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산 육포

고기 요리꾼

by Bora

몇 해 전, 나이로비 대형 몰에 까르프가 들어섰다. 마치 한국의 E마트처럼 쇼핑 몰 마다 점령을 해 나가고 있다. 동부 아프리카에서 가장 발전한 나라는 케냐이다. 그러다 보니 돈 될 만한 기업과 사업가, 각 나라 대사관, 국제협력 단체 그리고 종교 단체의 베이스캠프가 나이로비에 몰려 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위에 것들이 나이로비에 집결되어 있기 때문에 발전이 되었는지 모른다.

까르프는 프랑스에서 직접 관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랍에서 입점을 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외국기업이 케냐에 터를 잡는 건 쉽지 않다. 정부와 정치인과 사업가가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수많은 딜이 오가며 어마어마한 뇌물이 상납됐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아랍인들이 몸바사 항구도시를 침략하여 다스렸는데 아랍어가 스왈리 어의 뿌리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아랍이 동부 아프리카 쪽을 담당하는 것이 프랑스보다는 훨씬 수월 할 것이다.

2007년, 우리 가족은 케냐에 도착했다. 인도인이 사장인 나꾸매트라는 마트가 한창 번창을 하고 있었다. 돈을 긁어모은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날마다 새로운 지점이 생겨났다. 사장의 아들들이 두바이에 사업을 투자했다가 폭망 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나꾸매트도 사라졌다.

5년 전, 나꾸매트 자리에 세련된 까르프가 들어섰다. 그전에는 날짜가 임박한 음식이 분명한데도 절대로 디스카운트가 없었다. 까르프에서 처음으로 원 플러스 원과 프로모션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케냐인이 운영하던 우쭈미는 아예 문을 닫아 버렸고 터스키도 몇 군데만 남았을 뿐이다. 현존하는 나이바스와 퀵마트는 까르프에 비해 물건이 다양하지 않고 비싸기까지 하니 사람들은 까르프로 몰려들 수밖에 없다.


지인과 점심을 먹은 후 바람이라도 쐴 겸 나이바스라는 마트에 들렸다. 까르프 정육점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실버 파트 소고기를 발견했다. 기름이 깔끔하게 정리가 된 살코기가 아주 탐나 보였다.

케냐는 소고기가 닭고기, 돼지고기, 생선보다 저렴하다. 문제는 질기다는 것이다. 고기를 부드럽게 하는 비법을 알아내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유튜브가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는 이웃에 사는 한국분들께 물어물어 비법을 들었고 요리책을 뒤적거리곤 했다.

현지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피비린 내 나는 고기를 먹고 자란 터라, 내 입맛과는 전혀 달랐다. 질긴 소고기를 씹는 것을 오히려 즐기는 것 같았다. 어느 날 현지인 집에 초대를 받았다. 케냐 아줌마가 정성을 들여 만든 고기는 씹으면 씹을수록 껌처럼 질겼다. 결국,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한 고기는 휴지로 싸서 내 가방 안에 슬그머니 넣었다.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부터는 네이버를 통해 소고기 요리에 대한 리서치를 했다. 요즈음은 자연스럽게 유튜브를 통해서 정보를 얻지만 아직도 실패를 한다. 온갖 지식과 정보를 동원해도 육질을 부드럽게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불고기감이나 스테이크나 고기전은 안심으로 요리하지만 부위는 두말할 것 없이 비싸다. 국거리와 장조림은 저렴한 고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많은 실패를 거듭한 후에 질긴 고기를 맛있게 요리하는 방법은 바로 가스용 압력밥솥이다. 싱싱한 소고기를 사 오자마자 그냥 요리를 해서 먹기라도 하면 영락없이 턱이 아프거나 임플란트를 한 사람이라면 이빨이 빠질 수도 있다.

나는 무조건 갈비와 소꼬리, 허벅지 살과 종아리 살등 한마디로 안심을 제외한 부위는 무조건 압력솥에서 삶아 낸다. 핏물을 뺀 고기에 물을 자박자박 넣고는 귤껍질과 마른 고추, 생강, 양파, 마늘, 커피, 통후추 그리고 파뿌리와 자투리 야채를 넣고는 30분간 삶아 준다. 고기가 식으면 노란 기름을 떼어 낸다. 고기를 알맞게 썰은 후 본격적으로 양념을 해서 요리를 한다. 이 방법은 두배 때론 세배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고로움을 감수하며 요리를 하는 것은 가족을 위함이다.

