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

첫 번째 이야기

by Baraka

척박한 땅을 처음 밟았던 날을 기억한다. 나무 허리가 꺾일 정도로 탐스럽게 익었던 바나나와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수많은 과일들 , 울창한 숲을 가득 채운 덩굴 사이로 쉴 새 없이 지저귀는 새들과 초식 동물들이 자유롭게 노닐었다. 크고 작은 돌들이 뒤섞여 있는 땅에 여자는 무릎을 꿇고 입을 맞추며 이곳을 사랑하기로 다짐한다.

현지인 목사님의 소개로 만난 사이먼과 길버트와 메리는 해가 갈수록 여자에게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발에는 장화를 신고 양손에는 두꺼운 장갑을 끼고는 거친 땅을 일구어 나갔다. 물론 기계의 도움을 받아 1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끝에 숲은 농장으로 재탄생되었다.

삼만 평의 땅에 2만 5천 평은 유기농 작물을 심었고 남은 5천 평에는 여자의 아담한 숙소와 요리 수업을 위한 작업실, 게스트 하우스, 길버트와 메리 부부를 위한 집과 사이먼을 위한 숙소를 지었다. 정원 둘레로는 다양한 종류의 꽃과 식물과 과일나무를 심었다. 비가 자주 내리는 이곳의 정원은 1년 내내 푸른 잔디가 양탄자처럼 덮여있다.

물이 부족한 나라이다 보니 농장 안에 우물을 파서 담 밖으로 파이프를 연결해서는 마을 사람들에게 물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라피키’라고 불렀다. 라피키는 친구라는 뜻이다. 이곳 사람들은 여자의 이름 첫 글자인 유를 친구처럼 불렀다. 유가 유기농 농장을 시작한 지 벌써 5년이 되어간다. 라피기에서 유기농식으로 농사를 짓는다는 소문은 나이로비까지 퍼졌다. 두해 전, 여행사를 운영하는 체리티가 유에게 농장 체험과 요리교실을 패키지로 운영해 보라고 권유를 다. 라피키 식구들은 여러 번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지금은 여행사와 여행객들 사이에 좋은 소문이 났다. 요즘 들어서 라피키에 손님이 많아지면서 블로그의 평점도 매우 좋다.

한동안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여행객들의 방문이 뜸하고 여행사와 호텔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경기 침체로 잠시 문을 닫기도 했지만 라피키에는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이 방문을 했다. 그중에서 유독 유럽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오늘 방문 팀은 프랑스에서 온 다섯 명의 발랄한 아가씨들이다. 손님들은 사이먼의 안내로 농장 입구에서 무릎까지 올라오는 검은 장화로 갈아 신고 바구니를 허리춤에 끼고 농장체험학습을 시작했다. 비탈진 농장 왼쪽으로 금송화와 봉선화, 한련화, 제비꽃, 국화와 장미가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가운데 땅에는 허브 종류의 로즈메리와 라벤더, 민트, 바질과 박하가 상큼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과채류와 협채류가 싱싱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물이 흐르는 도랑 가까이에는 로칼 근채류인 카사바와 아루룻 잎사귀가 풍성한 그늘을 만들어 냈다.

이곳 사람들의 주식인 우갈리는 옥수수 가루로 만든다. 우갈리는 한국의 백설기처럼 생겼다. 우갈리와 함께 즐겨 먹는 로칼 채소인 케일, 시금치, 테레레 그리고 쓴맛이 강한 마나구도 무럭무럭 자라 오른다.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코 과일의 여신이라고 불리는 패션이다. 많은 종류 중에 인기가 가장 좋은 보라색 패션이다. 새콤달콤한 맛에 속살은 노랗고 검은 씨가 ‘오도독’ 씹힌다.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을 때면 패션을 얼려 놓았다가 실온에서 잠시 녹인 후 반으로 잘라먹기도 한다.

손님들은 농장에서 직접 먹거리를 수확하며 연신 감탄사를 쏟아 냈다.

“뷰티~풀! 원더~풀! 어~메이징!”

오늘 손님들과 요리할 음식은 꽃잎 비빔밥이다. 갓 지은 하얀 밥 위에 식용 꽃잎과 싱싱한 채소를 얹을 것이다. 소스로는 된장에 상큼한 레몬즙과 잘 익은 아보카도를 넣고 알싸한 마늘과 꿀을 조금 섞었다. 꽃잎 비빔밥은 라피키 농장의 대표 음식이 되었다.

