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저에게 여자 친구가 있냐고 물을 때면 참 쑥스러웠습니다. 제가 서른 살이 되었을 때는 더욱 자주 결혼에 대해서 묻곤 했지요.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어요. 당신이 저의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요.
처음 제가 Mr. Lee와 그의 아내라는 사람을 선교센터에서 만났을 때 조금은 놀랬어요. 나이로비에서 동양인 선교사는 처음 보았거든요. 보육원에서 자랄 때 독일 분이 저에 후원자였기에 '백인들이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은 했지만 중국도 아닌 그렇다고 일본도 아닌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케냐에 선교사로 왔다는 것이 놀랐습니다.
대학 1학년 2학기에 제가 방학에 갈 곳이 없다고 Mr.Lee에게 말을 꺼내기는 참 힘들었어요. 부끄러운 맘이 있기도 했지만 정말 갈 곳이 없었기에 마지막 희망의 끈을 붙잡고 싶어서 용기를 냈어야 만 했거든요.
당신의 남편은 저에게 따뜻한 사람이에요. 한 번도 저를 무시한 적이 없고 제가 고민을 말할 때마다 잘 들어주고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었어요. 가끔씩 당신은 센터에 와서 저에게 말을 걸어주기도 했지만 언어라는 장벽을 느끼기라도 하면 곧장 커다란 대문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지요.
코로나 팬데믹이 풀리면서 당신은 부쩍 택시를 타고 어디를 다녀오기도 하고 며칠 동안 밖에 나오지 않더라고요. 큰 집에서 도대체 하루 종일 뭘 하며 지낼까라는 생각은 했지만 타국에서 아이 셋을 키우는 것이 쉽지는 않겠구나 싶었지요. 가끔은 로칼 시장에서 한국 카베지와 많은 야채를 주문해서 전통음식이라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김치를 만든다면 소금에 절여 놓은 것을 보기도 했어요. 대량으로 구매한 양파와 로칼 마늘을 잔디밭에 펼쳐놓고 말리는 것을 보면 저 많은 것을 언제 다 먹을까 싶었어요. 당신은 선교활동보다는 개인의 삶과 가정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고라는 생각을 했어요.
지난 8월 한국을 다녀온 당신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달라 보였어요. 지금껏 한 번도 회의에 참석을 하지 않았던 당신이 함께 했던 거예요. 영어로 회의를 하는 동안 당신이 딴소리를 하거나 엉뚱한 질문을 하면 사실, 저는 웃음이 나올 것 같아서 한두 번 참은 게 아니에요. 앞뒤가 안 맞은 영어문장으로 어떻게든 저에게 설명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애쓴다, 대단하다, 고생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신기한 것은 제 말의 한두 단어만 듣고도 상황 파악을 했지요.역시 Mrs.Lee가 한국에서 열정적으로 선교활동을 했던 사람임을 인정하지않을 수 없었어요.
금요 채플과 주일예배 때 찬양하는 당신의 모습은 종종 외국인이라는 걸 깜빡 잊곤 합니다. 특별히 스왈리 송을 부를 때마다 박수를 치는 모습이나 춤을 추는 모습은 자연스럽기까지 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는 시간에는 영어도 아닌 스왈리어도 아닌 당신의 모국어로 크게 기도하는 목소리를 듣곤 했죠. 그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저는 당신의 기도 소리를 들으면 힘이 나고 위로가 되었답니다. Mrs. Lee가 우리를 위해 엄마의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한다는 것이 전해졌거든요.
수련회와 리트릿과 행사를 위해 회의를 할 때는 프로그램이나 역할에 대해 조언을 했지만 한번 일을 맡겨 놓으면 100프로 믿어주는 당신의 배포가 부러웠습니다. 아, 그리고 그때 당신이 왜 확고하게 센터에서 자매들이 생활하는 것을 반대했는지 이해가 되었어요. 제가 자매들이 센터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면 좋겠다고 몇 번이나 고집을 피웠지만 당신은 그 제안만큼은 받아들이지 않았지요. 사실, 저도 당신이 반대한 이유는 기독교 공동체에서 이성적인 문제가 생길까 봐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는 챘지만 그 부분까지 알고 있다는 것에 조금은당황스렀어요. 그렇게 당신과 4년 동안 매주 월요일마다 2시간씩 회의를 하고 금요 채플과 주일예배를 함께 하는 동안 감사했고 행복했습니다.
저에 결혼식을 위해 재정적으로 큰힘이 되어주시고 부모 역할을 해 주신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열심히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먼 훗날, 당신이 그리운 날이면 Bora라는 스왈리어가 떠오를 겁니다. 좋은 분, 고마웠습니다.
2022. 10. 27
당신을 존경하는 헤즈본
*10월의 글 쓰기 주제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 어떤 사물의 관점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글을 쓰는 것이다. 우리 부부와 미션을 함께 하는 헤즈본이 나를 바라보는 눈으로 글을 써보았다. 물론 헤즈본이 긍정적인 마음으로 나를 평가해 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