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는 ‘후에 해서’ 후회라고들 한다. 누군들 후회하고 싶은 사람이 있겠는가만은 후회가 있어야 또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으니, 인생에 있어 후회는 단골손님이다. 겨울에 태어난 나는 음력으로 생일을 쇠자면 항상 겨울방학이라 학창 시절, 생일을 챙겨본 적이 없다. 친구들 생일은 지난 것까지 찾아 챙겨줘도, 내 생일은 왜 그리도 쑥스러운지... 그런 내가 짠했는지 엄마는 다 큰 내게 직장으로 빨간 장미를 보내주셨다.
‘사랑하는 내 딸, 생일 축하해! 엄마가 많이 사랑해!’하는 카드와 함께 말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엄마랑 집에서 식사를 하는 횟수가 1년에 손에 꼽을 만큼 드물었다. 바쁘기도 했지만, 대부분 밖에서 먹고 들어올 때가 다반사였고, 그러다 아예 근무지가 집과 영 멀어졌기 때문이다.
엄마는 영상통화를 하실때면 두 팔로 하트를 크게 그려주셨고, 때론 노래도 불러 주셨다. 그런 엄마를 위해 난 내 생일에 가급적 엄마랑 시간을 많이 보내려 하는데 지난 몇 년 동안 내 생일 때 어디에서 뭘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엄마를 외롭게 한 것만은 확실하다.
사랑하는 사람들 생각하지 말고, 지금은 너만 생각하고 네가 원하는 것만 하며 쉬어. 지난날 놓쳤던 것은 무엇인지,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지… 그것만 생각해. 지금은 그랬으면 좋겠어!
라고 말하는 엄마와 그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한다. 그럼에도, 나만을 위한 나의 시간을 지금 이 순간 품고 있다. 지난날의 기억과 추억으로, 그리고 비워진 마음에 하나둘씩 찍히는 순간의 점들로 말이다.
말은 그렇게 하셔도 밀봉된 병의 선명함처럼, 그리움은 투명하게도 드러난다.
“엄마, 이번 내 생일엔 둘이서만 여행 가면 어때? 생일에는 엄마가 축하받아야 하는 거잖아. 조금이라도 기력이 있을 때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다니고, 더 많이 추억을 만들고 싶어. 엄마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러면서도 나는 엄마를 사랑한다는 말은 결국 못 했다. 엄마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와 그리움은 언제나 목을 매이게 하는 것 같다.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그런 나라도 어느 한 사람에게는 곧잘 표현을 한다. 물론, 농담반 진담반이라 그를 헷갈리게 할 때도 많지만 말이다.
“이렇게 전화한 걸 보니 내가 보고 싶기는 한가 보네?”
“…”
“왜 말이 없어?”
“내가 오늘 몇 번을 전화했니..."
7시간 동안 전화를 붙잡고 있어도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고 그리움은 무게를 더해가나 보다. 냉철하면서도 낭만적인 그이지만, 언어적 표현에 대해서만큼은 벙어리다. 말 대신 음악과 그림으로 그가 마음을 전하면, 나역시 가슴으로 느낄뿐이다. ‘함께했던 시간과 사연이 얼마인데 보고 싶다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어렵나’싶은 야속한 마음이 들면서도 숫기 없는 그 모습마저도 나를 그저 웃게한다.그 또한 그의 모습이자 그의 언어이니 말이다.