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31일

똥 손

by Bora

2021년 12월 31일.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오미크론 코로나 바이러스로 한인들이 고생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내가 아끼는 지인 가족이 며칠 동안 열이 오르고 내리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가족을 위해 10가지 이상의 음식을 준비하며 속히 쾌유되길 바랬다.

12월 마지막 주는 치안문제 때문에 이동을 워낙 자제 해 온터라 집콕 생활이 익숙하다. 그러나 집안에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며 무슨 요리든 해야 할 것 같았다. 며칠 전부터 찐빵을 만들어 보리라 다짐하고 유튜브 채널을 넘나들었다. 사실 나는 찐빵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부풀어 오른 찐빵은 사랑스러울 정도로 예쁘지만 내 입맛에는 별로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앙금이 너무 달기도 하지만 팥을 별로 안 좋아한다.

한국음식은 팥이 들어 간 요리가 꽤 많다. 팥죽이며 붕어빵, 비비빅과 사만코 아이스크림, 찹쌀떡, 팥빙수 그리고 찐빵 그 외 내가 모르는 수많은 음식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체질과 전혀 다른 남편은 무조건 팥이 들어가는 음식을 좋아한다. 찐빵 만들기는 어찌 보면 순수히 남편을 위한 것이었다. 본인은 한 번도 나에게 찐빵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

케냐에 몇몇 분들이 찐빵을 만들어 팔기는 하지만 가격이 싼 편이 아니고 언제 가는 도전 해 보고 싶은 발효빵이었다. 그렇게 2021년 12월 31일 오후 4시에 찐빵 만들기가 시작된 것이다.


'호주 가이버'라는 남자분의 빵 만들기에 꽂혀 한참이나 이 빵, 저 빵 만드는 걸 구경했다. 호빵 만드는 그의 채널을 보니 못 할 게 없네. 쉬워 보이네 하며 앞치마를 둘렀다.

워낙 음식 만드는 손이 큰 나는 호주 가이버의 양에 곱하기 5를 준비했다. 전날부터 준비해 둔 팥 양은 남을 만큼 넉넉했다. 찐빵을 만들기 전에 성공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왕창 만들어 냉동고에 얼려 놓기로 한 것이다. 저울에 밀가루와 설탕, 소금, 오일, 드라이 이스트, 우유를 계량해서 한쪽에 준비해 두고 호주 가이버의 유튜브를 클릭했다. 그의 인도하심 따라 반죽을 예열한 오븐 안에 넣고 1차 발효를 기다렸다. 반죽이 부풀어 오르기를 기다리라는 동안 삶아 놓은 팥에 설탕과 소금, 약간의 계핏가루를 넣고 방망이로 으깨었다. 30분이 지나 오븐을 열고 반죽을 확인해 보니 전혀 부풀어 오르지 않았다. 이상하다 싶어 20분을기다렸다. 약간만 부풀어 오른 반죽을 보며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잽싸게 냄비에 물을 끓여 반죽을 넣은 스테인리스 볼을 담갔다. 한참을 지나 반죽을 덮어 놓은 보자기를 살짝 열어보니 시큼한 냄새가 올라왔다. 그러나 반죽은 많이 부풀어 오르지 않았다. 시곗바늘은 저녁 6시를 향했다.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꺼내 놓은 반죽을 손으로 조물 거리며 가스를 빼주었다. 동글동글 하게 빚은 반죽을 손바닥으로 꾹꾹 누르고 쭉쭉 늘려 그 안에 달달한 팥을 얹고 입을 '꼭' 봉했다. 호주 가이버가 김이 오른 찜솥에 빵을 얹은 후 10분을 찌고 10분을 더 기다렸다가 뚜껑을 열라고 하기에 침착하게 순서를 지켰다. 나는 안이 들여다 보이지 않는 찜솥 손잡이를 잡으며 하나, 둘, 셋 호흡을 가다듬었다. 떨리는 맘으로 내 인생 첫 번째 찐빵을 기대하며 조심스레 뚜껑을 열었다. 순간 내 두 눈의 동공이 커지면서 입이 '쩍'하니 벌어졌다.

