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란 가까이 있을 때는 빈자리를 모르다가 없을 때 비로소 공허함의 무게를 실감한다. 모두가 아는 말이면서도 그러한 무게를 삼킨다는 것이 언제나 쉽지만은 않다. 때로는 어쩔 수 없이 그 무게를 캐리해야 하고, 때로는 그 무게를 그저 흡수해야만 하며 또 때로는 외면도 해야 할 때가 있다.
공허함의 무게가 언제나 무거운 것만은 아니다. 연중 일기예보를 보면 평균 320일가량이 흐림, 비 또는 눈이다. 믿기 힘들지만 사실이다. 종일 쨍해서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날은 한 달도 채 안된다. 그럼에도 우린 항상 날씨가 좋다는 착각 속에 살아간다. 장마철 같은 우울한 때를 제외하면 말이다.
언제고 기상청에 들어가 30년 치 일기를 들여다본 적이 있다. 내가 느꼈던 날씨의 기분보다 하늘의 일기는 변화무쌍했고 생각보다 맑음이 아니었다. 인생은 그렇다. 생각하기 따라 거센 폭풍과 비도 낭만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고, 마르고 푸른 하늘에도 날벼락을 맞은 듯 세상이 암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결국, 매일의 날씨보다도 감정의 일기 속에 우리는 웃고 운다.
이틀 전 밤, 와인 한 병을 깔끔하게 비우고 기분 좋게 잠이 들고, 다음날 두통에 두세 시간 시달리긴 했지만 선선한 바람과 투명한 햇살, 하얀 구름과 푸른 하늘에 마음이 녹아 그 숙취마저도 이른 아침 빈 속에 마시는 블랙커피처럼 묵직한 상쾌함이 있었다. 날씨가 미치도록 좋아서도 있지만, ‘심기 맑음’도 한 이유이다.
나의 빈자리가 주는 무게가 쓸쓸했던지 티는 내지않아도 목소리가 잠겨있는 그를 위해 몇 글자를 보냈다. 9시가 넘은 늦은 아침,삼페인으로 시작한다.스피커 밑에 자리를 잡고 경쾌한 재즈팝을 들으며 마시는 11도의 샴페인도 나름 낭만적이다. 신선한 바람과 푸른 하늘, 가슴을 설레게 할 눈부신 햇살은 세상 모든 것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게 한다. 가슴이 벅차다. 햇살에 바람에 나는 취했다. 샴페인에 취한 것은 아니고 말이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도 기다리는 것도 가슴을 아리게 하기보다 그저 물을 흡수하는 양털처럼 받아들이면 된다. 기다림과 그리움은 늘 나의 삶 가운데 고정승객이었다. 단골인 기다림을 일부러 팔 벌려 기다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프지 않게 동행하는 법을 인생가운데 배워왔다. 이젠 그 기다림을 끝내려고 하지만, 인생에는 언제나 죽는 날까지 기다림은 떠나지 않는 단골손님이라는 것도 잘 안다. 아리면 아린대로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억지로 해석하거나 외면하려 하지도 않는다.
함께 있어도 그리운 사람이 있고, 멀리 있어도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 함께 있을 때조차도 그리운 그이지만, 멀리 있을 때는 오히려 더 가까이 느껴지기도 한다. 보이지 않으니 눈을 감으면 금세 보인다. 믿음의 눈으로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면 보이고 공허함은 사라진다. 같은 생각, 같은 마음. 지금 이 순간도 살아 존재하고 있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그의 심기가 마음이 쓰여 몇 마디 메시지를 보낸 나에게 대뜸 이리 말한다.
아침부터 웬 술주정을 그렇게 하지?
세상 낭만적인 그임에도 표현이 서툰 그는 애써 나를 술주정뱅이로 만들었다.
그래도 그를 웃게 했다. 족하다.
“마음의 기지개를 켜어 봐. 무지개처럼 때가 되면 나타나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하잖아. 생각의 손을 뻗어보면 내가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