손님들을 맞이하고 떠나보낸 후 유는 벽난로가 있는 사무실 소파에 앉았다. 케냐 AA 커피를 마시며 동네 친구들과 함께 만든 왓젭 벼룩시장을 열어 보았다. 처음에는 동네 사람들 몇몇 분으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

캠프장과 낚시터를 운영하는 사장은 잔디 깎기 기계 구입을 원했고 여행사를 운영하는 체리티는 저렴한 랩탑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벼룩시장 책임자는 그가 직접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신선한 크레이피시와 틸라필리아 생선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남겼다. 타국에서 살아가는 유에게 좋은 이웃들이 있다는 것은, 가족 같은 연대감을 준다. 유는 싱싱한 방울토마토와 달콤한 딸기를 판매한다는 소식을 남겼다.

라피키 블로그를 열어 보니 방금 다녀간 손님들이 농장에서 수확한 채소와 꽃잎 비빔밥 사진을 올려놓았다. 젊고 예쁜 아가씨들 사이에서 빙그레 웃고 있는 유의 얼굴이 보였다.


밤새 쏟아지던 비는 아침 해가 고개를 삐죽 내밀자마자 금방 멈추었다. 유가 살고 있는 라키피에서 비는 축복을 상징한다. 우기철 아침이면 기온이 내려가 도톰한 옷을 챙겨 입어야 만 하기에 유는 평소 자주 입는 겨자 색 스웨터를 걸쳐 입고 작업실 문을 열었다. 벽난로에 마른 장작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손놀림이 제법 빨랐다. 장작에 처음으로 불을 붙이던 날은 벽난로에서 쏟아져 나오는 연기를 고스란히 두 눈으로 받아 내야만 했다. 그녀는 눈물을 얼마나 많이 흘렸던지 그날을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매일 아침이면 습관처럼 커피 빈을 갈아서 종이필터에 넣는다. 갓 간 커피는 입으로 맛을 보기도 전에 기분부터 업시켜 주었다. 커피머신은 물소 두 마리가 막 싸움을 끝내고 거친 숨을 토해내듯 유리 포도 안으로 검은 액체를 뿜어내고 있었다.


는 컴퓨터 전원을 켜고 빈 화면을 물끄러미 건너다보았다. 5년 전, 케냐에 도착하자마자 유는 무작정 시골로 들어왔다. 낮에는 농장을 일구고 해가 지면 스왈리어를 배워서 그런지 스왈리어가 입에 잘 붙는다. 하루 종일 농장 사람들과 스왈리어로 말을 하다 보면 그녀는 이곳 사람이라는 착각을 종종 한다. 모국어인 한국말을 잊지 않으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루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일기식으로 글을 쓰기도 하고 어떤 날은 주제를 정해서 A4 한 장의 분량으로 쓰기도 하고 어떤 날은 마음이 흐르는 대로 글을 썼다. 유는 등 뒤로 따스한 벽난로의 온기를 느끼며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참 행복했다.

무심히 바라본 창 너머로 키가 큰 자카란다 나무에 보랏빛 꽃망울이 하나, 둘 피어나고 있었다. 빗방울이 나무 가지를 타고 ‘또르륵’ 창문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문득 하얗고 긴 손가락으로 빗방울을 지그시 누르던 지훈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반면, 단 하루라도 유의 곁에 없으면 죽을 것 만 같았다던 성훈은 그녀의 기억 저편으로 잊혀 가고 있다.


