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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보그춘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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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아름 Sep 23. 2023

40년 목욕탕주인이 말하는 최고의 추석선물

"부모가 나이 들면 가장 그리운 게 자식 사랑"

비가 온 뒤 기온이 훌쩍 내려가 봉화 춘양의 아침 기온은 16도다. 추석 대목을 앞두고 밤새 건조기에 고추를 말리느라 춘양면 일대에는 칼칼한 향기가 진동한다.


이미 홍로와 시나노스위트 출하를 마친 농가들은 10월에 출하할 시나노골드, 양광 등을 소독하고 손질하느라 바쁘다. 벼농사를 지은 농가들은 추석에 쓸 햅쌀을 도정하고 각종 콩과 나물들을 햇살에 바짝 말리느라 분주하다. 모두 대목 장에 내다 팔 물건이기도 하고, 자녀들이 명절에 오면 나눠줄 귀한 양식들이기도 하다.


명절이 다가오면 꼭 빠지지 않고 가는 곳이 있으니 곧 목욕탕이다. 한국에 대중목욕탕이 생긴 것은 1900년대 전후 대한제국시절인데 6.25 이후 본격적으로 목욕탕이 설립되었다. 특히, 1970년 이후에는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목욕탕 건립과 이용이 장려되어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터 근처에 목욕탕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침 5시에 문 여는 서울목욕탕

서울목욕탕 이름이 왜 '서울목욕탕'이냐고 물으니, 목욕탕이 들어서기 전 가게 이름이 '서울식당, 서울여관'이어서 '서울목욕탕'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 다아름


춘양면에는 '서울목욕탕'이 있다. 유일무이한 목욕탕으로 40년째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목욕탕도 당시 소도읍 가꾸기 운동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5일장이 서는 억지춘양시장과 강릉, 동해, 태백 등 각지에서 오는 상인과 손님들이 이용하는 춘양역 사이, 즉 목이 아주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서울목욕탕 역시 장날이 문전성시였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명절 대목에는 하루 800명 정도의 손님을 맞이했다.  

요금표 40년 전 요금은 800원이었다. 물가가 오른 지금도 여전히 6천 원이다. ⓒ 다아름
오렌지색 수건, 1회용 면도기, 샴푸 등이 있다. 40년 동안 내부 구조는 변함이 없다. 이곳에서 인생이 익어가고 춘양을 오가는 사람들을 맞이했다. ⓒ 다아름


서울목욕탕은 아침 5시에 문을 열어 저녁 8시면 문을 닫는다. 요금은 6천 원이다. 매주 수요일이 휴일이지만, 수요일이 장날인 경우에는 멀리서 오는 사람들을 위해 문을 연다. 그러나 그마저도 몇 달 전부터는 수요일이 장날이어도 문을 닫는다.


보일러가 얼어터졌던 지난겨울 나는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이 목욕탕을 드나들었다. 스무 평 남짓해 보이는 하늘색 작은 타일이 오밀조밀 붙어있는 작은 목욕탕으로 30명 정도 들어가면 꽉 찰 만한 아기자기한 곳이다. 어린 시절 엄마를 따라갔던 목욕탕의 딱 그 느낌이다.


▲ 목욕탕 내부 사진 30명 정도 들어가면 풀로 가득 찰 공간이다. 정중앙이 온탕이고, 작은 통로로 1평 남짓한 열탕이 연결되어 있다. 맨 우측이 냉탕이고 이곳에 작은 폭포안마기가 있다. 탕 주변으로 어르신들이 두런두런 앉아 이 얘기, 저 얘기 꽃을 피우신다. ⓒ 다아름


2~3평 정도의 온탕, 1평이 채 안 되어 두 명 정도 들어가면 가득 차는 열탕, 그리고 폭포수가 있는 1~2평가량의 냉탕까지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다. 지난겨울 드나들며 보니 목욕탕 이용 고정멤버가 있었다. 아침 5시 30분에 가도 7시에 가도 늘 보는 사람이 있었다.


왕단골 같아 보이시는 한 어르신은 아예 열탕에 쏙 들어가 화투를 펼쳐놓고 패를 맞추며 몸을 풀기도 하고, 다른 여인들은 집안 이야기, 농사이야기, 일상의 이야기들이 가득하여 작은 목욕탕은 금세 시끌벅적해진다.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그냥 귀에 들어오는 이야기들에 지역 소식을 금방 알 수 있게 된다.




목욕탕을  써야 보람이 있어요

유일무이한 춘양의 목욕탕을 지키며 춘양의 유일무이한 목욕탕을 지켜온 주인장이시다. 첫째도 청결, 둘째도 청결을 강조하시는 청결맨 사장님이시다. 이곳에서 들고나는 손님들의 표정을 읽으며, 어르신들이 환한 웃음으로 나가실 때가 마음이 가장 기쁘시다고 한다. ⓒ 다아름


참 작은 목욕탕, 지역사회이자 시골이기도 해서 목욕탕 관리가 잘 될까 하는 작은 염려도 있었지만 기우였다. 목욕탕에 들어서면 왼편에 잎이 윤기가 반질반질 나는 푸른 식물들이 얌전히 앉아 손님을 반겨준다.

긴 통로를 따라 양 벽면에 그림들이 걸려있고, 매표소가 나온다. 40년째 같은 구조를 가진 매표소에는 오렌지색 수건과 각종 면도기, 샴푸 등 1회 용품들이 있다. 언제나 밝은 미소로 손님을 맞아주는 주인장 내외분들의 인사는 덤이다.


