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라는 감정
새해를 앞두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계획’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무엇을 더 잘 해낼 것 인지, 어떤 걸 하고 싶은지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어떤 걸 해야만 하는지.
또 이미 지나간 시간을 다그쳐가며 나를 쉴 새 없이 두드리곤 했다.
그래서 결국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 또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나 자신에게 되묻고 심판을 내리곤 했다.
그러나 올해는 아무래도 이전만큼 나에게 매서운 채찍을 들지 않게 되었다.
아마도 출산을 앞두고 있어서일까? 하루를 대하는 기준이 조금은 느슨해졌다.
얼마나 많은 것을 해냈는지 평가했던 하루가 지금은 얼마나 무사히 지나갔는지로 변했다.
별일 없는 하루가 생각보다 많은 조건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몸이 먼저 알려주곤 한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피로 앞에서 멈출 줄 알게 되었다.
검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갔다는 것. 검진 결과가 만족스럽다는 것.
특별히 무엇을 해낸 것도, 이뤄낸 것도 없었다.
사실 먹고 자고 노는 데만 열심히 시간을 버려댔건만, 그 게으름이 이전과는 다르게 다가온다.
‘감사’라는 감정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기쁘거나 운이 좋을 때나 따라오는 관형어처럼 느껴졌다.
감사하다는 감정이 마음먹는다고 생기는 감정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예전에 마음이 제멋대로 꼬였던 때에는 그 표현이 조금은 재수 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의 나는 ‘감사’라는 단어가 다시 새롭게 느껴진다.
나의 ‘감사’는 무엇인가를 얻어서가 아니라 잃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시작된다.
올해는 처음으로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는 마음이 크진 않다.
이미 주어졌던 것들을 알아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반복되는 하루와 (이제 얼마 남지 않은)평화,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들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아야겠다.
크게 흔들리지 않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많은 조심스러움과 누군가의 간절한 바람 위에 놓여있는지 잊지 않으면서.
새해를 맞으며 거창한 다짐은 적지 않으려 한다.
감사라는 감정을 하루의 밑바닥에 조용히 깔아 두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여전히 태어날 아이에게 과연 내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지 아직도 의문이지만,
그래도 최대한 감사할 일을 찾아 노력해 봐야겠다.
무엇을 더 가지려 하기보다, 곁에 있는 것을 지키면서 거창하지 않은 하루를 소중히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