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로비에서 나의 이름을 불러 주는 사람은 몇 안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모님`이라고 부른다.
2007년 케냐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될 때부터 줄곧 들었던 이름은 `사모님`이다. 나이로비에서는 사장님 아내를 부를 때는 당연히 사모님, 공사 파견 근무하시는 분 아내들도 `사모님`으로 통한다. 나이로비는 선교사들이 참 많다. 선교사 아내들에게도 무조건 `사모님`이란 호칭이 따른다. 만약 여행 온 당신이 나이로비에서 한국 여인을 만난다면 호칭을 `사모님`이라고 부르면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나도 내 주위 분들께 사모님이라는 존칭을 자주 사용한다. 어느 날은 '사모님'이라는 말이 입에 배어서 친정엄마와 통화하는 중에 엄마에게 '사모님'이라고 불러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케냐에서 나의 이름을 불러 주던 분이 계셨다. 그녀는 UN 산하기구에서 일하시던 김 박사님 아내분이셨다. 부부는 오래전에 케냐를 떠났지만 그녀가 나를 “영미 씨”라고 부를 때면 타국 생활에서 따뜻한 위로를 얻었다. 지금 그녀는 이곳에 없지만 그녀가 나의 이름을 불러 주던 진한 감동은 잊을 수 없다.
몇 해 전에 인터내셔널 교회를 나오신 분이 나를 “영미 씨”라고 불러 주었다. 키 작고 아름다운 그분은 인터내셔널 유치원 원장님이시다. 그녀가 나를 “영미 씨”라 부르면 어찌나 반갑고 기분이 좋은지 모른다.
1년 전 처음 본 그녀에게서 “영미 씨”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녀로부터 며칠 전에 전화가 왔다. “영미 씨, 코로나 바이러스로 힘든 시간 보내고 있죠? 우리 집에 배추, 무, 참나물이 있어요. 영미 씨 아이들 생각나서 전화했어요.”
다음날 차 트렁크에 가득 배추와 무, 참나물, 다른 먹거리를 챙겨 왔다. “영미 씨! 건강하게 지내고 다음에 또 봐요.” 그녀가 나의 이름을 불러 줄 때면 어찌나 친숙했는지 모른다.
오후 내내 배추 포기를 가르고 잘라 씻어 고무 대야에 소금을 넣고 절였다. 흙이 묻은 싱싱한 무는 깨끗이 씻은 후 잘라 섞박지를 만들고 무청으로도 김치를 담갔다. 흐르는 물에 참나물을 씻자 향긋한 한국의 봄이 느껴졌다. 오후 햇살에 씻어 놓은 참나물이 반들반들 윤이 났다. 참나물로 새콤달콤한 한국식 샐러드를 만들고, 일부 남긴 것으로는 피클을 만들었다.
배추김치 양념으로 밀가루를 풀을 만들어서 그 속에 한국 고추 가루와 빨간 생 고추, 무, 생강, 마늘, 양파 그리고 빨간 파프리카와 사과를 곱게 갈아 모든 재료들을 피시 소스와 섞어 잠시 버무려 놓았다.
절여 놓은 배추를 씻어서 물기를 뺀 후 배추 위에 채 썬 당근을 쏟아붓고 양념과 함께 버무렸다. 통 3개에 김치가 가득 찾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시기에 신은 내가 생각지 못한 것을 발견하는 기쁨을 주셨다. 가만 생각하니 내가 몰입을 잘할 때는 글쓰기와 요리인 것 같다. 글도 요리도 특별히 칭찬할 만한 솜씨는 아니지만 몰입할 때 가장 행복한 것 같다.
밤새 한국의 봄비처럼 잔잔하게 비가 내렸다. 바나나 나무 잎사귀 사이로 해가 나고 있다. 나의 이름 "영미 씨"를 불러 주는 사람에게 달려가고픈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