"어랏, 찐빵 어디로 갔어?"

정말, 기절할 지경이었다. 하얀 속살을 드러내야 할 찐빵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붉은팥이 훤히 드러나 보일 정도로 표피가 팥앙금과 `딱'하니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그토록 원하던 얇은 만두피보다 더 얇게 말이다. 나는 한순간 머리가 '띵'하니 정지가 된 듯했다. 뭔가 잘 못 된 것은 틀림없는데 도대체 문제가 무엇인지 머리 회전이 잘 안 되었다. 밀가루가 문제인가? 반죽 과정이 잘 못 되었나? 아니 너무 발효가 안되었나? 찐빵을 찌는 시간이 안 맞았나? 아님 찐빵 크기가 너무 작았나... 나는 멘붕에 빠져 한순간 힘이 쭉 빠져다.


애타는 내 마음에 더 불을 지른 것은 부풀어 오르지 않은 찐빵이 터져 버리기까지 한 것이다. 삐죽삐죽 옆으로 새어 나온 팥앙금이 마치 내 옆구리 살처럼 말이다. 발효 빵 만들기에는 예전부터 똥 손이던 나에게 이번에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발효빵 중에 유일하게 좋아하는 빵은 2가지이다. 옥수수 술빵과 떡집에서 파는 술떡이다. 옥수수 술빵은 길거리 트럭에서 아줌마, 아저씨가 자주 팔아서 쉽게 사 먹었을 수 있었다. 긴 삼각형 모양으로 잘라진 노르스름한 빵 위에 띄엄띄엄 박혀 있던 강낭콩에 그리 달지 않은 구수한 옥수수 술빵. 이 빵은 막걸리로 발효를 시켜 만든다. 그러나 몇 년 전까지도 만 해도 한국 마켓에서는 막걸리를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은 한국 마켓에 막걸리가 입고 되지만 막상 만들어 볼 용기가 생기질 않았다.

발효빵은 준비하는 시간이 길고 번거롭다는 선입견으로 쉽게 도전하지 못한 내 영역이다. 전에 몇 번 실패를 하고는 아예 손을 놓아 버린 지 한참이나 되었다. 그런데 2021년 마지막 날에 무슨 변덕으로 찐빵 만들기에 대한 욕구가 샘솟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괜스레 남편 뒤통수가 미워졌다.

"이상하다. 왜 찐빵이 안 부풀었지,.."

나의 투덜거리는 소리를 남편은 흘러들었다. 갓 쪄낸 일명 만두. 찐빵을 남편 입 속으로 쑤셔 넣었다. 입맛이 까다로운 남편은 아주 부드럽게 그러나 정확하게 일침을 가했다.

"다음부터 사 먹자."

찐빵 반죽 양을 5배로 준비하고 6시간 30분 동안 부엌에서 사투를 벌였지만 결국 찐빵은 부풀어 오르지 않았다. 찐 빵이, 남편이, 호주 가이버가 그리고 내 똥 손이 야속했다.


0시가 되니 밖에서 폭죽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이웃들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커튼을 제치니 저 멀리에 폭죽이 하늘로 치솟는 모습이 보였다. 동네 이곳저곳에서 가늘게 폭죽이 공중을 향해 올라갔다.

새해가 되었지만 희망찬 기대감보다는 찐빵 만들기의 실패로 마음이 무거웠다. 나는 커튼을 치며 중얼거렸다.

"아, 내 찐빵 어떡해."

잠이 쉽게 오질 않을 정도로 밖은 소란스러웠다. 그렇치만 오후 저녁 내내 찐빵 만들기로 몸이 고되었던지 금방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2022년 1월 1일 새벽.

나는 찐빵보다 더 달콤한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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