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응원한다

딸과의 대화

by Bora

내 나이 38살에 막내딸을 케냐 보건소에서 낳았다. 출산하기 하루 전 날, 시내 중심에 새롭게 얻은 사무실을 둘러보러 간 김에 뱃속 아이 상태가 궁금해서 한국 수녀님이 일하신다는 보건소를 들리기로 했다. 아스팔트가 거의 벗겨진 길을 1시간쯤 달리자 울창하게 자란 나무 가지 사이로 보건소 간판이 보였다. 작은 정원 의자에는 몇몇 분의 케냐 아줌마와 아저씨들 그리고 갓난아기가 예방주사를 맞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첫째와 둘째가 이곳에서 종종 예방접종을 했었던 터라 보건소 구석구석은 눈에 익었다. 젊은 케냐 의사는 내과와 소아과와 산부인과 그 외 기타 등등 모든 진료를 혼자 담당하고 있었다.

나와 짧은 상담을 마친 의사는 자신의 손바닥을 잠시 비비더니 만삭인 내 배위를 천천히 만졌다. 그리곤 마치 한국의 화장실에서나 볼 수 있었던 뚫어처럼 생긴 기구를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속으로 도대체 저걸 어디에 쓰려고 가지고 왔나 싶었다. 사실 겁이 더럭 났지만 침대에 누워있던 나는 두 눈 만 멀뚱멀뚱 거리며 의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검은색 고무 부분을 내 배 위에 올려놓고는 가운데가 비어있는 나무 손잡이 끝에 자신의 귀를 갖다 댔다. 꼼꼼히 몇 번이나 그렇게 살폈다. 그날은 2008년 11월 어느 날이었다.

초음파 기계가 없는 보건소에서 그는 케냐 전통식으로 뱃속 아기의 움직임을 눈이 아닌 귀로 듣고 있었던 것이다. 한참 동안 진료를 한 그는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수녀님은 나에게 아기 출산을 잘하고 가격까지 싼 다른 보건소를 소개해 주셨다. 그 보건소는 지금 보건소와 완전 반대쪽에 있었다. 결국 나는 무리한 일정을 소화해 내기로 했다. 그러나 한 달 뒤 태어날 아이는 다음날 신호를 보내왔다. 오전 10시쯤 양수가 터진 것이었다. 나는 출산을 위해 미역국을 손수 끓이고 짐을 싸서 남편이 집에 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셋째가 케냐 보건소에서 태어났다.

아이는 건강하게 자랐고 막내답게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유년기 시절에는 “엄마, 나 케냐 사람이야? 한국 사람이야?”라고 혼동하기도 했었지만 아이가 태어나 자란 곳은 케냐이고 자신은 한국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딸은 한국에 대한 추억이나 애정이 그리 많지는 않다. 한국은 엄마와 아빠의 부모님과 친척들이 있다는 것과 초등학교 3학년을 제주도에서 1년 동안 보냈다는 기억이 아마 전부 일 것이다.

케냐 친구들이 "BTS 노래를 너는 왜 안 좋아하니"라고 물으면 딸은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꼭 한국 노래를 좋아해야 해?"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을 먼저 본 것도 케냐 친구들이었다. 친구들이 영화 속에 나온 장면들을 딸에게 묻는 바람에 딸은 어쩔 수 없이 오징어 게임을 봤다.


가끔씩 나와 딸은 한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때로는 자신이 한 달간 짝사랑하던 친구 이야기를, 때로는 학교에 새 친구가 오면 자신만 따라다닌다며 힘들어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같은 반 친구가 다른 친구를 주먹으로 때렸는데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며 친구가 분노조절이 안 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가해자 아이는 학교로부터 경고, 주의를 받을 것이 분명했다. 이유가 어쨌든 다른 사람 몸에 피해를 주는 것은 잘못된 행위이기 라며 딸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을 다.

“엄마~”

이렇게 시작한 대화가 2시간 동안 이어졌다. 아이는 친구의 아픔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짓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우리 딸은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어?”

“나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어. 특히 청소년을 위해서.”

갓 만 13살을 맞이 한 사춘기 소녀가 청소년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말에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오은영 박사님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네. 그러려면 청소년 상담 쪽으로 공부를 해야 할 텐데..."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미국 선교사들이 세운 크리스천 스쿨이다. 학비는 선교사 자녀들에게는 거의 50프로 할인을 해 준다. 가족 중 셋째 아이들에게는 더 큰 혜택을 주고 있다. 또한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등 NICS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이곳에 속한 선생님들은 선교사 마인드로 일하고 있다. 보수 또한 대부분은 개인적으로 후원을 받고 학교에서는 아주 적은 금액을 받고 있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오신 선생님들은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었다. 학교 선생님들 중 몇몇 분은 한국 의정부에 있는 국제학교 (NICS)에서 일하다가 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한국의 문화와 부모들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8월 새 학기에 중학생 사회 선생님으로 미스터 오라는 미국인이자 한국인 1.5세라는 분이 오셨다고 한다.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의 교육에 대해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딸은 한국의 교육 방식을 들으며 가슴이 많이 아팠다고 했다. 그날 저녁, 딸은 인터넷으로 한국을 리서치하며 세계적으로 뛰어난 부분이 많기도 한 나라이지만 자살 또한 1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린 공부로 평가되는 세상이 아닌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가치의 중요성에 대해서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 셋은 케냐에서 한국보다 훨씬 자유로운 교육환경에서 자라고 있다. 학원은 전혀 다니지 않는다. 음악 쪽에 소질이 없는 부모의 유전자를 받아서 악기를 굳이 배우고 싶지 않아 한다. 두 딸은 그림 그리기에 소질이 있지만 미술 레슨 자체를 거부한다. 그렇다고 해서 학교가 공부를 강조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특별히 고등학생에게는 아주 과제가 많다. 중요 과목70점 미만의 점수가 많으면 학년이 올라가지 않을뿐더러 졸업할 때까지 점수를 채우지 못하면 졸업장이 아닌 수료장이 나온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약 4시 20분쯤 된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편안하게 쉬기도 하고 게임도 하고 유튜브를 보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쉬엄쉬엄 숙제를 해 나간다.

나와 남편이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숙제에 대한 성실함 과 그에 따른 책임감이다. 성적도 잘 확인하지 않는다. 사실 8학년까지는 숙제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9학년(중3) 때부터는 꽤 과제량이 많아진다. 성적 평가 기준은 학교에서 요구하는 프로젝트와 숙제의 성실함에 많은 점수를 주고 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통해 점수를 평가하는 쪽이다. 물론 크리스천 학교라서 예배와 성경수업은 필수이다. 성경 본문 암송과 숙제 또한 만만치 않다.


가끔 한국을 가면 사촌들이 학원을 다니는 것을 보고 듣곤 한다. 한국의 또래 친구들이 하루에 학원을 몇 개씩이나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숨이 막힌다는 우리 아이들.

데이비드 오 선생님으로부터 참 교육은 어떤 것인지 배운 막내딸은 한국의 청소년을 돕고 싶다고 다. 딸이 성장해 가면서 꿈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딸아이가 꿈이 생겼다는 것과 무엇보다도 누군가를 위해 도움을 주는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에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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