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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bari Jan 07. 2022

모기향 냄새

추억 소환

  코끝에 익숙한 냄새가 스쳤다.

  저녁 8시, 집안에 스멀스멀 퍼지는 향이 한여름 한국에서나 맡을 수 있는 냄새다. 4년 전 제주에서 안식년을 보내는 동안 비릿한 바다 냄새에 섞였던 냄새이기도 하다.

  이 냄새는 울타리가 없던 집에서 자란 내 유년의 여름을 소환시켰다. 한 여름밤 마당 평상에 모기장을 친 아버지는 집 근처에서 풀을 베어와 불을 붙였다. 덥고 습한 우리 집은 과수원과 나무와 풀로 둘러 쌓여 있었다. 모기가 득실득실한 여름밤은 참으로 길고도 길었다.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모기풀은 모락모락 연기를 내뿜었다. 새벽을 지나 날이 밝아오기 전 불씨는 스르륵 모습을 감추곤 했다. 

  나는 잠이 오지 않은 날이면 밤하늘에 뜬 별을 세었고 모기풀 연기 냄새를 맡으며 꿈나라로 빠져 들곤 했다.

  동네 사람들이 꼭대기 집이라고 불렀던 곳에서 나는 12년 동안 살았다.


 초등학교 6학년 3월 초, 내가 태어난 곳을 떠나 동네 한가운 데로 이사를 왔다. 하루아침에 편안하게 입었던 옷을 벗어 버리고 격식을 차려입은 옷처럼 새로운 집은 어딘지 불편했다. 동네에서 나름 세련된 집은 튼튼한 담이 쳐져 있었고 그 위로는 유리병을 깬 조각들이 빼곡히 박혀 있었다. 한순간에 자유를 박탈당 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오랫동안 나는 담이 없던 꼭대기 집에 대한 향수병을 앓았다. 산과 들이 나의 놀이터였던 그곳이 그리웠다. 신기하게도 꼭대기 집의 추억들이 하나, 둘 나의 꿈속으로 찾아와 주었다.

  새로 이사 온 집에서는 여름이 되면 모기풀을 피울 수 없었다. 아버지는 풀 대신에 모기향을 피웠다. 나선형 모기향 끝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받침에 붙어 있는 날카로운 부분에 모기향을 꽂으면 불씨는 테일을 따라 타 들어갔다. 모기향은 자신의 몸을 태우며 하얀 재를 '뚝뚝' 떨어트렸고 집안 구석구석을 헤매며 모기를 찾아다녔다. 이 놈은 때론 이불 가장자리를 태우기도 하고 노란 장판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모기향 냄새 고약할  있겠으나 나에게는 한국 여름 하면 이 냄새를 빼놓을 수 없다.


  케냐의 계절은 일반적으로 세 시즌으로 나눈다. 콜드 시즌과 우기철과 더운 계절이다. 일 년 중 전, 후반기에는 약 한 달 동안 우기철이다. 4월과 11월이면 많이 내리던 비는 요즈음은 기후 변화로 5월과 12월로 바뀐 듯하다.

  1월부터 3월까지는 한여름이다. 우기가 끝나면 6월부터 8월 때론 10월까지 콜드 시즌이다. 실내에서는 뼈가 시릴 정도로 추워서 나이가 지긋한 한국 분들은 내복을 챙겨 입곤 한다. 현지인들은 가죽 잠바와 두꺼운 털코트까지 꺼내 입는다. 콜드 시즌에는 해가 잠깐이라도 나면 현지인들은 잔디 위나 풀밭에 몸을 눕힌다. 아마도 그것은 그들이 살아오면서 나름 터득한 태양 찜질 법인 것 같다. 마치, 모래찜질처럼 말이다.

  생각보다 나이로비는 모기가 별로 없다. 해발 1,800미터에 위치한 도시는 고산답게 습하지 않고 햇볕은 강하다. 한여름이 시작되는 1월에는 집집마다 모기장을 슬슬 꺼내 놓지만 우리 집에서는 모기향을 피운다.

   2007년쯤 케냐에 나선형의 모기향은 없었다. 당연히 전기 매트나 액체도 없었다. 몇 해 전부터 시중에 나온 모기향은 재질이 한국과 달라 쉽게 불이 붙지 않을뿐더러 냄새까지 고약하다.

  남편이 모기향을 피우기 시작했다. 분명 한국의 모기향이 틀림없다. 어렸을 때부터 익숙하게 맡았던 나선형 모기향.


  한여름이 한창인 1월, 나의 머릿속은 한국의 겨울을 헤매고 있다. 서른하고 일곱 그리고 반년을 한국에서 살다가 케냐에서 14년 6개월을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말과 음식, 가족, 지인과 문화를 그리워한다.

  케냐인을 사랑하고 돕는 자로 살아가는 내가 이들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며 말이다. 

  케냐는 점점 여름을 향해 가고 있다. 제법 햇볕은 뜨겁고 날씨는 건조하다. 코끝에 스치는 모기향 냄새가 마치 엄마의 숨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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