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Collage 14화

절대 사지 말았어야 할 물건

by HONG

나는 웬만한 물건을 사도 크게 후회하지 않는 편이다.

새로 나온 제품을 사는 것도 좋아하고, 일상의 소소한 불편함을 아이디어 제품으로 효율을 챙기는 걸 선호하는 타입이다. 나의 휴대폰 메모장엔 ‘사고 싶은 물건’과 ‘사야 하는 물건’이 종류별로 저장되어 있다.

그래서 이번 주제인 '절대 사지 말았어야 할 물건‘을 떠올리는 게 어렵게 느껴졌다.

적어도 내가 산 물건 중에서는.


어느 날, VR기기를 선물 받았다.

워낙 게임과 전자기기를 좋아했던 탓일까, 또 흔히 선물로 받는 물건이 아니었어서 엄청 만족스러웠었다.

아직 AI가 대중에게 보편화되기 전, 모두가 말하는 미래 산업의 한 자리를 차지했던 가상현실의 대표주자가 내 손에 쥐어지다니 마음이 설렜다.

한껏 부풀어 오른 마음으로 기기를 쓰고 전원을 켜는 순간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공간은 넓어졌고 내가 있던 거실은 사라졌다. 눈앞에 화면이 펼쳐졌고, 가상현실 속 엘리베이터를 타자 정말로 몸이 상승하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어떤 건물의 옥상에서 위태로운 바람 소리를 들으며 나는 어렵지 않게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평생을 중력에 적응해 오며 살아온 탓일까.

땅으로 곤두박질쳐질 것 만 같은 기분에 오래 비행하지 못하고 근처 건물 옥상에 착지하자마자,

서서히 문제가 시작되었다.

가상현실에서 고개를 돌릴 때마다 나의 인식과 화면사이에 아주 얇은 틈이 생기는 기분이 들었다.

눈은 분명 움직이고 있는데 몸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내가 어디 서있는 거지?’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다. 울렁거리는 기분에 주저앉아 VR헤드셋을 벗었다.

벗고 나서도 뒤집어질 것 같은 속과 지끈대는 머리는 좋아지는 기미가 없었다.

그대로 침대로 달려들어 내리 열몇 시간을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한참을 누워있다 인정하기 싫었던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 이거 3D멀미구나. “


고가의 선물을 받은 최소한의 예의랄까... 뭔가 이 최신문물의 본전정도는 뽑아내고 싶달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게임을 열심히 찾아보다 문득 예전에 VR체험 때 재밌게 했었던 ‘비트세이버’라는 리듬 게임이 떠올랐다.

그나마 이 리듬 게임은 정면에 날아오는 물체만 자르면 되는 게임이라 멀미가 조금 덜해서 결국 그 게임만 주구장창 하곤 했다.


그 이후로 VR기기는 집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언젠간 다시 써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조금 적응하면 괜찮아질 것 같아서 미련이 남아 쉽게 정리하지 못했다.

마치 새것과 같은 상태 그대로 전시되어 있는 기계를 바라보다 가끔 다시 뒤집어쓰곤 했지만

내가 체험할 수 있는 ‘미래’는 아주 잠깐씩만 허락되곤 했다.


결국 이 물건은 내가 익숙해질 대상이 아니라 포기해야 할 대상이라는 걸 3년이 지나고서야 깨달았다.

중고장터에 글을 올렸다. 기계의 좋은 상태를 어필하기 위한 나의 상황도 구구절절 적어댔다.

‘상태 최상급. 3D멀미가 심해 몇 번 착용을 못했습니다.’

글을 올린 당일 날 바로 구매자가 나타났다.

오래되었지만 새것 같았던 나의 VR기기를 보내며 아쉬운 기분은커녕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다.

언젠간 3D멀미가 좋아지거나 혹은 증상을 완화시켜 줄 약이 개발되지 않는 이상

아마 앞으로도 VR이나 가상현실 게임을 할 일은 아마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구매한 것은 아니지만 ‘절대 사지 말았어야 할 물건’이라는 주제에 내게 이만큼 잘 어울리는 물건도 없을 것이다.


내 몸이 따라주지 못했던 미래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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