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

나이로비에는 우버 택시와 볼트 택시가 있다

by Bora

샤워를 하고 곱게 화장을 했다. 마스크를 써야 하는데 굳이 입술에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향수를 뿌렸다. 1주일 만에 외출이다.

햇살은 찬란하고 나뭇잎은 온통 초록이다. 가끔씩 밤에 비까지 내리니 앞마당에 심어 놓은 바나나가 쑥쑥 자라 오른다.

나는 우버보다 저렴한 볼트 택시를 불렀다. 나름 신경 써서 차려입은 옷에 비해 대문 밖에는 소형 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1주일 만의 약속이니 모든 것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싶은 날이다.

택시에 올라타자마자 봉인된 입이 풀리듯 재빠르게 키스왈리어로 운전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잠보, 하바리 야 무웨카 음피야, 해피 뉴 이어”

젊은 운전사가 내 말을 못 알아들을까 싶어 단숨에 영어로 말을 붙였다. 운전사는 동양인 여자가 신기한 듯 마스크를 낀 얼굴에 웃음을 지으며 말을 받아 냈다.

“너, 키스왈리를 잘하는구나.”

내가 사는 동네는 나이로비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이다. 현지 마을에 사는 외국인은 우리 가족뿐이다.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에서 차로 울퉁불퉁한 길을 5분쯤 들어오면 언덕 위에 우리 집과 센터가 있다. 10년 전, 나이로비 대학생이었던 사이먼은 우리에게 자신의 아버지 땅을 무료로 사용하라는 제안을 했다. 안식년을 떠나는 우리가 다시 케냐로 돌아오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되었나 보다. 우리는 한국에서 안식년을 보내는 동안 그의 제안을 고민하다가 결정을 했다.


2011년 6월 다시 케냐로 돌아온 우리는 옥수수와 커피밭이었던 땅에 거주할 집과 선교센터를 지어 지금껏 살아가고 있다. 센터 앞에는 주인인 키쿠유 부족 어르신이 살고, 뒤쪽에는 그의 여동생과 연로하신 어머니와 조카가 살고 있다. 센터 기숙사에는 다섯 명의 남자 대학생들이 생활을 하는데 그중 한 명은 부모님을 일찍 잃고 길거리 아이로 자란 헤즈본이다. 나이로비 대학생이 된 그는 방학을 앞두고 갈 곳이 없다며 우리를 찾아왔다. 그렇게 그는 센터 숙소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고 올해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다.

케냐에 15년째 살고 있지만 늘 치안이 문제라 밤이면 남편은 모든 문을 꼼꼼히 확인하고 잠근다. 집에는 커다란 대문 4개가 있다. 메인 대문과 마당에서 현관으로 이어지는 대문 그리고 현관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방으로 이어지는 문은 모두 다 철문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내 마음과는 달리 현실의 삶은 경계심과 이타심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경계심으로부터 해방되는 날이다. 날씨는 좋고 오랜만의 외출은 설레기만 하다.


택시기사는 볼트 맵을 키고는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도로의 턱을 무시한 채 앞으로 만 달려 나가니 뒷자리에 앉은 나는 금방이라도 택시 지붕을 뚫고 ‘슈~퍼~맨’하고 날아갈 것 만 같았다. 고속도로 옆을 지나 새로운 길에 진입한 그는 곧바로 큰 콤파운드 앞에 차를 세웠다. 사인보드에는 카페의 푯말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우리가 도착할 곳이 맞냐라고 물었고,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맞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비원은 이곳은 주택가라며 그는 카페를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운전사에게 뭐라 뭐라 설명을 했다. 운전사는 다시 액셀을 밟았지만 아무래도 불안한 눈치였다. 그는 초보 운전사인지 무릎 위에 놓인 스마트 폰을 슬쩍슬쩍 들여다보았다. 잠깐 한눈을 팔았는지 반대편에서 오는 차와 부딪칠 뻔할 정도로 위태롭게 운전을 했다. 한참 앞을 향해 달렸지만 카페는 보이지 않았다. 스마트 폰 시계를 확인하니 약속 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다. 평소 시간을 나름 잘 지키는 나는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내 폰에 깔아 둔 구글 맵을 켰다. 친절한 한국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남자는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라고 안내를 했다. 결국 나의 구글맵이 약속 장소로 택시를 인도했다. 물론 오버 차지는 내 몫이 되었다.


택시에서 내린 나는 헐레벌떡 약속 장소로 뛰어 들어갔다.

도착하자마자 친구들에게 인사는커녕 택시 운전사 욕을 한바탕 쏟아냈다. 곱게 화장한 얼굴은 땀으로 번들거렸고 립스틱을 바른 입술에 자꾸만 마스크가 달라붙었다.

나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우아한 포즈를 취하고 달달한 커피 라테를 한 모금 마셨다. 어찌 되었건 오늘 날씨는 청명하고 사람들이 좋은 행복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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