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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아름 Sep 30. 2023

겪어봐야만 이해되는 것들

여행 중이다

고등학교 단짝이었던 윤희는 특급호텔에서 근무하며 일찌감치 관광산업에 발을 들여서인지 자주 떠났다. 벌써 25년도 훨씬 더 지났다. 푸켓이나 발리를 밥먹듯이 매달 다니던 그녀의 여행을 이제서야 조금 알 것 같다.


2년제 호텔경영대학을 갔던 윤희는 여고 시절, 공부에는 아예 담을 쌓았지만 독서는 멈춤이 없었다. 내가 어깨 무겁게 가방을 메고 다닐 때, 그녀는 긴 머리를 휘날리며 그날그날 읽을 책 한 권을 폼나게 들고 다녔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막막했던 내게 윤희의 매월 발리행은 호사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의 마음이 그것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직장에 몸이 매였던 윤희는 2박 3일씩 쪼개어 자주 여행을 갔다. 가서 무엇을 했냐고 물으면 대답은 늘 동일했다.


아름다운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푹 자고, 맛있는 커피 마시며 읽고 싶은 책 한 권 읽고 왔지. 다른 게 있어?




우리 나이 스물둘에 할 대답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윤희는 언제나 그랬다. 학창 시절에도 늘 칠판대신 저 먼 곳을 응시했고, 사회생활을 할 때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듯했다. 청초한 이미연의 외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보이쉬한 매력을  가진 그녀는 정작 자신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지금도 그녀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아침 6시가 되면 교실문을 확 열고 큰 소리로 들어온다.

한 손에는 우유를, 다른 한 손에는 커피를.


“아 속 쓰려. 피곤해! “


기다렸다는 듯, 짝지인 우리는 능숙하게 커피와 우유를 혼합해서 한큐에 들이마시고 책상에 앉는다. 나는 책을 펴고, 그녀는 그대로 엎드려 숙면에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차피 잘 거면서 왜 커피를 마셨나 싶지만 그때는 그런 의문조차 없었다. 만족할 만큼의 수면을 취한 윤희는 가방에 담아 온 책을 교과서 밑에 깔아 놓고, 읽고 끄적이며 혼자 훌쩍거렸다. 이해인 수녀의 시집을 즐겨 읽었고, 박완서, 안병욱, 헤세, 괴테, 릴케 등도 탐독했다. 공부에 정신이 없었던 나는 그녀가 읽었던 책 한번 같이 나누지 못하는 헛똑똑이이자 반쪽짜리 단짝이었다.


쉬는 시간조차도 쪼개서 공부를 할 때였으니 그녀에게는 많이 미안하다. 같이 10분이라도 짬을 내어 시 한 편이라도 나눴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우린 항상 붙어다니는 단짝 친구였지만, 서로의 영혼을 이해할 만큼의 깊은 교감은 없었던 것 같다. 동갑인데도 윤희는 늘 언니처럼 굴며 노인네 같은 이야기만 했다.


너도 살아보면 알아..


도대체 뭘… 너무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해 지쳐버린 것인지 그런 윤희를 스물둘의 나는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윤희가 스물넷이 되던 해에 지 좋다는 남자와 결혼을 했고, 얼마나 알콩달콩 살았던지 단짝인 나에게 조차 연락이 없었다. 수년간.


여자들은 시집가면 친구들과 거리가 멀어진다더니 그 말이 그짝인가 싶었던 때였다. 내가 거는 전화도 받지 않았고, 걸려오는 전화도 없었다. 괘씸하기도 했지만 불안하기도 했다. 부모님 연락처를 수소문해 찾아갔는데, 너무 늦었던 모양이다. 서너 살 된 예쁘장한 여자아이가 할머니랑 뛰어놀고 있었다. 윤희가 낳은 딸이란다. 그 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연락이 없었는지 윤희 엄마도 많은 설명을 하지 않으셨다.


“핏덩어리만 놓고 갔어. 산 사람은 살아야지. 말해 무엇하나… 너도 다시는 찾아오지 마라..”


윤희가 위암으로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났다.  그녀 나이 스물여덟이다. 생을 마감하기엔 아직 꽃도 피우지 못한 나이인데… 다시는 찾아오지도 말고, 부모보다 먼저 간 딸자식이니 마음에서 지우라고도 하셨다. 아이를 키우며 혼자살 자신이 없었던지 윤희 남편은 이미 떠난 지 오래였다.




학창 시절엔 공부하느라 그저 정신없었고, 대학에 가선 삶의 현장이 달라 깊은 교감을 할 시간이 많이 없었다. 윤희는 주말이 되면 늘 여행을 가지고 했지만, 그럴만한 상황이 되질 못했다. 집을 떠나 잠을 자고 온다는 것은 당시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고, 특히나 다 큰 아가씨 둘이 외지에 간다는 것은 아버지 생전에는 불가한 일이었다. 그저 전화통화로 소식을 주고받고, 열에 한 번은 온갖 모사로 탈출에 성공할때나 그녀와 함께였다. 보성녹차밭이 그리도 보고 싶다던 윤희랑 걸었던 길이 선하다. 어렵게 탈출한 여행임에도 윤희는 말보다는 그저 그 순간들을 즐겼던 것 같다. 많은 대화가 없었다. 같이 걷고, 근사한 카페에 가서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고. 그러다 또 무언가를 끊임없이 읽고… 여백이 많은 우리의 관계였지만 윤희는 그러한 시간을 좋아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녀 옆에 그저 있어주는 것이었다.


학창 시절 그렇게도 속이 쓰리다면서도 우린 미련하게 커피를 빈속에 들이부었다. 그때부터 위암이 자랐던 모양인지 윤희는 결혼하자마자 위암선고를 받았고 다행히 항암 이전에 아이를 출산했다. 그렇게도 옆에 있어주기를 원했으면서 내 전화도 받지 않고, 연락도 하지 않았던 윤희가 얼마나 외로웠을지를 생각하면 죄책감이 든다. 더 함께, 더 오래 있어주지 못해서…


인형처럼 나를 끼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같이 붙어 다니면서도,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끝끝내 내려놓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여행에 가면 혼자 쉬고 읽고를 반복했는지도 모른다. 해외여행을 안 가본 친구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기해서 ‘어디가 봤어? 맛있는 거는? 거기 예뻐? 물가는? ‘등등의 질문을 쏟아냈지만 윤희는 그런데는 통 관심이 없었다.


사람 사는 데가 다 거기서 거기지!


할매같은 소리만 했던 윤희다.


나 역시도 많은 여행을 다녔지만,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은 없었다. 커리어의 연장선상에서 온갖 미술관, 박물관, 아트센터 등의 트렌드나 전시정보를 수집하기 바빴고, 정작 그 안에서 즐기지도 못했다. 내 돈으로 간 여행에서 조차 말이다. 그래서일까? 그때 찍었던 사진들에선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 향기가 없다. 전시도록과 다를 바가 없다. 마흔 후반에 와서야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스물둘의 윤희가 늘 여행을 한다던게 무엇인지 이제 알 것 같다. 그리고 윤희에게 말하고 싶다.


'윤희야, 사람 사는 데가 다 거기서 거기인건 맞아. 그렇지만 네가 너를 찾고 사랑하는 순간부터는 세상이 달라져. 네가 처음부터 누렸어야 할 너의 세상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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