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학교 친구들은 피부가 검은데 아메리카에서 태어났다고 미국 사람이래. 그런데 친구들 부모님은 케냐 사람이라는데... 그럼 나는 케냐에서 태어났으니깐 케냐 사람 아니야?"
막내의 질문에 첫째와 둘째는 한심 한 듯 동생을 바라본다.
"네가 케냐에서 태어났다고 케냐 사람이니?"
연년생 언니가 앙칼지게 말했다.
"부모님이 한국 사람이면 너도 한국 사람이야."
네 살 터울인 오빠가 막내 동생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한다.
막내딸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런 질문을 가끔씩 했다.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었을 것이다. 이뿐 아니라 셋째는 가끔씩 황당한 질문을 자주 한다. 딸이 태어나고 자라는 곳은 아프리카 케냐이다. 그 딸이 가끔씩 한국을 가면 깨끗한 길거리와 높이 솟은 건물들을 보며 두 눈이 휘둥그래 진다. 곳곳에 있는 24시간의 편의점과 그 안에 빼곡히 진열된 물건들이 신기하기만 한 가 보다.
"엄마, 나, 한국으로 대학 가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할 거야. 꼭."
편의점 안에서 조끼를 입고 알바를 하는 청년들을 보며 그 모습 또한 부러운가 보다.
막내딸에게 보내는 엄마의 편지
엄마는 너를 2008년 11월에 케냐 가톨릭 보건소에서 낳았어. 누구는 아카칸 종합 병원과 나이로비 대학병원을 소개했지만 한국 돈으로 2백만 원쯤을 선뜻 낼 형편이 아니라서 고민을 하고 있었지. 그러던 중 언니와 오빠들이 자주 가던 카 랜지 역의 오딜리아라는 보건소에 가게 되었어. 그곳 가톨릭 보건소에서 한국 수녀님이 일하고 계셨는데 수녀님이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깨끗하고 저렴하고 아기까지 잘 받는 곳을 소개해 주셨어. 수녀님이 16년 동안 봉사하던 보건소라며... 그날 엄마는 카랜 지역과 완전 반대에 있는 보건소로 답사를 갔지. 아주 고된 여정이었어. 그리곤 다음날 양수가 터지면서 너를 바로 낳으러 간 거야. 아마도 출산 예정일보다 한 달쯤 네가 빨리 나온 이유이기도 해.
현지 보건소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이 주위로 전해지면서 임신 중인 한국 엄마들이 정보를 물어 왔어. 엄마가 케냐 보건소에서 아이를 낳은 것이 대단하다며 말이야. 사실, 네가 셋째이고 자연분만이라서 엄마는 더 쉽게 결정을 했는지도 몰라. 그렇게 너는 순조롭게 3.2kg로 태어났어. 너는 분유가 아닌 모유를 먹으며 아주 건강하게 자랐지. 그러다가 만 4살 때 케냐에서 복막염 수술을 했잖아. 수술을 위해서 한국으로 가려고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는데 한국 여행사 사장님은 네가 맹장이면 비행기를 타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며 나이로비에서 수술하는 것을 권유하셨지. 그 말을 듣자마자 엄마는 나이로비 병원으로 출발을 했어. 엄마 품에서 기진맥진해서 쓰러져 있는 너는 기운이 다 빠져 축 늘어져 있었지. 병원으로 가는 동안 모르는 분의 전화 한 통을 받게 된다. 최근에 케냐의 의사들을 돕는 일을 하러 오신 분이라며 자신을 간단히 소개하며 무조건 나이로비 병원 닥터 센타로 가라는 거야. 본인이 그곳으로 가서 기다라고 있겠다며 말이야. 너를 맞아 주신 분은 나이 60세가 넘으신 케냐 의사였어. 그분은 소아과 전문 의사였고 한국 연세병원에서 교육을 받으신 분이라고 하더라. 침대에 누워 있는 너의 배를 몇 번 만져 보고는 의사 선생님은 맹장이라고 진단하셨어. 그리곤 아래층에 있는 이집트 사람인 외과 의사를 부르셨어. 이집트 의사 선생님은 상태를 파악하고 일사천리로 수실 방과 외부에 있던 마취과 의사를 불렀고. 너는 힘이 다 빠진 눈으로 엄마를 쳐다보며 마취과 의사 품에 안겨 수술 방으로 들어갔어. 수술이 시작된 지 1시간 만에 나온 의사 선생님은 엄마에게 뭐라고 말하신 줄 아니?
"너의 딸은 참 럭키 해. 맹장이 터졌어. 다행히도 다른 곳으로 전위가 안되고 바로 맹장 뒤에 물이 고여 있어서 수술하기 참 수월했다. 그래서 아주 깔끔히 처리가 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너의 몸에서 땐 맹장을 알코올병에 넣어 갖고 나왔지. 본인은 처음으로 어린아이의 맹장수술을 했다며 기념으로 갖고 있겠다고 하시더구나.