성훈과 여자는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신의 계획이었던지 여자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줄곧 짝사랑을 했던 친구를 같은 대학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여자의 명랑하고 낙천적인 성격과 다르게 위로 누나가 셋이나 있던 성훈의 성격은 차분하고 섬세했다. 그녀는 오랫동안 마음속으로 성훈을 좋아했었던 터라 한 동안 거리를 두고 그를 지켜만 보았다. 둘이 가까워진 동기는 종교가 큰 역할을 했다. 성훈은 3대째 기독교 집안이었고 여자는 고등학교 때부터 교회를 다녔다. 둘은 캠퍼스에서 종종 신앙 이야기를 나누다가 성훈의 누나 소개로 서울 화양동에 위치한 교회를 나게 되었다. 대학 1학년 종강을 앞두고 성훈과 여자는 캠퍼스 커플이 되었다. 성훈이 군대를 갔을 때는 여자는 독일로 교환학생으로 가는 것을 선택한다. 성훈은 군제대 후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IT 쪽 연구실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여자는 그 보다 3년 앞서 푸드 크리에이터로 일을 시작한다. 그들은 10년 연애 끝에 양가 가족과 교회 분들과 친구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올렸다. 성훈은 여자의 오랜 친구이자 남편이 되었다. 유난히 동정심이 많고 착했던 성훈은 여자에게 결혼 5주년이 되면 ‘아프리카’로 봉사 활동을 가자고 했다. 그래서 부부는 수입의 10프로를 결식아동을 위해 기부를 했고 10프로는 봉사 활동을 위해 돈을 모았다. 신혼부부는 퇴근 후 주로 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고 한강으로 산책을 나갔다. 매주 수요일 저녁에는 교회에 가서 여자는 피아노로 찬송가를 반주했고 성훈은 찬양을 인도했다. 교회 어르신들은 부부에게 믿음이 좋고 예쁘다며 칭찬을 해 주셨다.

행복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결혼 1주년을 보내고 얼마 안 되어서 성훈의 회사 동료로부터 연락이 왔다.

“김성훈 씨가 연구실에서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빨리 A병원 응급실로 오세요.”

평소 아픈 곳이 없었던 성훈이다. 여자는 택시를 타고 A병원으로 가는 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성훈이 장난을 치는 것 만 같았다.

성훈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사를 받았다. 진단 결과는 췌장암이었다. 1년 전 회사에서 종합 검진을 받았을 때 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위에 용종 하나를 떼어 낸 것이 전부였다.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성훈은 수술실로 들어갔다. 지방에서 올라온 양가 부모님은 수술실에서 성훈이 나오는 동안 여자의 손을 번갈아 가며 잡아 주셨다. 교회 권사님이신 어머니는 복도 한쪽에서 수술 내내 기도를 하셨다.

성훈은 수술을 하고부터 곧바로 방사선과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회사일은 재택근무로 돌렸다. 여자는 직장에 휴직서를 내고 성훈의 입맛을 돋우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수술 후에는 성훈이 그런대로 음식을 잘 먹어서 몸이 회복되어 가는 줄 알았다.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던 어느 날, 갑자기 열이 오른 성훈은 응급실로 이송이 되었다. 그날 이후 성훈은 퇴원하지 못했다. 그리고 3달 후, 성훈의 주치 의사가 여자를 조용히 불렀다.

“제가 이제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암세포가 간과 장기에 다 퍼졌습니다.”

성훈은 그나마 적게 먹었던 음식조차 목으로 넘기는 것을 힘들어했다. 삼킨 음식은 간이 해독을 못해 몸이 부어올랐다. 여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나님께 살려달라는 기도뿐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죄라고 생각되는 나쁜 것을 다 끄집어내어 회개를 했다. 초등학교 때 엄마에게 학용품을 산다고 받아 낸 돈으로 과자를 사 먹었던 일, 고등학교 때 학원을 간다고 해 놓고 동아리 친구들과 대천 겨울 바다를 보러 갔던 일, 자율 학습 시간에 공부 대신 하이틴 로맨스를 읽었던 일 그리고 성훈을 너무 사랑했던 것이 죄가 된다면 용서해 달라며 병원 바닥에 무릎을 꿇고 소리 없이 부르짖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자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 성훈은 눈을 감기 전까지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했다.

부부의 결혼식을 주례한 목사님은 성훈의 장례예식까지 인도했다.

“하나님은 젊은 김성훈 형제를 고통과 눈물이 없는 하나님 품으로 데려가셨습니다.”

애써 울음을 참았던 목사님은 끝내 눈물을 흘리셨다. 교회 성도들은 여자를 위해 함께 울며 기도를 해 주었다. 하지만 누구의 말도 그녀에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여자는 하나님도 성훈이도 미웠다. 그렇게 3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다. 신기한 것은 여자는 직장에 복직을 했고 교회에서는 예배를 하며 교인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그러나 교회 분들의 끊임없는 기도와 위로에도 여자는 예전 모습으로 되돌아가지 못했다.

어느 날, 성훈의 큰누나가 회사 부근으로 여자를 찾아왔다. 시누이는 동생 성훈을 너무 그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자가 좋은 사람 만나길 바란다, 가족은 여자의 행복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했다. 성훈의 누나는 끝내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렸지만 여자의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신정이 지나고 구정이 다가 올 무렵 여자의 시댁에서 전화가 왔다.

