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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의 줄리엣

둥지를 떠난 삶

by Bora

카톡 사진 속 그녀의 눈은 슬픔이 가득했다. 워낙 조용하고 수줍을 타는 성격이라서 활짝 웃는 모습은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얼굴에서 외로움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영화 속 줄리엣을 닮은 그녀를 내가 처음 만난 것은 2002년 인천 M단체에서였다. 그녀는 산업 대자인 학과를 막 졸업하고 직장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늘 말이 없는 그녀였지만 자신에게 맡겨진 일은 최선을 다했다.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일은 어려워했지만 백 마디 말보다 몸소 실천하는 성실함이 그녀에게 있었다.

긴 생머리에 날씬한 그녀는 청바지를 즐겨 입었고 화장은 한 듯 안 한 듯 수수했다. 김포 어느 지역에서 포도농사를 하는 홀어머니와 위로 언니 둘, 아래로 남동생 한 명이 있었다. 어느 해 인천 M단체의 청년들과 함께 그녀의 집에 가서 포도를 따며 농사일을 도운 적이 있었다. 집안 이곳저곳에는 줄리엣이 어렸을 때부터 그렸던 그림들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집에서도 교회에서도 M단체에서도 회사에서도 착한 사람이었다.


우리 부부의 눈에 조차 줄리엣은 성실, 신실, 착함, 효녀, 예의를 갖추는 청년이었다. 그래서 똑똑하고 신실한 교회 남자 청년을 그녀에게 소개해 주기로 했다. 둘은 한 번, 두 번, 세 번 만남을 갖으며 점점 호감을 갖게 되었고 결혼까지 했다는 소식을 케냐에서 듣게 되었다.

줄리엣의 남편은 서울의 어느 대학원에서 전기공학 쪽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의 연구실에서 2년 간 일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대기업 연구실에서 근무를 했다. 그리고 그가 쓴 논문의 효력 마지막을 코 앞에 두고는 한 대학에 서류를 낸다. 그때 그의 나이는 38살이었다.

젊은 나이에 꽤 괜찮은 직업과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된 부부가 이웃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는지 모른다. 소도시에 새로운 가족이 그것도 젊고 유능한 사람이 왔다는 소식은 조용한 동네에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충주를 향해 자가용은 2시간쯤 달려 나갔다. 한참을 달려도 앞에 차 한 대가 없을 정도로 고속도로가 한산했다. 쭉 일자로 뻗은 도로 옆으로 초록색 벼들이 빼곡히 심겨 있었다. 그 끝으로 멋스러운 산이 동네를 둘러쌓았다. 내비게이션은 우리를 맛있다고 소문난 오리 백숙집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곳에서 줄리엣의 부부를 5년 6개월 만에 만나기로 한 것이다.

지난해 잠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줄리엣과 오랫동안 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잠을 못 자 수면제를 먹고 있다는 그녀는 집 가까이에 살던 이웃집 언니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며 많이도 서운해했다. 교회에서 봉사를 하고 싶었지만 그 또한 잘 안되었다. 무엇인가 잘 못되어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여름은 부부를 직접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충주를 방문하기로 한 것이다.

줄리엣 부부는 우리 부부를 아주 반갑게 맞이했다. 오리고기는 맛있었점심을 먹은 후 자리를 이동해서 건너편에 있는 빵과 커피가 유명하다는 멋스러운 2층 카페로 향했다.

줄리엣은 나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이 시간이 꿈만 같아요. 너무 행복하고 좋아요."

말속에서 그녀가 얼마나 외롭고 고립된 삶을 살았는지 읽혔다.


수도권에서 가족들과 화기애애하게 지내며 교회생활을 재미있게 하며 사람들을 도우며 의미 있는 삶을 살았던 그녀였다. 그러나 새로운 도시에서는 그 삶이 허용되지 않았다. 교회는 더 이상 봉사자를 원하지 않았고 동네 주민들은 그녀에게 순수한 이웃으로 다가오기보다는 교수의 아내라는 선입견을 가졌다. 종종 줄리엣의 가족들이 외출이라도 하면 몇 시 몇 분에 차가 나가더라며 아는 척을 해 오는 것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던 것이다. 워낙 소극적인 그녀로서는 행동의 영역을 더 좁혀야 만 했다. 반면 그녀의 남편은 새로운 직장에서 그리도 원하던 꿈을 실현하므로 나름 가치 있는 삶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줄리엣은 새로운 도시에서 발버둥 치듯 외곽에 위치한 공장에서 포장을 하는 일을 하기도 하고 떡집 아르바이트도 했다.

이제 한차례 그녀의 인생에서 큰 폭풍이 지나간 듯하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자격증을 준비하고 한 학기 동안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을 지도했다며 행복해했다. 또한 교회에서 어렵게 사귄 어르신을 따라 봉사활동에 동참하려고 한다.

어마어마하게 깊은 정글 속에서 오랫동안 앞이 보이지 않아 가슴이 터질 것 만 같았던 그녀는 작은 오솔길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바쁜 한국의 여름 일정을 마치고 나는 케냐로 돌아왔다.

'나를 만난 것이 꿈만 갖다고 말하던 줄리엣.'

머나먼 아프리카 케냐에서 나는 그녀를 위해 기도하며 응원할 것이다. 지금껏 그녀를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짐으로부터 마음이, 삶이 해방되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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