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보다 비싼 돼지고기

김치 찜 한솥

by Bora

충청도에는 유난히 성결교회가 많다. 내가 살던 동네의 교회도 성결교였다. 나는 고1, 여름 방학에 교회를 처음 나가게 되었는데 그때 학생부 전도사님이셨던 분은 자신의 모교회에서 사를 하고 있었다.

시간은 많이 흘렀다. 우리 부부는 케냐 선교사로 나갈 모든 절차를 마치고 아이 둘을 데리고 서산의 농촌 교회를 방문한다. 그곳에는 나의 스승이셨던 전도사님은 오래전에 목사님이 되셔서 사역을 하고 계셨다. 목사님은 교제를 하고 떠나는 나에게 나이로비에 학교 선배님이 계시다며 하얀 종이에 최선교사님의 전화번호를 적어 주셨다.

2007년 6월, 우리는 케냐에 도착을 한다. 집을 구하고 살림을 들여놓고 최선교사님께 연락을 드렸다. 그리고 어느 날 이른 저녁 식사에 부부를 초대했다. 둥그란 중국 식탁에 둘러앉아 우리는 식사를 했는데 그날 주메뉴는 보쌈이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최선교사님의 신학 동기분들 중 내가 아는 분도 몇몇 분 계셔서 금방 친숙함이 생겼다.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식사를 한 뒤 몇 개월이 지난 후 최선교사님 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본인이 선교사 회장으로 봉사를 하게 되었다며 부서기로 섬겼으면 한다며 요청하셨고 우리는 기꺼이 동참을 했다.

그때는 임원들 집을 돌아가면서 회의와 식사를 했다. 한 번은 여자 부회장이신 선교사님이 카랜지역에서 사셨는데 그녀의 집은 신학교 안에 있었다. 사모님은 13명쯤 되는 사람들의 점심 준비를 위해서 복잡한 시티 마켓에서 돼지고기를 사 오셨다. 잘 익은 김치와 양념한 돼지갈비에서 우러나오는 국물 맛이 정말 끝내주게 맛있었다. 푸짐한 돼지김치 찜을 한 그릇 먹고 나니 앞으로 케냐 삶을 잘 살아갈있을 것 같았다.


케냐의 파머스 초이스라는 곳에서는 품질 좋은 돼지고기를 구입할 수 있다. 도축장까지 있는 공장은 돼지를 구입할 때 너무 무게가 나가도 안되고 개월 수가 6개월이 넘어도 안된다. 공장에서는 돼지고기를 큰 부위별로 잘라 판다. 예를 들어 삼겹살, 어깨살, 허벅지살, 족발 등으로 말이다. 케냐의 까르프 마트에서는 파머스 초이스의 돼지고기와 햄과 각종 소시지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로칼 마트는 검증되지 않은 고기가 들어가다 보니 돼지고기에서 노릿한 냄새가 나거나 고기가 질기다. 삼겹살 부위는 살만 조금 있을 뿐이고 껍데기와 비계가 대부분이다. 소는 풀을 먹고 자라다 보니 거의 사료비가 안 들지만 돼지 양돈은 사료 구입뿐 아니라 판로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무게가 빨리 늘어나지 않아 1년 넘게 키운 돼지고기가 시중으로 나오면 소고기처 럼 질기다. 그러나 파머스 공장의 고기는 믿고 살 수 있을 만큼 품질이 좋다. 공장에서 고기를 싸면 가격은 저렴하지만 많은 양을 구입해야 하기에 여럿이서 구매를 해야 한다. 예전에는 파머스 초이스 회사에서 큰 도시마다 작은 체인점을 만들어 고기를 납품했다. 빨리 상하는 돼지고기는 냉장. 냉동시설이 된 곳에서 만 판매를 하다 보니 고깃값이 소고기보다 비싸다. 물론 가장 비싼 부위는 삼겹살이다.


