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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

나의 존재

by Bora

햇볕이 초록 잔디 위로 내려앉으니 반들반들 윤기가 맴돈다. 물기가 아직 마르지 않은 촉촉한 잔디 위로 양말을 벗은 두발을 살짝 내려놓는다. 맨발로 걷기를 시작할 참이다. 정신이 번득 나는 차가운 기운이 발바닥으로 느껴지니 기분이 상쾌하다. 한참이나 잔디밭을 걷다 보면 다리가 점점 무거워진다. 코로나 팬데믹과 갱년기 시기가 겹치면서 몸무게가 부쩍 늘어났다. 평소에는 손이 잘 가지 않던 과자와 빵과 라면이며 밀가루 음식이 입에 당기고 카페에 가면 아메리카노보다는 카푸치노를 주문하게 되었다. 그동안 먹지 않았던 밀가루와 설탕을 4년 만에 다 먹은 것 같다. 뱃살이 늘어나면서부터 바지는 거의 프리사이즈를 선호하게 되었고 어깨 쪽에 살이 두툼하게 붙다 보니 이 사람 저 사람으로부터 물려받은 옷이 불편해진다. 무엇보다도 바지를 입을 때마다 살이 오른 아랫배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매번 다이어트를 결심하지만 그때뿐이다.

'살이 찌면 어떠랴, 몸무게가 더 늘지만 않으면 좋겠다'라는 초긍정의 마인드로 바뀌어 버린지는 오래되었지만 나의 제중은 하나님의 과제임에는 틀림없다.


인터내셔널 교회를 8년쯤 다닌 적이 있다. ICF라는 교회는 일요일에 딱 한번, 한 시간만 예배를 하고 자연스럽게 티타임을 하며 교제를 한다. 주중에는 학교의 대강당으로 사용했던 장소가 일요일 오전에만 예배당으로 바뀐다. 그곳엔 꽤나 많은 한국인들이 다닌 적이 있었다.

어느 해, 한국인 여자분들만 모임을 몇 번인가 했었다. 모임을 인도하신 분께서 이런 질문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당신이 가장 고민하는 것이나 감당하기 힘든 부분은 어떤 것이 있나요?"

중고학생을 둔 어느 분은 아이의 진로였고 어느 분은 까다로운 성격의 남편이었고 어느 분은 한국에 계신 연로하신 부모님이었고 어느 분은 아이들의 학교학비라고 진솔하게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마지막으로 나의 차례가 돌아오자 이렇게 말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저는 제 자신이 가장 힘들어요."

아이 셋을 키우는 엄마인 나는, 이 대답을 해 놓고는 스스로를 참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이 한참이나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나라는 존재가 가장 무거운 존재이다. 나에게 있어서 나만큼 소중한 존재는 없기에 나를 위한 고민을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도 스스로를 이기적인 존재로 생각했던 것이다.


나의 삶 중심엔 나보다는 늘 타인이 많은 자리를 차지했었다. 나를 위한 취미생활이나 계발을 위한 시간은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그러나 남을 위한 지나친 삶은 나 자신을 소진시켜 버리고 말았다. 나의 삶에서 내가 빠져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은 내 나이 사십이 넘어서였다. 20대 초반부터 목표지향적인 삶을 추구하며 시간에 쫓기며 살았을 때는 그것을 몰랐다. 물론 그때는 젊었기에 그 삶이 가능했었는지도 모르겠으나 한국이 아닌 케냐에서 서서히 나의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에게 있어서 나라는 존재는 계속적으로 화두다. 아직도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존재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가벼운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니 삶이 한결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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