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의 '미깔스러운' 횡포에도 태양처럼 빛나는 세입자의 삶
경북 봉화에서 만난 한 홀몸노인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연고 없이 홀로 산 지 오랜 세월이라 혈육이라며 찾아오는 이도 찾아갈 곳도 딱히 없다. 그렇지만 그녀의 집엔 언제나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성품이 고와서인지 비록 피붙이 하나 없어도 그녀의 곁엔 늘 그녀를 살펴주는 이들이 많다.
하루는 선물로 받았다며 많지도 않은 사탕인데 나눠 주더라는 것이다. 함박웃음을 머금은 채 '사탕 먹니껴(먹으렵니까?)'하셨단다.
그저 방에 굴러다니는 알사탕이 아닌 그녀에겐 아마도 특별한 사탕이었는지도 모른다. 바로 그녀에게 세를 준 집주인이 준 사탕이더란다. 집주인은 그녀의 텃밭에 각종 채소를 키우기 위해 그녀의 집을 밤낮으로 무시로 수시로 드나들었다. 키운 채소는 단 한 번도 그녀와도 이웃과도 나눈 적은 없었다. 세를 주고도 집주인은 그녀의 집을 자신의 집처럼 여겼다.
세 들어 사는 그녀는 땅 한 평조차 얻지 못해 비료포대에 흙을 가득 채우고 빗물을 알뜰히 모아 그녀의 농사를 지었다. 파 몇 대, 생강 몇 알, 콩 서너 대, 가지 한두 개, 고추 한두 대, 그리고 열무 몇 알. 이것이 그녀의 유일한 농작물이었다. 물세라도 아껴보려 그녀는 비가 오면 큰 고무통에 물을 받고 해가 떠서 물이 말라버릴까 봐 단단히 뚜껑을 씌워 물을 아껴 썼다.
그런 그녀의 수돗물을 집주인은 마음껏 쓰며 자식들까지 데리고 와 김장 배추를 절이고 씻고, 시래기까지 알뜰하게 삶아갔다. 지난 10년간 말이다. 오갈 곳 없는 그녀는 집주인에게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오롯이 수도세까지 감당하며 그리 살았던 것이다.
노인의 유일한 텃밭, 비료포대 그녀의 유일한 텃밭은 햇빛에 바래고 찢기어진 비료포대 몇 개이다. 아침 저녁으로 모아둔 빗물을 주며 정성스럽게 키운다. 그녀의 낙이자 기쁨이기도 하다. 그녀는 채소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주변에 나누어 줄 사랑을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 다아름
땅 한 평 쓰게 해 달라 통사정을 해도 세를 올려줘야 한다며 집주인은 야멸차게 그녀의 텃밭을 남김없이 쓴다. 빼곡하게 심은 채소들로 인해 그녀가 다닐만한 길조차 없어 제발 발 디딜 공간이라도 달라며 애원을 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광경이다. 집주인은 방 세 칸만 세를 주었으니 마당과 텃밭은 집주인에게 사용 권한이 있다며 마음대로 쓸 권한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집주인은 그녀의 창고까지 점령하여 온갖 짐을 쌓아놓았다.
사과의 주산지인 봉화군도 초고령화가 되면서 더 이상 사과 농사를 짓지 않는 농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몇천 평이 되는 과수원도 1년에 단돈 50만 원이면 빌려 농사지을 수 있는 땅들도 수두룩하다. 열 평도 채 안 되는 그 손바닥만 한 텃밭이 건물의 부속물임에도 집주인은 자신만의 억지와 논리로 그 텃밭을 10년 동안 일구며 파뿌리 하나까지도 모조리 가져갔다. 감자 한 알조차도 나누지 않았던 집주인이 10년 만에 처음으로 물세라며 돈 만 원과 사탕 한 봉지를 가져온 것이다.
집주인은 그녀를 돌보기 위해 매일 집을 드나드는 것이라고 현란한 말로 이웃들에게 말하지만 수십 년간 그런 집주인을 지켜본 마을 사람들은 그를 믿지 않는 것 같았다. 땅이 없는 것도 아닌데 넓디넓은 땅을 두고도 약자의 텃밭을 빼앗아 쓰는 소위 이 지역 말로 '야마리(얌체) 후딱 까진 그리고 미깔시러운(밉살맞은)' 행동이라는 것이다.