엄마는 문득 기쁨과 슬픔이 교차했어. 참으로 너는 럭키 해서 이런 수술을 받고 살았는데, 케냐의 많은 아이들은 수술도 받아 보지 못하고 몇 날 며칠 배앓이를 하다가 죽었으리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더라. 병명도 모른 체 말이다.
3박 4일 병원에 있던 너의 병원비가 거의 5백만 원쯤 나왔어. 정말, 까마득하더라.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한국에서 아시는 분이 여행자보험 1년짜리를 들어주셨는데 보험금에서 거의 4백만 원쯤 돈이 나왔어. 아름아름 아시는 분들이 문병을 와서 병원비를 보태주 시기도 했지. 그렇게 너는 케냐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생명이란 귀한 것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된 거야.
막내딸은 올해 한국 나이로 15살이 되었다. 정체성의 혼란은 이미 잘 정리가 되었다. 딸은 만화 캐릭터 그리기와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무엇보다 친구들의 마음을 잘 알아주고 학교생활을 즐겁게 하고 있다. 아이들 모두 개인 레슨이나 과외를 받지는 않는다. 아주 평범한 아이들로 성장하고 있다. 나의 바람은 아이들이 학교 생활을 즐기고 소소한 것에 기쁨을 누리며 스스로 행복의 가치를 찾아가는 것이다.
때론 한국의 부모님 중에 입시와 경쟁의 교육이 싫어서 해외로 아이들을 조기유학을 보내거나 이민을 가는 가족 또는 기러기 엄마로 살아가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나 스스로의 주관과 철학이 없다며 어느 곳에 가든지 분위기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말해 교육 강도만 한국에 비해 낮지 아이들을 향한 교육에 대한 열망은 여전하다.
누구는 좋은 대학을 가려면 케냐에서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라 하고 누구는 운동을 좋아하면 학교 대표선수로뛰라 하고 누구는 학생회 활동을 하라고 조언을 한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장학금 많이 주는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관리를 하는 방법이란다. 아이들이 원한다면 부모로서 서포트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나의 개인적인 생각은 부모가 앞서 주도적으로 아이들의 인생을 이끌어 가는 것은 아닌것 같다. 아이들이 어느 대학을 가든, 어느 직장에서 일을 하든, 자신이 택한 길이 의미가 있다면 소중한 삶이 아닐까 싶다. 혹시, 걷던 길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길을 뒤돌아 설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너희들의 인생은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말한 다. 어떤 이는 아이들이 사회에 나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하면 인생을 좀 더 편하고 넉넉하게 살 수 있다고말하지만 이 또한 부모의 욕심이 아닐까 싶다. 아이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실패를 통해 아픔을 경험하고 적은 것에서 성취감을 느끼며 보람과 기쁨을 찾아가면 그것은 성장해 가는 인생이다.
혹시나 지금 나의 판단이 훗날, 아쉬움으로 남을 수도 있겠으나 지금 나의 생각은 그렇다. 어찌 보면 매정한 엄마일 수 있고 어찌 보면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고 무능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갈수록 나는 너무 깊게 아이들 인생에 개입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 뱃속에서 나온 자식이지만 아이들은 한 사람의 객체인 것이다. 내가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일 때까지만 해도 수학이나 과학 성적이 좋아서 상을 받으면 괜스레 어깨가 으쓱했다. 물론 지금도 세 아이들의 성적은 A 점수를 유지하고 있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 성적 관리를 더 해야 한다고 하지만 사춘기를 지켜보면서 부모의 잔소리와 참견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된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공부와 숙제와 성적은 아이들 스스로가 관리하도록 신경을 되도록 안 쓴다. 숙제를 하다가 투덜거리면 하지 말라고 프로젝트를 꼼꼼히 준비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대충 하라고 한다. 막내가 한 과목만 빼고 다 A 라며 아쉬워한 적이 있다. 그래도 이만하면 잘한 것이라고 칭찬을 해 주었다. 이번 학기에는 성적 점수 All A를 받았다. 나는 단지 잘했다, 괜찮다는 말만 했을 뿐이었는데 스스로 학점 관리를 한 것이다.
아들은 지난 토요일에 SAT 시험을 보았다. 어땠냐고 묻자, 그럭저럭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두 번쯤 더 볼 계획이라고 말한다. 그래, 그렇게 해. 그렇게 그 말을 믿어주기로 했다. 아이들 성적에 너무 무심한 엄마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이 방식을 선택했고 아이들도 이 방식을 받아들였다.
케냐에서의 15년이라는 삶이 훌쩍 지나간다. 시간이 참으로 더디 간 다고 투덜거린 적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시간이 흘렀다. 세 아이들 모두 중학생과 고등학생이다. 이 시기가 부모나 아이들이 가장 힘든 시간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움을누리고 있다.
오늘 하늘은 참 맑고 바람은 시원하다. 살다 보면 날씨가 변덕스러울날이 많을 것이다. 그러면 그런대로 순응하며아프리카에서아이들의 십 대와 나의 오십 대가 지나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