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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중년

근육은 아프지만 마음이 자유롭다

by Bora

최근 몇 달 전부터 어깨가 뭉치면서 등이 아파오기 시작하더니 다리에 쥐가 날듯 말듯함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급기야 서랍장을 열다가 허리까지 삐끗했다. 분명, 몸의 상태로 봐서 갱년기가 시작이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뼈마디와 근육이 예전처럼 유연하지가 않다. 물리치료를 받고 싶어도 병원비가 비싸니 집으로 마사지사를 불러서 두 번씩이나 마사지를 받고 말았다. 그러나 도통 목의 뻐근함은 쉽사리 풀리질 않는다. 그런 데다가 커피를 워낙 좋아하는 사람이다 보니 칼슘이 빠져나갔는지 튼튼했던 허리도 아프고 다리까지 절인다. 만 50십이 넘어가니 체력이 한풀 꺾인 것이 확실하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라도 하면 중간에 손을 놓질 못하는 사람이지만 요즈음에는 부엌일을 하다가 에너지가 소진되면 소파에서 앉아서 잠시 쉬기도 한다. 조금은 천천히 가려고 한다.

무엇보다도 사람을 무척 좋아하고 관심이 많았던 내가, 부쩍 텃밭에 더 오래도록 머문다. 맨발로 흙을 밟으면 건강해진다고 해서 비 온 다음날에는 텃밭에서 삽질을 했다. 육수 끓였던 음식찌꺼기를 거름으로 주려고 밭에 파묻은 것이다. 진흙 발로 텃밭 이곳저곳을 밟고 다니다 보니 발가락 사이로 부드러운 흙이 올라오는 것이 꽤나 기분이 좋다. 비가 오니 차요태 덩굴이 빠르게 자라는 바람에 새싹이 집 쪽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방향을 틀어 주기도 하고 열매를 속아 주느라 아래보다 위를 올려다보니 뻐근했던 목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고개를 번쩍 들고 하늘을 자주 올려다봐야겠다.


갱년기가 좋은 점도 있는 것 같다. 체력이 예전과는 다르지만 마음의 평온함을 얻었다. 예전 같았으면 불의를 보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울그락불그락하던 내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차분해지더라는 것이다. 사람을 바라보는 눈도 조금은 부드러워졌고 많은 부분에 있어서 욕심이 사그라들었다. 특별히 지금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없으면 더 이상 물건을 구입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자족하는 삶은 커졌고 소소한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행복감이 크다.

주위에서 갱년기 증상을 호되게 겪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걱정하는 맘이 컸었는데 막상 나에게 이 일이 일어나니 그리 나쁘지 만은 않은 것 같다.


지금껏,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고 생각되지만 가끔은 노년의 삶이 걱정이 되긴 한다. 누구는 노년에 실버타운을 간다고 하고 누구는 추운 한국 겨울은 동남아시아로 가서 에어비앤비를 얻어서 지낸다고 하는데 참말이지 남의 일이다. 케냐의 삶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집은 월세를 내면서 살면 되지만 모아 놓은 돈 없고 연금을 들어 놓은 것도 없으니 양가 부모님들이 보기엔 참으로 답답하신 자식일 거다. 노년에 대한 계획과 대책 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어찌 보면 속이 참 편안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 노년을 위해서 재산을 굴릴 수 있는 돈과 재주가 없으니 지금 주어진 삶을 감사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 어느 때보다 나는, 평온한 마음으로 중년의 삶을 자유롭고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혈액순환을 위해서 맨발로 잔디밭 30분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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