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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bari Nov 30. 2022

한숨

감정이입이란?

  혜미는 지연을 잘 모른다. 언제부터 그들이 연락을 하게 되었는지 기억이 아련하다. 혜미는 지연을 딱 한번 만났다. 그것도 9년 전 시끌 버끌 한 강당의 코너에서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았을 뿐이다.

  그해 8월, 밖은 햇볕 쨍쨍 쏟아져 내려서 무척이나 습하고 더웠다. 실내 또한 많은 인파로 후덥지근했다.

   대학의 휴게실에는 각 나라 별 부스가 설치되었다. 혜미는 정신없이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그녀가 살고 있는 나라와 일에 대해 소개를 다. 한차례 일을 마치고 숨을 돌리는 사이 두 눈이 빛나는 철원을 발견한다.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한 여자를 혜미에게 소개했다. 철원의 아내라는 지연은 동그란 얼굴에 귀염성 있게 조개가 파였다. 결혼 3년 차라는 그들에게는 아직 아이는 없었다. 철원은 허리디스크로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2세 계획을 늦추고 있다고 했다. 역시 철원은 배려심이 많았다.

  철원이 대학 1학년 때 M선교회를 찾아왔다. 그해 7월에 철원은 몽골 비전트립에 참석을 한다. 그때 혜미는 철원은 예의가 바르고 순수하고 영혼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청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혜미는 철원의 20대를 기억하며 사역자로 살아가는 삶이 녹록지는 않겠으나 잘 살아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혜미는 철원이 큰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가 부목사로 사역하는 교회에 큰 행사가 있는 토요일 아침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던 철원은 이른 아침 골목길에서 급히 달려오던 마을버스에 치여서 그만 정신을 잃고 만다. 응급실에 실려간 그는 한 달 이상 사경을 헤매다가 깨어났지만 목 아래부터 전혀 몸을 움직일 수 없다. 병원생활을 3년이 했지만 그는 아직도 병원에 있다.

  혜미는 지연의 도움으로 철원과 통화를 다. 철원의 목소리는 혜미가 생각하던 그대로였다. 목소리는 맑았고 힘이 있었다. 그와 혜미는 웃음까지 섞어가며 대화를 했다. 그의 밝음에서 혜미는 그나마 안도감이 생겼다. 철원이  어려움을 극복해 가리라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혜미는 지연에게 종종 카톡으로 철원의 안부를 물었다. 부부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다. 큰 아이는 5살이었고 둘째 아이는 3살이다. 아이들은 갑자기 사라진 아빠의 빈자리로 마음이 불안했다. 거기에다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아이들과 아빠가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지연 또한 남편의 사고로 변호사와 보험회사 직원을 수시로 만나야 했고 자주 바뀌는 요양보호사를 알아보느라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힘에 버거웠다. 다행히도 친정 부모님께서 아이들을 돌보아 주었지만 정작 시부모님은 병원에 오시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혜미는 지연과 자주 연락이 오갈수록 아이와 철원이 안타까웠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시곗바늘은 저녁 7시를 가리켰다. 보이스톡이 울렸다. 전화기 너머로  지연의 목소리는 불안했다. 지연이 사는 곳은 새벽 1시다.

  “시어머니가 너무 미워요. 어머님은 지금껏 저를 가스 라이팅을 해 왔어요. 남편은 마마보이예요. 남편은 화가 나거나 제가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하면 밤새 잠을 안 재워요. 집요하게 말로 저를 괴롭혔어요. 요양보호사인 여사님들도 남편의 못된 모습을 보며 저에게 어떻게 저런 사람하고 살았냐고 해요. 저 이 남자랑 앞으로 못 살 것 같아요.”

  철원은 재활치료로 간신히 오른쪽 검지 손가락만 움직인다고 했다. 38년 동안 자신의 몸을 마음껏 움직이며 살았던 철원.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밥을 먹는 입으로 말하는 것뿐이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이 황당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입술에서는 필터가 안된 말들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서 아내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었다. 한마디로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신이시여! 나에게 왜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당신의 종으로 살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하셔야 합니까?

  도대체 제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그가 침대에서 수도 없이 신께 부르짖었을 신음소리가 혜미의 귓가에 오랫동안 맴돌았다.


  지연은 혜미에게 억눌렀감정을 마구 쏟아냈다. 함께 같은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아니었지만 혜미는 지연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보이스톡으로 혜미는 지연을 안아주고 위로해 주며 눈물을 닦아주었다. 몇 차례나 지연으로부터 보이스톡이 걸려 올 때마다 모든 것을 제쳐두고 지연의 마음을 오롯이 받아 주었다.  한동안 뜸하던 카톡이 다시 왔다. 철원이 미치도록 밉다는 지연. 그날 혜미는 지연에게 짧은 답글을 보낸다.

  '철원이 몸을 움직일 수 없으니 오죽 마음이 힘들까요. 그래서 가시 돋친 말을 한 거예요.' 

   혜미는 딱 한번 철원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 이후로 지연에게서 카톡은 오지 않지만  혜미는 그녀 한숨을 기억한다.


이하이, 한숨

https://youtu.be/nDwtIM7u_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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