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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갈망 사이

기도 응답이란 뭘까

by Bora

신학교에 입학할 준비를 하면서 지인이 소개한 신설 유치원에서 알바를 시작한다. 내가 다니던 신학교는 직장인들을 위해 용산에 분교가 있었고 본교는 신갈에 있었다. 나는 일과 수업을 병행해야 했기에 용산으로 입학을 한다. 이른 아침마다 아이들에 집 앞까지 운행하는 노란색 봉고차에 탑승하면 커피 한잔을 못 마실 정도로 바빴다. 아르바이트생이기에 오후 3시 30분에 일이 끝나면 부리나케 1호선 전철을 타서 남영역에 도착하면 뛰다시피 해서 수업에 들어가기 바빴다. 지하철 안에서 꿀잠이 필요했지만 이 또한 쪽지시험 준비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신학교 학생들은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나이가 섞여있었는데 30대와 40대가 주로 많았고 90프로 이상은 남자분들이었다. 이곳에 온 남학생들은 거의 다 목회자 후보생들이었고 여자분들은 교회사모를 꿈꾸고 있었다.


나는 목회를 할 생각으로 신학공부를 시작한 것이 아니었으나 학교 분위기와 학생들에 마인드가 하나님께 '충성' 그 자체였다.

"자매님은 앞으로 어떤 사역을 하고 싶으세요?"

학우들 사이에 이런 질문을 서로하는 것은 평범했고 다들 사명감이 대단했으므로 그런 자리가 편안하지만은 않았으나 그들의 뜨거운 열정이 나에게 전염되는 것만 같았다. 신학생이 아닐 때도 교회 봉사를 기쁨으로 했었기에 나는, 지인 요청으로 상가건물 2층에 있던 작은 교회에서 주일학교를 담당하게 된다. 월급이 아닌 봉사료를 한 달에 200,000원쯤 받았으나 이 또한 감지덕지한 금액이라고 생각하면서 훨씬 더 힘에 지나도록 교회일에 충성을 다했다. 그때는 젊었기에 하루에 4시만 자고 나도 거뜬히 그다음 날 아침을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었다.


신학교에 다니다 보니 내가 알고 생각했던 세계와 너무나도 괴리감이 컸다. 신입생인데도 성경에 대해서, 믿음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 채플시간에 교수님의 설교에 누가 축복을 가로채기라도 할까 봐서 큰 목소리로 "아멘"하는 사람들, 말할 때 마치 거룩함을 뽐내기라도 하듯이 중저음으로 내리까는 사람들, 작은 교회보다 큰 교회에서 사역자로 일하고 싶은 사람들, 한 사람의 영혼구원보다는 교회성장에 더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자꾸만 눈에 거슬렸다.

'저 사람은 분명히 아내가 있다고 했는데, 왜 다른 여자분에게 끼를 부리는 거지'

'자신의 아버지가 큰 교회 목사라고 네가 뭐 그리도 대단해'

'기도를 그렇게 강조하는 사람이 왜 거짓말을 하는 건데'

'공의를 사랑한다면서 빌려간 돈은 왜 안 갚냐고'

'신학교 교수라는 사람이 여성들에 대한 성적 비하 발언을 해대는 꼬락서니라니'

나는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자처럼 사람들의 행동거지를 잘도 알아채는 사람이란 걸 그때 알게 되었다. 교실에 앉아있는 사람들과 교수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날이 갈수록 삐딱해지고 머리가 터질 듯이 내 안에서 갈등이 일렁거렸다.


"친구야, 방학 때 우리 기도원에 갈까?"


나는 앞으로 신학공부를 계속해야 할지 아니면 멈춰야 할지에 대한 결단이 절실했다. 나와 친구는 철원에 있는 대한수도원이라는 곳으로 금식기도를 하기 위해서 가게 된다.

그곳에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필연과도 같은 학교 선배를 만난다. 그녀는 C신학교 주간 캠퍼스에서 왔다는 것이다. 우린 C신학교 야간부 학생이었으니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참으로 반가웠다.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예쁘장한 3학년 선배였다. 그녀가 기도원에 온 이유는 '배우자를 위한 기도'를 하러 왔다는 것이다. 그때쯤 내 친구는 연애를 간절히 하고 싶었던 터라 선배에게 여러 가지 궁금한 것을 물었다.

“배우자를 위해서 어떻게 기도해야 해요?”

“구체적으로 100개의 기도제목을 적었어요.”

나와 친구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동시에 똑같은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100개씩이 나요?”

그런 존재는 완벽에 가까운 사람일 텐데 이런 남자가 세상에 존재할까 싶은 것이 선배의 욕심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자에게 바라는 것을 일단 100개를 적었는데요. 기도하면서 아니다 싶은 것은 한 가지씩 지워나가려고 해요.”

그녀가 살짝 보여준 노트에는 100가지 기도제목이 적혀있었다. 그 많은 내용 중에서 유독 강조하던 한 가지 기도만이 기억에 남는다.

'키는 175센티 미터 이상'

그녀는 자신보다 키 큰 남자를 원했으나 결혼한 분은 그녀보다 키가 작았다. 키가 작지 않았던 선배는 남자분과 연애를 할 때부터 굽이 전혀 없는 구두만을 신었다. 배우자를 위한 100가지 기도제목 중에 그녀가 그렇게도 간절히 바랐던 배우자의 키는 결국 사랑 앞에서 지워졌을 거다.

그해 겨울 기도원에서 만난 선배는 나에게 한 장의 팜플렛을 주고 먼저 하산을 한다. 나는 성경책에 플렛을 한참이나 끼어두었다가 '네 글자'를 보고 M선교회 수련회에 참석했다. 그 글자는 '제자양육'이었다. 이후에 신학공부를 계속하리라는 다짐을 하곤 학교를 아예 주간으로 옮긴다.

"자매님은 앞으로 어떤 사역을 하고 싶으세요?"

"캠퍼스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양육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렇게 대답을 할 만큼 나의 막연하기만 했던 비전은 구체화되었고 영혼사랑에 대한 간절함이 날로 더해갔다.


방글아

낮엔 일하고 밤에 공부하느라고 많이 피곤하고 힘들었지. 잘 견디어 주워서 고마워.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금식기도를 하러 기도원에 잘 갔던 것 같아.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너는 지금쯤 신학교를 그만두고 다른 길을 가고 있었을 테지...

키 작은 남자랑 결혼해서 딸 셋을 낳고 중국 선교사로 나간 선배네는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러고 보니 너에게 가장 큰 재산과 보물은 사람들인 것 같아. 내 예감에 앞으로도 너는 그런 삶을 계속 살아갈 것 같아. 네가 인품과 영성이 잘 겸비되길 기도한다.

파이팅, 방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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