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이 보약

육개장

by Bora

외출하지 않는 날에는 밀린 과제를 하듯 요리를 한다. 오늘의 요리는 내 스타일로 끓여낸 우거지가 잔뜩 들어간 육개장이다. 냉동고에서 배추와 무청, 고사리, 파, 릭과 고사리를 꺼냈다. 뜨거운 물을 부어 마른 표고버섯과 건토란대를 불리는 동안 삶아 놓았던 소고기를 썰었다. 고기를 삶을 때 오렌지 껍질과 매운 고추, 생강, 통후추를 넣고 너무 진하게 내려 마시기 힘든 원두커피를 넣었다.

보라색 양파 다섯 개를 골라 채를 썰고 마늘과 매콤한 로칼 고추를 한 움큼 잘라 주었다. 마지막으로 며칠 전에 사 온 귀한 콩나물을 씻었다.

얼었던 야채가 녹으면 1차 양념을 한다. 피시소스와 소금 약간, 국간장, 고춧가루, 다시다 조금, 후춧가루, 생강가루를 넣어 양념이 잘 섞이도록 버무려 준다. 프라이팬에 식용유와 참기를 섞어 끓이다가 고춧가루를 부어 고추기름을 냈다.

정성 들여 끓여 놓았던 육수를 냄비에 부었다. 거기에 양념이 골고루 벤 모든 재료를 넣고 고추기름을 뿌렸다. 빨간 고추기름이 육수 위로 둥둥 뜬 것을 보니 군침이 다.


커다란 냄비 두 개에 끓이는 우거지 육개장은 우리 집에서 남편 한 사람만 빼고는 다 잘 먹는다. 육개장을 끓이기라도 하면 양이 많아지는데 비교적 요리하기에는 수월한 편이다. 준비하는 과정이 꽤 번거롭기는 하지만 실상 끓이는 시간과 간만 잘 맞추면 그리 어렵지 않다. 후딱 만들어 내는 음식이 아니라 부엌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인내가 필요할 뿐이다. 드디어 오후 내내 끓여낸 우거지가 듬뿍 들어 간 육개장이 완성되었다. 한소끔 김이 나가자 빈 통을 찾아 한 곳에 모았다.

첫 번째 통에는 H의 가족을 위해서 육개장을 담았다. 오늘 끓여낸 육개장은 아픈 H의 가족을 위함이다. 특별히 그녀의 남편이 육개장을 좋아한다기에 정성을 들였다. 건더기가 많이 들어간 육개장과 갓담은 배추김치와 얼려 놓은 히비스커스를 오토바이로 보낼 참이다.


케냐에 사는 한인들은 몸이 허하다고 해서 보약을 지어먹을 수가 없다. 물론 한의원은 없다. J은 1년에 한 번 한국을 갈 때면 체력이 약한 자신과 아들을 위해 보약을 지어먹고 다시 케냐로 복귀해서 몇 달을 버텨낸다고 한다. 케냐에서는 몸에 기운이 없다고 해서 포도당 수액을 맞는 것은 쉽지 않으니 챙겨 먹는 것이라곤 비타민 C와 영양제나 홍삼액이다. 특별히 홍삼액은 한국에서 가지고 와야 하니 이 또한 귀하다. 그러다 보니 세끼 한식은 보약이다. 고추장과 된장, 간장은 음식의 기본 소스가 되니 밥맛이 없기라도 하면 고추장이나 간장에 밥을 비며 먹거나 케냐에서는 시금치라고 불리는 근대에 된장을 풀어 국을 끓여 먹으면 입맛이 살아나기도 한다.

내가 유난히 기운이 없고 어지러울 때 먹는 최애 음식은 라면이다. 이런저런 방법을 다 동원해도 해결되지 않던 어지럼증은 뜨끈한 라면 국물로 해결이 되었다. 국물 한 모금을 마시면 눈이 밝아질 정도이니 나에게 라면은 보약인 것이다.

세 아이들은 학교에 매일 도시락을 싸 간다. 물론 식비 절감도 있겠으나 학교 밥을 매일 먹기에는 입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 막내딸은 7학년이다. 반 친구들이 멸치볶음과 김밥을 유난히 좋아하는데 어느 날은 딸의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너의 엄마가 만든 음식이 맛있어 보여. 나도 너의 런치를 먹고 싶어." 그러니 나는 한식 도시락을 싸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얼큰하게 끓여낸 육개장을 아이스크림 빈 통에 한통씩 담아 냉동고에 넣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될 때부터 대량의 육개장을 끓여 주위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했던 것이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5월은 우거지가 듬뿍 들어간 육개장이다. 이번 달에는 특별히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눌 것이다. 가만히 눈을 감으니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얼굴이 떠 오른다. 그들이 육개장 한 그릇을 먹고 기운을 차리길 바란다. 그릇은 Y의 여린 맘이 더 이상 상처받질 않길, 한 그릇은 L의 힘든 맘이 회복되길, 한 그릇은 S가 삶의 무게를 잘 견디어 내길 그리고 한 그릇은 U가 한국에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잘 이겨내길... 그렇게 위로가 되길 소원하며 우거지 육개장을 통에 담아낸다.


양은솥에 끓고 있는 우거지 육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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