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면서 마음이 불편할 때가 참 많았다. 대부분 그 불편함은 내 마음속에 묻어두거나 꽤 쿨한척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선교회에 서 캠퍼스 간사로 일 할 때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기쁨과 함께 슬픈 이별을 반복적으로 경험했다. 그렇게많은 날 동안, 사람에 대한 생채기는 깊어졌지만그때는 그 감정을 알아채지 못했고 어떻게 다루워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서운함과 슬픔, 미움, 괴로움, 지침 그리고 배신 같은 부정적인 면들을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버린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거의 누군가와 다툼을 한 적이 없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더 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상대방에게 따지지 않았고 미움이란 감정이 일어나면 나의 미성숙한 인격을 책망하거나 죄책감까지 생겼다. 그러나 그 묻어둠의 끝은 40대에 터져 버렸다. 누군가의부당한 행동을 보거나 말을 듣기라도 하면 욱하는 감정이 일어났다. 뉴스에서 황당한 사건이 방송되면 혼잣말로 '미친 X'라는 말이 나와버렸다. 욱 쟁이님께서 내게 임하면 와글와글한 감정을남편에게 쏟아내곤 했는데 다행히도 그것을 다 받아주었다.
몇 해 전, 나의 숨겨둔 발톱을 드러내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은 적이 있다. 그러자 한 지인이 나를 설득했다.
"당신이 이해하세요. 성격이 좋은 사람이니깐."
그녀는 나의 발톱 세움이 나와는 안 어울린다는 듯이 다독였다. 나를 위로한답시고 한 말이 오히려 화를 돋웠다. 그러나 금세 살쾡이처럼 세운 발톱에 힘이 빠져 버리고말았다. 그러다가 내면의 불편한 감정을 글로 표현하고부터 부정적인 감정이 80프로쯤은 해결되었다. 그렇게 몇 년을 글로 속풀이를 하고 나니 벌써 중년으로 접어들었다. 그래서일까, 부정적인 감정들이 정수기의 물처럼 많이도 걸러진 느낌이다. 아님 나이 덕을 본 것인지 예전보다 훨씬 마음이 느슨해져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하게 된다.
내게는 아주 싫은 감정이 하나 남아 있다. 그것은 초점 없는 눈빛이다. 이 감정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집으로 들어오신 날부터였을 것이다. 성실한 농사꾼이셨던 아버지는 술을 자주 드시지는 않았지만 동네에 초상이 나기라도 하면 몇 날 며칠을 그 집에서 화투를 치며 술을 드셨다. 참다못한 엄마가 아버지를 데리러 가시면 어쩔 수 없이 집으로 오셨다. 그럴 때면 눈에 힘이 풀려 초점 없이 허공을 쳐다보셨던 아버지의 눈빛은 마치 삶의 의욕을 다 잃은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알고 있던 아버지가 아닌 아예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오래도록 그 눈빛이 싫고 무서웠다.
첫아이를 임신하고 상담공부를 하던 중에 아버지의 눈빛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으시고 삼 형제 중에 셋째 그리고 아래로는 착한 새 어머님이 낳으신 남매, 호랑이처럼 무서웠던 할아버지 밑에서 사랑과 배움에 대해서 굶주렸을 것이다. 아버지가 가장 의지했던 둘째 형마저 군대에서 죽자 깊은 상실감이 그의 내면에 쓴 뿌리로 남게 되었다. 그래서 나의 아버지는 마치 사명자처럼 온몸이 부서져라 초상집을 지키며 서러움을 술로 이겨보려고 했었으리라. 그렇게 나는 아버지의 눈빛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만남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혹여나 술을 마시는 자리에 가기라도 하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 자리에서 누군가가 술에 취해 큰소리로 말하거나 눈빛이 허공을 맴돌기 시작하면 그곳을 잽싸게 떠버린다. 술에 취한 사람이 음흉스러운 농담까지 더해지면 추함이라는 단어를 상대방의 이마박에 주홍글씨처럼 찍어버린다. 그가 술에 취해 있을 때보다 멀쩡할 때에 훨씬 능력과 장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감정은 어쩔 수가 없다. 어찌 보면 술보다는 술에 취한 눈빛이 더 싫은 거다. 요즘도 우연이라도 초점 없이 허공을 맴도는 눈빛을 보면 덜컥 겁이 나곤 한다. 그는 나의 아버지가 아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