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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아름 May 24. 2023

존재의 이유

아침햇살에 빼곡히 고개를 내민 장미가 한 마디하다

낯설었던 이 지역에 온 지도 벌써 3년이 되었고, 시간이 놀랍도록 무섭다. 

오랜만에 만난 주치의가 그런다. 그와는 벌써 8년째이니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의 기억 차트에는 잘 기록되어 있을 테다.      


“계속 거기에 있을 거예요? 설마 평생 거기 있지는 않을 거죠?”

“아니요. 설마요. 돌아가야죠”

“꽤 오래되었잖아요. 거기에 계신지가?”

..........     

직장 때문에 병원을 자주 가지 못하는 것을 아는 그는 자신의 제자나 후배들이 하는 병원을 인근에서 소개해주기도 하고, 직접 진료를 해야 할 때면 시간을 쪼개서라도 예약을 해주는 고마운 주치의다. 도시나 시골이나 살기는 매 한 가지인데 겪어야 하는 사람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니 대도시나 고향을 편안해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서둘러 병원을 다녀온 나는 왕복 7시간 운전에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아침 5시 반쯤 눈을 떠 천근만근 같은 몸을 끌고 마당에 나가본다. 햇살이 쨍하고 찬란히 떠오른다.

정신이 번쩍 들면서 가슴이 뻥 뚫리는 것만 같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아름답고 따뜻하고 눈부시다.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 그 자체다. 아무리 창조주라 해도 어떻게 저런 빛과 색감, 강도, 가슴속에 스며드는 부드러움... 이 모든 것들을 저리 창조할 수 있나? 실로 그 실력에 탄복하고 감탄한다. 그 아름다움에 심장이 멈출 것만 같다. 물감으로도 사진으로도 그 아름다움은 완벽하게 담아낼 수가 없다.    


영혼 깊이까지 관통하는 이 아침 햇살을 나는 진실로 사랑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깊은 감사의 고백을 드린다.       


한창 아침햇살을 즐기는 가운데 내 집 앞을 가리고 있는 낡은 건물 사이로 긴가 민가 싶게 빨간 장미가 보인다.

‘아이고... 저게 그 장미인가?’ 냉큼 밖으로 나가본다.



집 마당에서 앞집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장미 한 송이다. 뭉클했다. 



‘아이고... 어떻게 살아냈네... 그 좁디좁은 곳에서 누가 돌봐주지도 않는데.... 기특도 하다’


혼자 꽃을 피워내고야 말았다. 앞집 길 앞에 심어진 장미다. 보도블록으로 막아져 살 공간이 없어 뿌리만 간신히 내리고 사는 장미다. 키만 멀대같이 커서 밖으로 삐져나오지 말라고 철사로 꽁꽁 동여매었던 그 장미다. 거름이라도 주고 싶어도 땅에 스민곳이 없어 오며 가며 안타깝게 바라보았던 그 장미다.      

식물학을 하는 이들의 해석과 별개로 인간의 관점에서 나는 이렇게 번역하고 싶다.      



"바람이 불건 눈보라가 치건 나를 철사로 동여매든 난 내가 장미라는 걸 잊지 않았어요
...............
겨울이면 눈이불을 덮고 잤고, 비가 오면 빗 속에 녹여진 양분을 먹으며 견뎠어요. 내가 자리 잡은  이 땅은 초라하고 온통 시멘트블록이 나를 에워싸고 있지요. 그래서 저는 땅속 깊이 더 힘을 내어 들어갔죠. 안전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옆으로 뻗어가며 더 단단히 자리를 잡았지요. 제 몸을 아무리 묶어두어도 인간은 저의 뿌리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드는 저의 간절함을 묶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저는 살아있어요.... 사람들은 어리석어요. 몸이 메이고 환경이 매이면 거기서 주저앉아요. 그렇지 않아요. 창조주가 인간을 만물을 얼마나 무한하게 창조하셨는걸요. 길을 막으면 날아오르면 되잖아요. 바닷길, 땅길을 막으면 하늘로 날죠... 제가 계속 위로만 자라듯이요. 이것이 제가 살아낸 방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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