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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아름 Sep 16. 2023

지금 이 순간도 당신이  무척이나 그립습니다.

기억의 시력이 어두워가도 '당신의 사랑별'은 볼 수 있어요

나는 오늘 아름다운 사랑의 한 장면을 보았다.


어르신 돌봄시설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한 여인이 있었다. 모두가 ‘내 나이가 어때서’에 맞춰 율동을 하고, 인간극장 같은 다큐 프로그램에 열중해서 TV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홀로 성경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 그것도 교회에서 주었다는 진도표에 맞춰 열심히 동그라미를 그리며 말이다.


“어머니, 뭘 그리 읽으세요? 무슨 내용인가요?”

에베소서 5장이다.


“선생님, 눈이 참 예뻐요. 화장까지 했으면 일 내겠어요. 어디에서 오셨어요? 저는 치매가 있어요. 가끔 기억이 나질 않아요. 심하진 않은데… 그래요. 언제 왔어요?”


“오늘 처음 왔어요”


"선생님, 왜 그리 눈이 빛나요? 성경 좋아해요?”


좋아했고 좋아한다. 모두가 신나게 춤을 추고 움직이는 가운데 홀 성경을 읽는 그녀가 궁금해졌다.

옆에 살며시 다가가 앉아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아본다. 그녀는 그런 나를 보고 이야기한다.



그리워요. 남편이 너무 그리워요

할아버지가 그리워요. 처음 만났을 때도 사모했고, 살면서도  그리웠어요. 나와는 비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죠. 저는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사이었어요.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어요. 할아버지는 서당을 하시면서 한문을 가르쳤죠. 덕분에 저도 한문을 많이 익혔어요.”


그녀의 남편은 교육청 공무원으로 그녀의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서당에서 한문을 익혔다고 했다. 당시 그녀의 남편을  연모하는 고등학교 여교사가 있었지만, 그는 지금의 할머니를 서당에서 보고 한눈에 반했다고 했다.


 “저희 할아버지를 찾아와서 남편이 사정을 했어요. ‘평생 고생시키지 않고 평생 사랑하며 아끼며 살게요’라고 하면서요. 그렇게 프러포즈를 받고 저는 가슴 벅찬 결혼을 했어요. 말로 표현은 안 하는 사람이었지만… 취중진담이라고 술이 한잔 들어가면 얼마나 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표현했는지 몰라요. 정말 행복한 순간들이었죠….


이렇게 부족한 날 사랑해 준 남편을 정말 사랑했어요. 그런데 제가 너무 부족해서 남편이 힘들진 않았나 늘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결혼해서 남편 월급이 2만 원인가 3만 원이었죠. 그것으론 살림을 살 수 없었죠. 남편이 내색은 안 했지만 남편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었어요. 당시 라피네 화장품에 취직을 해서 방문판매를 시작했어요. 살림이 금방 펴고 좋았죠…. 그런데 남편이 이렇게 빨리 떠날 줄은 몰랐어요”



내가 너무 부족한 사람이라서

그녀는 올해 73세이시다. 할버지는 3년 전에 세상을 떠나  지금은 그녀 홀로다.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


제가 남편한테 너무 부족해서 남편이 일찍 떠났나 봐요. 운명이라는 것이.. 그렇게 사모하고 사랑했는데 너무 허망하게 갔어요”


그녀의 남편은 투석으로 사투를 벌이다 결국 떠났다고 했다. 평상시는 아무런 표현도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취하면 낭만적인 남자였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이 부족해서 남편이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은 아닌지 여전히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너무 깊어지면 그런 것일까? 부족함 마저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진정 사랑이라는 것을 그녀는 모르는 것일까….


“선생님, 그런데 어디에서 오셨어요? 처음 보는 얼굴인데… 왜 제 이야기를 이렇게 열심히 들어주는 거예요?”

".............................”


나는 그저 그녀의 손을 말없이 꼭 잡아주었다.


“선생님, 선생님, 어디에서 왔나요? 하늘에서 왔나요? 왜 이제야 왔나요?”


그녀는 나를 보고 즉석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간 쌓였던 그리움을 그녀는 토해낼 곳이 없었나 보다. 생면부지의 나에게 그녀의 그리움을 쏟아내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남편이 보고 싶어요.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살면서도 늘 그립고 사모했어요. 운명이라는 것이… 내가 이렇게 사랑하는데도 남편이 허망하게 갔어요…. 제가 혹여나 잘못될까 봐 아들이 이런 시설에 보낸 거예요. 혼자 있지 말라고요…그런데 하루종일 텔레비전 앞에서 티브이 보는 거 말곤 하는 게 없잖아요. 그래서 성경을 읽고 있었어요..”


치매가 있다는 그녀는 남편이 교육청 공무원이었고 자신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는 말을 열 번도 넘게 반복하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초라하게 봤을 리는 만무하고, 그녀는 그 앞에 한없이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사랑이 너무도 깊으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그 부족함마저도 사랑하고 아꼈던 그의 마음을 말이다. 반세기 넘는 세월이 흘렀어도 그녀는 그 앞에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그녀의 사랑이 참 아련하게 밀려온다.


사랑은 사랑으로만이 채워지고 완성될 수 있다. 다른 무엇으로도 채워질 수도 완성될 수도 없는 순도 100의 결정체다.




그녀의 사랑별은 여전히 빛이 난다

기억이 흐려지는 이 순간에도 그녀는 그녀의 남편에 대한 그리움의 손은 놓지 않고 있어 보였다.


“남편을 정말 사랑해요. 그립고 사모하고 지금도 보고 싶어요…. 내게 남은 시간이 너무 길어요….”

그녀의 마음속에 사랑별이 깊게 그리고 높게 뜨는 것만 같다. 그녀의 남편이 쏟아부었던 그 사랑은 그녀의 태양이 되었고, 그녀는 그의 곁을 언제나 지키는 사랑별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그가 없었던 그 빈자리에도 그녀가 여전히 남편을 사랑할 수 있었던 까닭이 마음으로 전해졌다. 그저 지난 과거를 그리워함이 아니라 여전히 그녀 가슴에는 그의 별이 떠 있었다.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 해도 남편과 함께했던 사랑의 시간만큼은 별이 되어 그녀를 비추었다.



이 밤, 그녀의 사랑이 가슴깊이 저며든다.

사랑이 참 아름답다.

녀의 사랑별 너머 저 하늘에 한 별이 빛난다.

눈으로 말하는 그다. 그리움이 기다림이 되었고 그 기다림은 기도가 되었다. 모두가 잠든 고요하고 평화로운 새벽녘,  소리 없이 내려와 머물러버린 함박눈처럼… 그리움도 기다림도 사랑도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인생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하는지를 알 것만 같다.

랑은 사랑으로만 채워지는 것임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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