나이로비에서 30분쯤 더 고산으로 올라가면 니므로라는 지역이 있다. 그곳에 작은 파머스 초이스 매장이 있다.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우리는 그 가게를 자주 다. 그곳 주인아저씨는 끼꾸유 부족이셨는데 작은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담배를 피웠다. 아저씨는 품질 좋은 고기를 갖다 놓았고 미리 주문을 하면 케냐 사람답지 않게 약속을 잘 지켰다. 그는 역시 비즈니스를 잘하는 끼꾸유 부족이었다.

나는 좋은 소식, 특별히 먹거리의 정보를 나누는 것을 좋아해서 가까운 한국 분들에게 이 가게를 소개해 주었다. 오랫동안 한국인들은 그 가게의 주요 고객이 되었다. 한번 살 때마다 적어도 10kg씩 샀으니 아저씨는 한국인들을 환영했다.

어느 해 그곳을 방문했다. 그런데 아저씨가 보이지 않았다. 덩치가 좋은 아저씨 대신 키가 크고 마른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아저씨의 아들이라고 말하며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셨다 했다.

젊은 사장은 아버지와 다르게 장사 소질이 없었다. 억지로 그 가게에 나와 있는 것 같았고 손님은 점점 줄어들었다.


지난주에 지인이 파머스 초이스라는 돼지고기 공장을 간다며 삼겹살을 주문하라고 했다. 나는 삼겹살과 어깨살을 주문했다. 살과 뼈가 분리되지 않은 3kg의 어깨살을 자를 자신이 없어서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남편은 칼을 갈아가며 살과 뼈를 분리했다. 살 몇 덩어리는 보쌈으로 삶고 뼈에 넉넉히 붙어 있는 고기는 냉동고에 보관을 해 두었다.

작년에 담가 놓았던 묵은지를 꺼냈다. 김치를 담그면 바로 김치냉장고에 넣는데 전기가 나가고 들어 오기를 반복하다 보니 푹 익었다.

오늘은 묵은지와 돼지뼈가 만나는 날이다. 묵은지 머리를 뚝 잘라 내고 솥에 김치를 깔았다. 그 위로 고기를 얹고 다시 김치를, 다시 고기를 얹고 김치를 얹었다. 냄비 안으로 김치 국물과 육수를 부었다. 김치찜이 끓어 올라 반쯤 뚜껑을 열고 한참이나 익히니 온 집안에 한국 식당 부럽지 않은 김치찌개 냄새가 퍼졌다.


룬다 84호는 나에게 추억이 많은 곳이다. 그곳에서 단기 봉사자 3명과 살았고 막내를 낳았고 아이들 셋이 넘어져 이마가 찢기고 메리와 길버트라는 귀한 현지인들과 우정을 쌓고 3개월 동안 갈 곳 없던 한국아 가정을 케어하고 몸바사에서 생선을 주문해서 한인들에게 전달을 하고 케냐 대학생들이 몇 해 동안 주말이면 1박 2일로 훈련을 받았고 온 가족 벼룩으로 고생을 하던 곳이기도 하다.

이웃과 손님과 가족을 위해서 특별한 식사를 준비할 때는 정원에서 숯불고기를 먹곤 했다. 그런 날은 어김없이 니므로의 파머스 초이스에 가서 폭찹 부위를 사다가 숯불고기 파티를 했다. 그 작은 축제에는 웃음과 사랑과 이야기가 있었다.

나이로비보다 200미터 높은 니므로에 오르면 귀가 잠시 멍하다가 뻥 뚫렸고 하늘은 높고 공기는 시원했다. 무엇보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홍차밭이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그리고 그곳에는 끼꾸유 어르신이 있었다. 아직도 나는 아저씨가 내뿜었던 담배연기와 느긋하게 말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몇 해 발길을 멈추었던 , 니므로 동네로 속히 달려가고 싶다.


파머스 초이스에서 구입한 삼겹살 3.3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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