가난한 노인, 그녀는 그런 집주인에 대해 왜 사탕을 사 왔는지 돈을 왜 주고 갔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다만, 그녀가 얻은 사탕 한 봉지를 누구와 나눌 수 있을지만 생각하는 듯했다. 몇 알 되지도 않는 사탕을 하나씩 나누어 주는 그녀의 속마음을 누가 알 수 있겠는가마는 세월의 온갖 풍파를 겪은 그녀가 집주인의 속내를 정녕코 모를 리는 없었으리라.
하나, 둘, 셋! 숨을 들이쉬면 곧 해가 뚝 떨어질 것 같은 인생의 시기에 이른 그녀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때로는 집 천장에서 물이 새고 바닥이 물이 고여 고쳐달라 해도 세를 올려줘야 고쳐준다며 끝끝내 외면당했다.
장판에 물이 고이니 젓가락으로 장판 한 귀퉁이를 지탱해서 물이 한쪽으로 흐르게 하고 나머지 마른 장판 위에서 잠을 청하며 살았다. 그런 그녀의 궁핍과 곤란을 안 군청에서 그녀의 집을 보수해주고 추위에 몸 상하지 않게 단열재를 넣어주고 창문도 바꿔 끼워주며 바지런히 살펴주었다.
비가 줄줄 새는 집이 보수되고 냉골이었던 집에 온기가 도니 매일같이 그녀의 집을 드나들며 나날이 모양새를 갖추어가는 것을 집주인은 매일같이 관찰한다. 하루는 그런 그녀를 쫓아내고 집주인이 들어와 살겠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텃밭도 창고도 빼앗아 쓰고 수돗물까지 공짜로 10년간 쓰던 집주인은 결국 그녀를 쫓아낼 생각까지 한 모양이다. 다행히도 약하고 힘없는 그녀를 쫓아내지는 않았지만, 마을 어르신들은 분노했다. '그러기만 해봐라. 군에서 그 쓰러져가는 집을 어떻게 보수하고 얼마나 많은 돈을 들여 집같이 만들어놨는데 할매를 쫓가낸다고?' 모두들 그런 심사였던 것 같다.
그런 집주인이 가져온 사탕 한 봉지, 그녀는 그저 아무 말 없이 장에 조려진 꽈리고추처럼 쭈글쭈글한 그 작은 손으로 수줍게 사탕을 건넨다.
잠시간의 호흡만이 그녀에게 남아있다. 그녀는 평생 눈앞에 황금을 가져다 놓아도 1도 손을 대지 않고 관심도 없다는 것이 어르신들의 이야기다. 그러하기에 그녀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그녀는 참으로 풍요롭고 아름다운 인생을 산 듯하다. 비록 가진 게 없을지라도 땅 한 평 없어 낡고 헤어진 비료포대에 각종 채소를 지어 먹어도 그녀는 그것마저도 나눈다.
생강 한쪽을 심었는데 세 쪽이나 수확했다며 빛바랜 신문지에 돌돌 말아 어르신들과 나눈다. 다들 그녀보다 살림살이는 넉넉하지만, 그녀는 그녀가 나눌 수 있는 것들을 아낌없이 계산 없이 내어주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수천 평 농사를 지어도 상추 한 잎 하나 나눌 줄 모르는 노년의 인생이 있는가 하면 주고 또 주어도 줄 게 없는가 이리저리 남루한 세간살이라도 뒤적이는 노년의 인생도 있다. 오갈 곳 없는 그녀라 하지만 그녀에게는 든든한 이웃과 그녀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간살이라곤 시집올 때 해온 듯한 묵직한 광목 담요 두 장과 전기장판 한 장, 네 칸짜리 서랍 하나, 그리고 낡아 지직거리는 구닥다리 텔레비전이 전부이지만 그녀의 삶은 정결했고 맑았다.
인생은 마라톤과 같아서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다고들 한다. 해가 구름 속에 갇히어도 태양은 태양의 일을 한다. 비록 경제적으로 궁핍해서 남의 집 문칸방 살이를 한다 해도 그녀의 삶은 태양처럼 빛나고 아름답다. 그런 그녀는 참으로 사랑받기에 합당하다. 마지막 호흡을 다 하는 그 순간까지 그녀가 평온하게 무탈하게 머물다 갈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덧붙이는 글 | 지금 이 순간 손에 움켜쥐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인생의 마지막 방점이 어떻게 찍혀야할지 생각이 깊어집니다. 방점은 마지막 순간에 찍어서 찍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삶이 곧 그 순간 방점으로 남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