“우리 집에 안 와도 된다. 성훈이는 그만 잊어라.”

여자를 많이도 예뻐해 주신 마음이 따뜻한 아버님이셨다. 그녀를 위한 배려였지만 서운함 감정이 저 밑에서 뭉글뭉글 올라왔다. 여자는 그해부터 시댁과 친정에 가지 않았다. 성훈의 죽음과 함께 모든 것들이 바스러져 공중으로 흩어져 버렸다.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있던 여자에게 목사님 부부가 찾아오셨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줄곧 그녀를 지켜본 사모님이 두 손을 잡아 주셨다.

“강 선생, 성훈 형제가 하늘나라에 간지 3년이나 지났어. 성훈 형제도 이런 강 선생 모습을 원하지 않을 거야? 젊은 사람의 얼굴에서 웃음이라곤 찾아볼 수 없으니……, 힘을 내야지!”

사모님의 따스한 말에 여자는 펑펑 눈물이 쏟아졌다. 그동안 억 누르고 만 있었던 감정이 봇물 터지듯 흘렀다.


1주일 후, 차는 서울 올림픽 대로를 타고 미사리를 지나 양평으로 달려 나갔다. 차 창 너머로 강물이 햇살에 반짝거렸다. 들판에는 하얀 머리를 풀어헤친 갈대들이 정신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한참을 달리던 차는 언덕 위 하얀 2층 집 앞에 멈추었다. 대문 앞에는 ‘강가의 집’이라는 작은 나무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앞마당에는 드라마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황금색 잔디가 깔려 있었다.

초겨울 오후, 강물이 바람에 넘실거리는 양평은 추웠다.

화장을 곱게 한 분과 사모님은 서로가 잘 아는 사이 같아 보였다.

거실은 깔끔하게 잘 정리가 되어 있었고 커다란 창문 너머로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보였다. 검은색 가죽 소파에 오후 햇살이 살포시 내려앉고 있었다. 거실 한쪽에는 하얀 바지에 아이보리 색 브이넥 스웨터를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마른 체형에 키가 큰 남자의 얼굴은 핏기가 없어 보였다. 어디에서 본 듯한 얼굴이었지만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알렉스입니다.”

남자는 바지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빼며 여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남자가 내민 손등 위에 검게 멍든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성훈의 손등에서 수없이 보았던 흔적이다. 순간 머리가 ‘핑’ 하니 돌며 다리가 후들거렸다. 온 정신이 손등에 쏠려 남자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강가의 집을 나와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1주일 전에 만났던 남자는 성훈 보다 키가 한 뼘은 더 커 보였다. 남자의 손등에 아직도 검푸른 자국이 남아 있을까? 부엌 싱크대를 등지고 서 있던 남자가 먼저 여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강 선생님"


독일로 교환학생으로 갔을 때 ‘도텐펠더호프’라는 유기농 농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친환경 유기농 재배를 경험한 뒤로 먹거리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푸드 크리에터로 8년 동안 일하는 내내 유기농 재료만을 고집했다. ‘건강한 밥상’이라는 프로젝트로 TV프로에 잠시 출연을 했었는데 그때에도 음식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려고 했다. 물론 1인을 위한 요리 수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른 아침부터 여자는 유기농 마트에서 사 온 식재료들을 식탁에 꺼내 놓았다. 남자와 수업할 첫 요리는 채소와 과일이 들어간 쌀국수 샐러드다. 미지근한 물에 딱딱한 면을 넣고 불리는 동안 딸기와 사과, 망고, 아보카도, 양상추와 견과류를 준비했다. 삶아 놓은 하얀 쌀국수 위에 준비해 놓은 알록달록한 채소와 과일을 얹었다. 소스는 겨자에 꿀과 레몬을 섞었다. 수업의 마무리는 요리한 음식을 함께 먹는 것 까지다. 이 계획은 강가의 집을 처음 방문하던 날, 중년의 여자분이 제안한 일이었다.

요리 한 음식을 가운데에 두고 남자와 여자는 마주 앉았다. 그는 입맛이 없는지 쌀국수 샐러드를 몇 번 집어 먹다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젓가락을 살며시 내려놓았다. 예의 바르고 착하게 말하는 모습에서 성훈의 모습이 보였다. 성훈을 떠나보낸 이후로 여자는 친구들과의 만남과 영화를 보는 것, 음악을 듣는 것 그리고 여행과 산책하는 것조차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