지금은 휴학을 한상태야. 나도 그의 정확한 나이를 모르지만 어름 잡아 스물여덟 살쯤은 되었을 거야. 이미 다른 학생들은 나이에 대한 연습을 마쳤기에 내가 그에게 다가가서 나이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알려주었지. 물론 다른 친구들이 어떻게 대답하는지도 보여주고.

“헤즈본, 당신의 나이는 몇 살이에요?”

그가 멋쩍은 듯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웃 뚱하더니, '끙'하는 소릴 내더라. 내가 눈치가 1,000단 아니겠니. 분명히 그가 심경의 변화가 있구나 싶었지. 그럼에도 아주 나이스하게 이건 언어공부니깐 대답을 하라고 재촉했지. 결국 내 급한 성깔머리가 발동이 되어서 입 밖으로 그의 나이를 이야기해버리고 말았어.

"헤즈본, 스믈 여덟 살이에요?"

그가 고개를 갸웃 뚱거리기만 하고는 끝내 대답을 안 하는 거야. 다른 학생들도 그의 나이를 대충은 알고 있는데 말이야. 그와 4년 동안 1주일에 3번 이상을 본 청년들이 대부분이었거든. 그래서 나는 헤즈본이 자연스럽게 그의 나이를 이야기를 할 줄 알았거든. 사실 한국어 배우기 반이 시작된 것은 2026년에 한국에서 있을 콘퍼런스에 참석을 하기 위한 준비모임이야. 이 그룹에서 나에게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먼저 요청을 해왔거든. 나는 헤즈본이 민망해할까 봐 한국에선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어린 사람을 동생처럼 돌보아 주고 나이가 어린 친구들은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존중한다라며 한국문화에 대해서 설명을 했지. 우린 알잖아. 한국에서는 상대방의 나이를 묻는 것이 그렇게 예의에 벗어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물론 요즘은 될 수 있으면 나이를 묻지 않는다고는 하더라.

케냐에선 이십 대 중반쯤 되는 사람들에게 나이를 물으면 쑥스러워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대답을 회피할 정도로 그런지는 잘 몰랐어.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전환시키고 싶어서 한국문화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했던 터라 정말이지 그가 대답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고개를 또다시 갸우뚱거리면서 끝내 말을 하지 안 더니 자신은 '무제 즉 어른'이라고 말하는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속에서 불덩이가 확 올라오는 것 있지.

'네가 아직 20대인데 개뿔 무슨 어른이라는 소릴 하고 있냐. 내 앞에서...'

이렇게 입 밖으로 쌍욕이 나올 것 같았는데 다행히도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던 터라 한글수업을 마칠 수밖에 없었어.


한글 수업에 참석한 청년들 중에 나와 친분이 있는 나이로비 대학교 4학년인 자키와 자미와 함께 잠시 나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지.

"케냐에선 나이를 물어보는 게 예의가 아니니? 그게 그렇게 말하기 힘든 거니?"

"도시에서는 괜찮은데 시골지역에서는 나이를 물어보질 않아요. 어린 사람들에게는 괜찮은데 이십 대 후반쯤 되면 나이를 잘 묻질 않거든요."

개인적으로 나이를 물어보면 대답을 하긴 하는데 사람들이 모여있는 데서는 나이를 물어보면 대답하기를 꺼린다는 거야.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내가 너무 헤즈본을 다그친 것은 아니었나 싶은 것이 미안한 생각이 들더라.

친구야, 네가 가까운 시일에 이곳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케냐와 한국의 다른 문화가 어떤 점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거든. 정말 할 이야기가 무지무지 많지만 오늘은 나이와 추앙해, 마이크야라는 정보만 보낸다. 아, 근데 있잖아. 여기 사람들은 나이가 많은 사람 일지라도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라피키, 마이 프렌드라고 말하더라. 나의 라피키, 친구야, 다음에 또 연락할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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