어제는 닭가슴살 3kg로 치킨가스를 만들었다. 냉동된 닭가슴을 녹여 핑거 모양으로 자른 후 생강과 마늘, 후춧가루와 소금으로 간을 해서 1시간쯤 재워 놓고는 식빵과 먹다 만 비스킷을 섞어 믹서기로 갈았다. 이곳에 파는 빵가루는 한국과 달리 과자 부스러기 같아서 기름에 튀기면 겉표면이 까맣게 타 버린다. 식빵을 직접 갈아 쓰는 것이 훨씬 저렴하고 맛이 좋다. 닭가슴살에 밀가루를 묻히고 계란옷을 입혀 빵가루를 바른 후 플라스틱 통에 한번 튀길 만큼 차곡차곡 쌓았다. 3Kg의 치킨가스는 세 아이들의 도시락 반찬이다.


오늘은 기름기 없는 실버 파트로 육포를 만들기로 했다. 까르프에서도 육포를 팔지만 노란 기름이 군데군데 많이 붙어 있다. 육포에 달라붙은 노란 기름 덩어리는 씹기만 해도 속이 메스껍고 고기의 잡내를 잡는다고 넣은 향신료는 오히려 입맛이 떨어졌다.

후배가 보내 준 건조기를 꺼냈다. 한국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물건인데 쓸 일이 없다며 보내온 선물이다. 가끔 망고, 바나나, 사과, 고구마만 말렸는데 육포를 만들기 시작했다.

소고기 1kg 양념을 해서 기계로 말려내면 450g 정도 나온다. 고기에 간장과 인스턴트커피, 생강, 마늘, 후추, 소금, 설탕, 맵고 굵은 고춧가루와 참기름 그리고 시나몬 가루 조금을 넣어 조물조물 양념을 한 후 김치냉장고에서 하룻밤을 재운다. 5칸짜리 건조기에 1층부터 5층까지 고기를 빼곡히 채웠다. 건조기 타이머 기능 중 최고 시간인 10시간을 눌렀다.

기계가 '윙윙'거리며 돌아가면서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부엌에 가득 찾다. 오늘만큼은 전기가 나가질 않기를 바라는 맘으로 위층과 아래층을 오가며 고기를 살핀다. 1시간마다 고기를 확인하며 뒤집어 주고 칸을 바꾸어 준다. 아침 8시부터 부지런히 돌아가던 건조기는 오후 4시쯤 되면 한 사발 량의 육포를 만들어 낸다. 학교를 다녀온 아이들은 부엌으로 달려와 냉큼 입속으로 고기를 집어넣었다. 금세 그릇 안에 담겨있던 육포가 동이 났다.

오후 6시, 타이머가 멈추었다. 육포에서 쫘르륵 기름기가 도는 것이 꽤나 맛있어 보인다.

육포 양념, 김치 냉장고에서 하룻밤을 숙성시킨다

무슨 음식이든 요리하기로 결심만 하면 맛과는 상관없이 도전을 하는 나다. 아이들은 인스턴트 음식이 발달된 나라에 살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장에서 나오는 한국의 만두, 떡갈비, 돈가스, 동그랑땡 같은 음식을 잘 먹지 않는다. 한마디로 오리지널 고기 같지 않다는 것이다.

엄마가 끓여준 매콤한 된장국이랑 묵은 김치가 최고 맛있다는 큰아이, 엄마가 만든 피클이 맛있다는 둘째 아이, 엄마가 끓여준 육개장이 제일 맛있다는 셋째 아이. 셋 다 홈메이드 음식을 좋아한다.

나는 오늘도 부엌과 스마트폰을 넘나들며 조물조물, 뚝딱뚝딱, 탕탕거리며 음식을 만든다. 어느 해,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이 말했다. 이렇게 요리하는 것도 얘들이 옆에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거야, 마치 지금이 가장 행복한 때라는 말처럼 들렸다. 나는 그녀의 말을 가슴에 새기며 건강할 때 그리고 의욕이 있을 때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부엌을 서성거린다.


핸드 메이드 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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