"손님들이 목욕 다 하고 가면서 물 아껴 썼다고 해도 저는 그 말이 기쁘지가 않아요. 우리 목욕탕은 작아도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어요. 그러니까 저로서는 목욕탕을 충분히 활용할 것을 다 이용하고 가야 기분이 좋은 거거든요."


주인장 되시는 김진해 사장님 말씀이다.


- 어떻게 이용을 해야 기분이 좋으신데요?

"먼저 깨끗이 씻고 온탕에 들어가 충분히 몸을 이완시키고, 때도 밀고 냉탕, 열탕도 오가는 거죠. 그리고 작지만, 냉탕에 폭포 시설이 있으니까 등이나 허리에 폭포를 맞으면 정말 혈액순환도 되고 시원하거든요. 그리고 춘양은 물이 정말 좋아요. 그러니 낭비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충분히 씻고 즐기면서 쉬고 나왔다는 말을 들어야 저는 보람이거든요. 물 아껴 쓰는 것도 좋지만 목욕탕을 잘 써주는 게 저에게는 큰 보람이에요."


서울목욕탕은 목욕탕 관리가 정말 잘 된다. 작지만 시설이며 물이며 정말 깨끗하다.


- 앞으로도 요금 변경은 없을까요?

"없어요. 코로나로 물가가 많이 오르고 유지비도 많이 들지만 저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요. 제가 나고 자란 고향이잖아요. 어르신들이 얼굴이 꺼칠하고 행색이 초라한 모습으로 목욕탕에 들어오실 때가 있어요.


그런데 나갈 때 그분들 얼굴이 화사하게 훤하니 나가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어요. 그렇게라도 어르신들이 목욕탕에 오시는 게 저는 정말 기쁘거든요.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그 표정을 보면요.


저도 가끔은 쉬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그만하고 싶다가도 멀리서 버스 타고 지팡이 짚고 찾아오는 어르신들이 있는데... 그분들 생각하면 목욕탕 문을 닫을 수가 없어요. 그분들을 실망시켜 드릴 수가 없잖아요."


- 사장님께 목욕탕은 어떤 곳인가요?

"여기는 도시가 아니라서 목욕의 기능이 가장 중요한 곳이에요. 청결이 가장 중요해요.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린 시절부터 대중목욕탕 이용에 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봐요. 여러 사람이 같이 쓰기 때문에 항상 청결이 중요해요. 간혹 보면 샤워도 안 하고 탕에 풍덩풍덩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제가 계속 잔소리를 할 수도 없고요."


- 서울목욕탕만의 자랑이 있나요?

"저희 목욕탕은 아시다시피 정말 작아도 있을 것이 다 있어요. 내세울 게 청결밖에 없어서 제가 정말 열심히 관리하고 있어요. 깨끗한 것이 저희의 자랑이에요. 그러니 물 안 아껴서도 좋으니 마음껏 쉬어가면 좋겠어요."


- 슬기로운 목욕탕 사용법이 있을까요?

"첫째도 둘째도 청결이에요. 먼저 샤워하고 머리를 깨끗이 감은 후에 탕에 들어갑니다. 그런 다음 냉온탕은 취향껏 이용하시면 돼요. 요즘에는 집마다 욕조가 있어서 옛날만큼 목욕탕에 오지는 않지만 그래도 최소 주 2회 이상은 충분히 몸을 담글 수 있도록 목욕을 해야 해요. 그래야 혈액순환도 잘 되고 건강해지거든요."


김진해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오직 청결이다. 서울목욕탕을 방문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어찌 그리 식물을 잘 키우는지 한겨울에도 잎에 윤기가 잘잘 흐르는 것이 목욕탕을 들어가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이다.


그런 식물에 대해서도 김진해는 청결, 청결을 강조한다. 안주인 김양희 여사가 오래된 건물이니 식물이라도 잘 키우면 오시는 손님들 기분도 좋고 인테리어 효과도 있다면서 낸 아이디어라고 한다.




부모님 추석 선물, 다른  필요한가요


"명절 앞두고 타지에 나간 자녀들이 부모님 모시고 목욕탕에 올 때가 있어요. 보고 있으면 그렇게 뿌듯해요. 명절이라고 값나는 옷, 선물 그런 거 다 필요 없어요. 몇 천 원 돈 내고 같이 목욕 가서 등도 밀어주고 이야기도 하면서 마음을 나누는 것이 그게 최고 효도예요. 부모가 나이 들면 가장 그리운 게 자식 사랑이거든요. 행복은 작은 데 있는 것이지 큰 곳에 있지 않아요. 이번 명절에는 부모님 모시고 꼭 가까운 목욕탕 가서 시간을 보내면 참 좋겠어요!"


서울목욕탕을 매일 찾는 고정멤버는 40~50명으로 이들에게는 목욕탕이 사랑방이자 휴게공간이다. 지금도 버스를 타고 지팡이를 짚고 멀리서 찾아오는 어르신들이 많다. 이들을 위해서라도 사장님은 목욕탕을 계속 운영하실 생각이란다. 다만, 80대 이상의 어르신들이 많아 혹여라도 탕 안에서 쓰러지실까 봐 그게 늘 염려다.


고속도로 사정이나 방문할 곳이 많아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들이지만 올 추석에는 부모님과 가까운 목욕탕이라도 가서 함께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 '한가위만 같아라' 하던 어르신들 말씀대로 풍성한 명절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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