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나면 상대방으로부터 환영의 말이나 긍정의 말을 듣고 싶어 한다. 비교적으로충고, 권면, 조언 같은말이 잘 받아들여지는곳은 교회다. 설교자와강연자가 유머를 섞어가면서 말을 하기 때문에 청중이 기분 나쁘지 않게경청을 한다.
지난해에는 소통의 강연자인 김창옥 TV를 보면서 여러모로 공감이 되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유튜브에 짤로 뜬 법률스님의 즉문즉설과 황창연 신부님께서 코미디언처럼 노인들에게 조언을 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배를 잡고 웃을 지경이다. 요즘에는 다시 시작한 개그콘서트에서 '소통왕 말자 할머니'이인 김영희 씨가 큰 목소리로 질문자에게 호통을 치는 모습이 유쾌하기까지 하다. 내가 재미를 느끼는것은당사자가 아닌제삼자여서 그럴 것이고강연자하고 개인적으로 전혀 상관없는사람이라서일거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서 부정적인 말보다는사랑과 인정, 칭찬과공감이라는 긍정적인 말을선호한다.
충고 또는 조언은 새겨들으면 나를 성장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몇 가지의 일화들이 있다. 상대방의 자존심을 깎아내리는 말은 도움이 안 되지만 젠틀하지만 말속에 뼈가 있는 말에, 나는 귀를 더 잘 기울이는 것 같다.
97년 M선교회의 서울지구에서 전임간사를시작했다. 서울지구에 속해 있던 수원지부가 98년 10월에독립을하면서나는, 수원 지구에책임간사가되었다.선교회는다양한사역을 하지만무엇보다도캠퍼스 사역에 초점을두고 있다. 수원지구의첫이사회를 구성하면서 30십대의선배들을동참시켰다. 그들 중에는 대학모임 때부터 함께 활동한 사람들이 있었다. 대부분이 선교회를 잘 이해하는 사람들로이루어지다 보니한 달에 한번 있는 이사회의 만을 신경 썼다. 하루에 4시간 이상을 잠을 잔적이 없을 정도로선교회에 혼 심을 다해 일하는나로서는이사회멤버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L이사가아파서 병원에 입원을 했었나 보다. 그녀는 나보다 나이가 5살이나 많았고 두 아이의 엄마였기 때문에 어른이라고 생각을했다. 그러나 L은 나의 돌봄이 필요했었는지 한 이사 부인인 K에게 서운함을 표현했더랬다. K가 어느 날은 지나가듯이 나에게 L의 서운한 맘을 비취었다. 무거운 것으로 머리 한대를 얻어맞은 것처럼 띵했다. 하지만 누구든 관심을 받고 위로를 받고 싶은것은당연한 게다.그때부터 어른 이사까지 나의 관리 대상이 되었다. 그 이후에 또다시 L이 춘천 한림대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나는 포도 한 상자를 고속버스에 싣고 L의 병실을찾아갔다. 병실에 누워있던 L이 환한미소로나를 맞이했다.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서버스로 3시간 이상을 달려갔던나는, 정작 그 밤에 잘 곳이 없어서 밤새 철야기도를 한다는 교회를찾아갔다. 몸에 걸치고 갔던 망토를 덮어쓰고 기도하다가 자다가 하면서 비몽사몽으로 새벽기도에 참석하고는첫차로수원으로 왔던 기억이 난다. 그열심은수원에서 사역하는 5년 내내 계속되었으니나라는 존재는단연코 존경을받는 사람이 되었고이사회는연합이잘되어서전국이사회에모델이 되었다. K가 스쳐 지나가듯 말한 한마디를 새겨듣게 된것은 나를 한 단계성장시켰다.
두 번째의 말을 가슴에 새기게 된 일이 있다. M 선교회는 학원복음화협회에 가입된 초교파학생단체다. 선교한국은이곳에 속한 단체들과 연합으로2년에 한번씩선교콘퍼런스를한다. 2023년 지난해 여름에는 한동대학에서 선교한국 행사가 있었다.
선교회에서 제자훈련을 받는 학생들은주중에도 훈련프로그램이 많다. 1주일에 한 번은 짝모임이나 소그룹 성경공부를하고 리더들은 디모데훈련학교(TTS)라는 훈련을 받는다. 90년대와 2000년 초에는 훈련 코스가 2년이었다. 가장 큰 사역은 여름 방학에 있는 전국수련회이고 12월엔각지구별로겨울수련회가 있다. 또한 1.2학기개강 전에 리더수련회가있을뿐만 아니라 중간중간에 많은 행사들이 있다 보니 리더들은 공부와 선교회 활동을 병행해야 한다.
아주대 99학번 J는 경영학을 공부하는 강원도 춘천이 고향인 학생이었다. 선교회의 많은 훈련프로그램에는 늘 그가 있었다. 8월에리더수련회를 가는 도중에 J가 툴툴거리면서 말한 적이 있다.
“간사님, 우리 너무 피곤해요."
나는 20살인 그의 불평이 이해가 안 되었다. 그가 연달 아서 투덜거렸다.
"간사님은 리더니깐 지치지 않는 거예요.”
그말이 '함께 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좀 생각해 주세요.'라고 들렸다. 한 마디로 배려해 달라는 것이다. 그때 이후로 지체들에게쓴소릴 거의 안 했다.
이듬해에는인도로 미션트립을갔다. YM단체의남자간사님이 나에게조용하게 말을 걸어왔다.
"간사님은 사역을 인격으로 하시는군요."
그 말이 무능력하다고 들릴 수도 있었겠으나 권위적이거나 강압적이지 않은 나의 모습을 그가 읽은 것이다. 그의말이 나에게 오래도록 위로가 되었다.
2년 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아주대 99학번이었던 J를 만났다. 그는 김포의 한 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 20전, 나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냐고 웃으면서 물었더니 역시나 그는 기억을 못한다. 한 학생의 말을 귀담아들음으로남을배려하는 사역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지난해엔한 지인의아픔에 내가 깊이 빠져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알아챈 L이 걱정스럽게 말을 건넸다.
"너무 걱정 마세요. 그는 잘살고 있어요.저는당신이 더 걱정 돼요."
L이 지나가듯 말한 그 한마디가 무거웠던 마음을 홀가분하게 해주었다.그에 대한 염려는기도로 승화시키니 한결 평화롭다.
알아채지 못한 것을 누군가가 옆에서 이야기해 준다는 것은어쩜 나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