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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아름 Aug 22. 2023

For the Birds에 대한 소회

그저 달랐을 뿐! 다름의 다른 이름은 '함께'랍니다.

<For the Birds>라는 Pixar의 단편 애니메이션에는 크고 멍청한 새라고 불리는 a large dopey bird가 등장한다. 전신주 위에 홀로 앉아있는  Dopey는 같은 파랑새임에도 등치가 크고 다리도 길다. 눈은 흰자가 훤히 보일만큼 크고, 오렌지색 부리는 두텁다. 언제나 미소를 머금은 Dopey는 작은 새들을 모여 앉은 전선에 함께 있고 싶어 한다.


수십 마리 작은 새들의 하중을 견딜 수 있는 전선이지만 Dopey가 앉자마자 전선이 늘어난다. 작은 새들은 생김새가 다른 Dopey가 못내 못마땅하다. 생긴 것도 목소리도 이상하다. 천진난만하게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Dopey이지만, 이 작은 아이들은 그런 Dopey가 그저 못마땅하기만 하다.


공간이 좁아 전선에 발이 걸려 땅에 떨어질 위기에 빠진 Dopey!

새이니 날면 되건만 영화이니 전선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작은 새들은 공모하여 그런 Dopey의 발을 쪼아 Dopey를 그들 무리에서 떼어놓는 데 성공한다.

For the birds, PIXAR film중에서 hand-drawing,청신

그러나, 아뿔싸!

Dopey는 떨어져 나갔지만 도피의 빈자리로 인해 전선줄이 튕겨나가다 새들의 털이 모두 빠져버린다. 알몸이 되어버린 새들. 부끄러움을 옷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찰나에 Dopey는 나뭇잎 하나를 건네보며 익살스럽게 웃는다.


큰 등치의 Dopey, 먼저 웃으며 살갑게 다가서지만 Dopey의 낯선 생김새와 어설픈 목소리는 작은 새 무리가 받아들이기에는 그리도 이질적이었나 보다.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참 사랑스럽고 그저 순진무구해 보이는 존재인데 말이다.

하나의 목적만 생각하다 보면 항상 사고가 생긴다. Dopey를 떼놓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들은 털이 없는 고통을 한동안 겪어야 한다. 또한 그토록 미운 Dopey에게 수치스러운 모습도 보여야 했으니 과연 이 작은 새들은 누구를 위해 그리도 미운짓을 하며 Dopey를 왕따 시켰나 싶다.


결국, 미움은 또 다른 화살이 되어 고통으로 꽂히는 법이라는 것을 이들은 뒤늦게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다름'이라는 것이 미움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다름의 차이를 인정할 때 비로소 기쁨이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해 질 녘 갈대밭에 앉아 해맑게 웃는 Dopey의 모습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겉 모양새는 볼품이 없다 하여도, 물론 그 작은 새들의 입장에서 말이다. Dopey는 다름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인정할 줄 아는 마음 따뜻한 새가 분명하다.  


세월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라 했다. 세월은 다름의 차이를 받아들이게 하고, 그 다름은 또 다른 형상을 빚어내며 삶의 지경을 넓히고 이해의 폭을 깊게 한다.


다름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다면,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인생 모두가 웃으며 살 수 있지 않을까? 해가 지는 이 시간, 그런 소박한 세상을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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