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휴식
모처럼 서울이다. 가양대교를 늘어뜨린 한강이 시원하게 보이는 그리웠던 서울이다.
24년엔 서울로 돌아가야지 하면서도 막연한 생각일 뿐 가지 않으면 안 될 만큼의 간절함은 아직은 없다.
재깍재깍 시계에 맞춰 전철 속 매미처럼 살아갈 땐 몰랐었는데 떠나고 보니 그리워진다.
생각해 보면 이 공간 자체가 그리운 것이 아니라 지난 것에 대한, 그리고 현재의 부족함이 그리움으로 갈구함으로 나타나는 것일 테다.
다리 위를 따닥따닥 붙어 달리는 차들이 전선 위의 새만 같다. 한 곳을 응시하며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새들처럼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울 하늘 어디론가 모두들 무리 지어 이동한다. 삶이라는 반주에 맞춰 씽씽도 달린다. 그래도 여전히 다리 위다. 인생도 그럴까? 제 아무리 열심히 달린다 해도 땅바닥을 벗어날 수 없고, 인간이라는 존재를 벗어버릴 수가 없다.
땅바닥에 딱 붙어사니 더욱 하늘이 커 보이고, 하늘로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려 하지만 여전히 채워지지가 않는다. 그러면 무슨 조화인가?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한 빈자리가 있다. 사는 동안 100이라는 것이 채워질 수 있을까? 완전히 비워야 저절로 채워지는 것일까?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 거리를 걸었다. 밤공기가 제법 신선하고 시원하다. 세상은 사랑으로 창조된 사랑의 산물이다. 그런데 왜 인생들은 사랑을 그렇게도 찾아다니고 갈망하는 것일까? 인간 자체가 사랑덩이인데 말이다. 그것이 참 역설적이다. 사랑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사랑을 찾아 헤맨다. 때론 사랑하는 자가 옆에 있어도 그 공허한 빈자리를 느끼며 인생은 영원한 사랑을 희구한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듯, 눈에 보이는 사랑만이 아니라 영혼의 울림이 있는 그런 영혼의 사랑을 해야 비로소 공허함이 잦아들려나보다.
그래도 인생이라는 존재가 육신이 있기에 100% 완전한 사랑을 매 순간 느끼며 이루어갈 수는 없지 않나 생각해 본다. 그럼에도 사랑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인간이기에, 사랑의 특권을 가진 인간으로서 그 사랑을 충만히 느끼고 받기를 바라본다.
그런 생각으로 서울의 밤을 채우며 모처럼 휴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