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bari Nov 24. 2021

새로운 세상에 눈 뜨다

몰입의 기쁨

  1999년 여름은 더웠을까? 계절의 흐름을 체감하지 못할 정도로 나는 모든 것이 낯선 곳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지금껏 나의 보호막이었던 엄마의 둥지를 떠나 조금은 흥분된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다. 난곡 사거리 부근에 자취방을 얻자마자 집 부근으로 교회를 찾아보았다. 고향에서 다녔던 교회는 성결교회였는데 서울에서는 장로교회 간판만 보였다. 결국 자취방 주인 할머니가 다니시는 교회를 나가게 되었다. 교회는 교인 300명쯤 되었다. 청년부 예배는 따로 없었고 청년들끼리 자체적으로 모여 성경공부를 하고 있었다.

  우리 조의 리더는 네비게이토라는 선교회에서 성경공부 훈련을 받고 있었고 공군 직업군인이었다. 오빠의 군청색 잠바 주머니에는 늘 성경암송 카드가 들어 있었다. 오빠는 성경 읽기와 암송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지만 암송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성경 읽기에만 집중을 했다.

  처음 성경을 읽을 때는 금요일 밤에 숙제를 하듯 목표 달성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매일 1, 2장씩 읽게 되었고 어떤 때는 졸음을 쫓아가며 읽을 정도로 성경 내용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설교로만 들었던 성경 내용은 내 머릿속에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그동안 성경이 어려운 내용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읽으려는 생각 자체를 안 했었다. 성경을 읽으면서 흩어진 퍼즐 조각들이 하나, 둘 맞추어지는 재미를경험했다.

  직장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에는 성경구절이 내 마음을 다독여 주었고 엄마가 그리울 때 면 위로가 되었다. 아마도 그때부터 나는 삼색 볼펜을 좋아했던 것 같다. 성경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빨간색, 파란색, 검은색 줄을 그으며 읽었다. 성경책은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으로 되어 있을 뿐 아니라 뒤쪽에 찬송가가 첨부되어 있어서 두껍고 무겁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에서 점심을 먹고 난 후 성경을 읽었다. 출퇴근 시간에는 지하철에서 성경을 읽기를 원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가 비좁아 성경책을 펼 수가 없었다.


  성경 66권 중에 짧은 편을 골라 A4 용지에 복사를 시작했다. 복사된 성경은 어디에든 가지고 다닐 수 있었고 아주 간편했다. 고향 집에 가는 야간 고속버스 안에서 작은 전등을 켜 놓고 성경을 읽었다. 때론 내 옆자리에서 잠을 자려던 아저씨가 불편해하는 눈치였지만 미치도록 성경이 궁금했던 나는 그것을 외면한 체 성경을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가페 기독출판사에서 포켓 성경이 출판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나는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예쁜 성경책을 구입했다. 손지갑처럼 생긴 자줏빛 성경책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날아갈 듯이 기뻤다. 그렇게도 성경 읽는 시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 이듬해 꿀 보다 더 달은 성경을 배우고 싶어서 직장을 그만두고 신학 공부를 한다.      


  신학교를 다니면서 성경공부와 기독교 세계관, 선교 , 상담, 제자도, 공동체, 지도자, 전도 훈련 등 다양한 공부를 접했다. 하나님을 알고 싶은 열정이 넘쳤던 나의 20대였다. 참으로 행복했고 열심히 살았다.

  성경에서 말하는 가장 큰 주제는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었다. 성경을 읽고 배울수록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고 어떻게 하면 힘들고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누군가 힘들다고 하면 자다 가도 벌떡 일어나 뛰어 나갔고 누군가가 배가 고프다면 삼성 BC 카드를 긁어가며 밥을 사주었다. 예수를 안 믿는 아버지와 세 명의 오빠들을 위해서는 전도 엽서를 주기적으로 보냈다. 특별히 교회와 선교회에서 나에게 맡겨진 사람들에게는 사랑과 관심을 쏟았다. 바쁜 사역으로 잠이 부족해서 몸은 피곤했지만 참으로 신기한 것은 나는 참 기뻤고 행복했고 감사했다.


  어떻게 하면 더 가치있는 삶을 살아 갈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하던 끝에 나는 20대 초반에 보았던 영화 미션을 기억해 냈다. 내 가슴에 꺼지지 않는 불꽃은 선교였다.  

  2007년 새로운 나라 케냐에서 살아가면서 문화와 언어를 익히고 적응하는 시기에도 성경 속에서 길을 찾았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는 더욱 성경을 붙들었다. 그래서 또다시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성경을 사랑하는 것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님을 고백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